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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문단 여전히 보수적…경계선 허무는 작가 될것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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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6호 19면

소설집 『옥상에서 만나요』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 정세랑씨. 장르와 정통문학을 넘나드는 작업으로 한국문단의 폭을 넓히고 있다. [신인섭 기자]

소설집 『옥상에서 만나요』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 정세랑씨. 장르와 정통문학을 넘나드는 작업으로 한국문단의 폭을 넓히고 있다. [신인섭 기자]

지금까지 한국문단에 이런 작가는 별로 없었던 것 같다. 장르(SF·판타지)와 ‘정통’을 넘나든다. 장르문학 잡지로 등단했지만 창비장편소설상(2014년 『이만큼 가까이』)을 받는 등 정통문학에서도 그를 반긴다. 출신·작품 경향만 새로운 게 아니다. “회사원 같은 작가가 되고 싶다”며 문학 엄숙주의를 멀리한다. 84년생 정세랑이다.

84년생 작가 정세랑 쓴소리 #장르소설로 등단, 정통문학상 수상 #『옥상에서 만나요』 4달 만에 2만부 #“문학이 대접받을 때 사고 많아 #자만 않고 직장인처럼 문학하겠다”

그의 개성은 지금까지 펴낸 소설책들이 생생하게 증언한다. 2012년 장편 『지구에서 한아뿐』은 광물성 외계인과 지구인 여성의 사랑 이야기. 『이만큼 가까이』는 전형적인 성장소설이다. 2015년 장편 『보건교사 안은영』이 판타지 호러였다면(넷플릭스 드라마로도 만들어진다) 2016년 장편 『피프티 피플』은 무르익은 글솜씨가 작렬하는 사실주의 문법의 소설이다. 지난해 출간한 소설집 『옥상에서 만나요』는 섞여 있다. ‘세태+판타지’.

어디서 이런 작가가 생겨난 건가. 정세랑은 변하는 한국문학의 가늠자인가.

『옥상에서 만나요』(左), 『보건교사 안은영』(右)

『옥상에서 만나요』(左), 『보건교사 안은영』(右)

『옥상에서 만나요』의 반응이 좋다(지난해 11월에 출간되 3월 초 현재 2만 부 판매).
“책 표지가 너무 좋은 것 같다. 초록색 방수 페인트가 발린 옥상 난간에서 한 남자가 뒤돌아보는 일러스트다. 배경에 63빌딩도 보인다. 누구 책인지 어떤 내용인지도 모르고 집어 드는 것 같다. 역시 책의 물성, 예쁜 디자인도 중요하구나 생각했다.”
독자도 많이 만났을 것 같다.
“독자들을 만나면 힘을 얻을 수 있어 좋다. 그런데 독자 앞에서 두 시간 동안 얘기하는 이벤트를 하려면 몸 상태가 좋아야 한다. 계절성 비염이 있는데 한 번은 행사 내내 콧물을 흘렸더니 맨 앞자리에 앉은 독자분이 휴지를 건네주더라. 감기도 안 걸려야 하고, 소화도 잘돼야 하고…. 노래 부르는 가수를 존경하게 됐다.”
2010년 등단 후 소설책 7권을 냈다.
“내가 봐도 꾸준히 썼다. 그런데 일반 직장 다니는 분들도 꾸준히 다니니까 내가 하는 일이 굉장히 특출난 것 같지는 않다. 보통 직장 다니듯 주중에 쓰고 주말에 쉰다. 마감 때문에 못 쉴 때도 있지만.”
장르문학 작가로 시작했다가 창비상을 받으며 정통문학으로 보폭을 넓혔다.
“좀 더 노출되어야겠다, 독자들과 접촉면이 있어야겠다, 하는 실용적인 마음이 있었다. 문단 시스템을 이용한 거다. 문단 시스템을 이용하지 않는 작가들도 있다. 『회색 인간』의 김동식씨나 얼굴 없는 SF 작가 듀나처럼 자기 길을 가는 사람도 있다. 작가로 활동하는 길이 다양했으면 좋겠다. 꼭 이래야 성공한다, 이런 규칙은 없어지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정통문학 상을 받으니 달라지던가.
“책 내면 인터뷰를 많이 하게 된다. 낼 때마다 평균 10차례는 하는 것 같다.”
누군가 당신 소설을 장르소설이나 오락소설이라고 평한다면.
“독서에서 쾌감을 중시하는 편이고 쓸 때도 그런 즐거움을 추구한다. 빨리 읽히는 ‘페이지 터너’를 쓰고 싶은데 그런 소설도 우리 삶을 풍성하게 해준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문학을 다른 예술장르보다 상위에 두고 싶지는 않다. 문학이 특별 대우를 받을 건 없다고 생각한다. 대접받아야 한다고 생각할 때 사고가 많이 일어난다. 독자가 문학은 멋진 장르라고 할 수는 있지만 작가가 그러는 건 오만인 것 같아 나는 최대한 직장인처럼 문학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작가들이)문학을 굉장히 특별한 어떤 것처럼 말하면서 폭력적으로 행동하는 걸 많이 봤기 때문에 그 방향으로 가기 싫은 게 있는 것 같다.”
한국문학에 없었던 작가형인 것 같다.
“한국문학이 문학이라고 정의하는 영역이 너무 좁다고 생각한다. 나처럼 경계선을 허무는 색깔 다른 작가가 많아지면 좋겠다. 내가 한국문학의 어떤 정중앙에 있을 수는 없을 것 같다. 경계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있을 테고, 그 역할이 내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기이한 작품을 내놓으면 사람들이 처음에는 낯설어하다가 결국 마음을 열고 받아들인다. 『보건교사 안은영』은 민음사의 ‘오늘의 젊은 작가’ 시리즈의 하나인데, 이 작품으로 해서 시리즈의 폭이 넓어진다고 생각한다. 이것도 문학이다. 이렇게 해도 문학이다. 그런 걸 보여주고 싶다.”
한국문단이 바뀌어야 할 점이 있다면.
“권위주의적이고 보수적인 부분이 여전하다. 특정 지면으로 데뷔해서 정확한 스텝을 받지 않으면 살아남기 어려운 구조다. 그렇게 되면 비슷한 작가들만 계속 태어날 수밖에 없지 않나.”
그런 점이 한국문학 위축 현상과 관계있나.
“위축인 것 같지 않다. 해외에서 호평받는 작품이 늘고 있고 내 소설만 해도 일본에 자꾸 번역된다.”
독자를 의식해 내용을 바꾸기도 하나.
“조절한다. 무신경하게 폭력적인 부분은 젊은 세대가 싫어하는 것 같아 조심해서 쓰려고 한다. 어떤 집단에서 이런 내용 쓰지 말아 주세요, 그러면 안 쓰려고 노력한다. 가령 외국계 이주민이 이런 내용 쓰지 말아 주세요, 그러면 안 쓰는 게 맞다.”
그러다 너무 무난한 소설이 나오지 않나.
“규칙 있는 게임이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누군가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도 문학이 재미있을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고 싶다.”

『보건교사 안은영』을 극화한 넷플릭스 드라마는 배우 정유미가 출연하고 이경미 감독이 연출을 한다. 정세랑은 2015년 일본국제교류기금이 마련한 ‘한일 차세대 문화인 대담’ 한국 대표로 뽑혀 일본 작가를 만난 적이 있다. 정세랑은 한국문학의 정중앙인가 아닌가.

신준봉 문화전문기자/중앙 컬처&라이프스타일랩 infor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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