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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붕의 진화 최신 버전은 IoT 기술 통한 인간과의 교감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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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6호 26면

도시와 건축 

인류 역사상 지붕이 처음 만들어진 것은 언제일까. 집의 가장 중요한 기능 중 하나는 비를 피하는 것이다. 위로부터 떨어지는 물을 막아서 쾌적하게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은 집의 가장 근본적인 역할이다. 그 기능을 하고 있는 건축요소가 지붕이다. 따라서 지붕은 건축에서 가장 기본적인 요소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지붕만 보더라도 그 지역 그 시대의 건축과 사회를 가늠해 볼 수 있다. 지붕을 중심으로 건축이 어떻게 진화해 왔는지 살펴보자.

고대 메소포타미아 평지붕이 효시 #비 많은 유라시아 동쪽선 급경사 #20세기 철근콘크리트 건축 혁명 #르코르뷔지에, 옥상에 녹지 공간 #21세기엔 살아있는 유기체처럼 #인간과 대화 가능한 건축 현실화

최초의 건축물 유적은 기원전 8000년께 만들어진 터키 남부의 ‘괴베클리 테페’다. 이 건축물은 가운데 거대한 돌기둥이 몇 개가 서있고 주변으로 돌담이 겹겹이 쳐있는 디자인의 건축물이다. 용도는 장례를 치루는 공간이었다. 그런데 이 건축물에는 지붕이 없다. 따라서 가장 오래된 건축물이기는 하지만 지붕을 가진 건축물의 증거로 삼기는 어렵다.

메소포타미아의 우르크. 강수량이 적은 건조지역에 지어진 건축물이어서 지붕이 평평하다. [중앙포토]

메소포타미아의 우르크. 강수량이 적은 건조지역에 지어진 건축물이어서 지붕이 평평하다. [중앙포토]

그렇다면 벽으로부터 분리되어 독립된 형태의 지붕이 나타난 것은 언제 어디일까. 아마도 위치로는 강수량이 가장 적은 건조기후에서 나타났을 것이다. 농업혁명이 자리 잡아 대규모로 인구가 정착하고 도시를 만든 첫 번째 케이스는 기원전 4200년께 메소포타미아의 ‘우루크’다. 인구 1만 명 규모의 이 도시는 강수량이 적은 건조기후대에 위치하고 있었기 때문에 지붕이 감당해야할 방수의 부담이 적었을 것이고 따라서 지붕이 가볍고 만들기도 쉬웠을 것이다. 비 걱정이 없으니 지붕의 모양도 평평하다. 나무가 귀한 건조기후에서 굳이 경사지붕을 만들 이유가 없다. 따라서 최초의 독립된 지붕은 평지붕이었을 것이다.

이렇게 시작한 지붕건축은 문명이 동쪽으로 이동하면서 인도를 거쳐서 점차적으로 비가 많이 오는 몬순기후대로 이동하게 됐다. 유라시아 대륙의 동쪽으로 가게 되면 계절풍의 영향으로 강수량도 많고 집중호우도 있다. 따라서 극동아시아와 동남아시아 건축의 지붕은 경사져있다. 나무기둥이 비에 젖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처마도 길게 나와 있다. 남쪽으로 갈수록 집중호우가 많아져서 지붕의 경사각도가 급해진다. 반면, 메포소타미아의 문명이 서쪽으로 가면 유라시아 대륙의 서쪽으로 서안해양성기후가 된다. 1년 내내 강수량이 고루 내리는 기후여서 지붕의 경사도가 급하지 않고 처마가 길게 나오지 않은 건축이 나타난다. 땅이 단단하기 때문에 벽을 세울 수 있고 무엇보다도 지붕이 거대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높은 층수의 건물도 지을 수 있다. 그래서 아시아보다는 유럽에서 인구 100만 명의 대도시가 먼저 발생했다. 2000년 전에 로마가 최초로 인구 100만 명을 돌파했고, 그보다 600년 넘게 지나서야 아시아에서는 중국 당나라의 장안성이 인구 100만 명을 넘게 되었다. 이렇듯 기원전 4000년부터 20세기까지 6000년 가까이 유라시아 대륙의 서쪽은 낮은 경사지붕, 중앙의 건조기후대는 평지붕, 대륙의 동쪽은 급한 경사지붕이라는 원칙이 유지가 되었다. 그러다가 20세기 들어서 변화가 생겨났다.

최초로 옥상에 정원을 둔다는 개념의 건축은 수메르 문명의 공중정원이다. 수메르 문명의 절대 권력자인 네부카드네자르 2세가 왕비를 위한 정원을 고층건물로 지었다. 네부카드네자르 2세는 사랑하는 아내를 위해서 타지마할을 지은 무굴제국의 황제 ‘샤 자한’보다 앞선 애처가계의 대선배다. 건축계의 ‘최수종’이라고나 할까. 네부카드네자르 2세는 숲이 우거진 산이 있는 나라 ‘메디아’에서 시집을 온 왕비의 향수병을 달래기 위해서 산처럼 생긴 계단식 높은 건물을 지어서 각 층마다 나무를 심고, 회전식 수차를 이용해서 물을 고층으로 올렸다. 대단한 기술력이다. 나무와 꽃은 모두 멀리 있는 왕비의 나라에서 가지고 왔다. 건조기후에서 물은 가장 귀한 것인데 나무를 운반하는 인부들과 나무에게 모두 물을 주면서 사막지대를 통과해야 했으니 엄청난 돈과 권력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이 바빌론의 공중정원은 기원전 2세기 비잔틴의 수학자 필론(Philo)의 저서 ‘세계 7대 경관’에 포함돼 있다.

20세기의 지붕, 르코르뷔지에의 옥상정원

스위스 건축가 르 코르뷔제의 빌라 사보이의 지붕은 평평한 바닥에 정원을 만들어 놓았다. [중앙포토]

스위스 건축가 르 코르뷔제의 빌라 사보이의 지붕은 평평한 바닥에 정원을 만들어 놓았다. [중앙포토]

건축물에 정원을 만들겠다는 이야기는 이처럼 역사상 최고의 권력자 중 한 명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나 할 수 있는 럭셔리한 생각이었다. 그런 공중정원을 일반인의 집에 적용시킬 수 있게 해준 사람이 20세기 스위스 건축가 르코르뷔지에다. 그는 철근콘크리트라는 새로운 재료로 건축할 것을 제안하면서 근대건축의 5원칙을 주창했다. 방수가 되는 철근콘크리트로 집을 짓다보니 지붕이 굳이 경사가 질 이유가 없어졌다. 코르뷔제는 그의 기념비적 주택인 ‘빌라 사보아’에서 지붕도 다른 층의 바닥면처럼 평평하게 만들어서 옥상에 정원을 두는 아이디어를 제시했다.

옥상정원의 또 다른 의미는 지구 전체적으로 보아 녹지의 면적을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는 데 있다. 숲을 없애고 그곳에 건물을 지으면 그만큼 녹지면적이 줄어들게 된다. 그런데  건물을 지을 때 옥상에 정원을 만들어놓으면 전체적으로 녹지비율을 줄이지 않는 건축이 된다. 이 같은 디자인이 가능해진 이유는 철근 콘크리트라는 새로운 재료의 도입 덕분이었다. 건축에서 혁신은 재료에서 시작한다.

태양광 패널이 설치된 21세기 주택의 지붕. 전기 에너지를 생산하는 광합성 지붕이다. [중앙포토]

태양광 패널이 설치된 21세기 주택의 지붕. 전기 에너지를 생산하는 광합성 지붕이다. [중앙포토]

20세기의 지붕이 정원을 가진 지붕이라면 21세기의 지붕은 광합성을 하는 지붕이다. 태양광 패널을 말하는 것이다. 모든 생명에너지의 시작은 태양이다. 식물이 태양에너지를 광합성을 통해서 자신의 몸으로 바꾸면, 그 식물을 초식동물이 먹고, 초식동물은 육식동물에 먹히면서 최초의 태양 에너지가 먹이사슬의 위로 올라가는 것이 지구 생태계의 에너지구조다. 만 년 넘게 건물은 에너지를 소비만 하는 것이었다가 태양광 패널로 에너지를 생산하는 광합성 식물 같은 존재가 되었다. 이 같은 기술발전에 의욕이 넘쳤던 중동의 아부다비는 태양광 재생에너지기술을 이용해서 탄소제로 시티 ‘마스다르’를 세우는 계획안을 발표했다. 도시의 모든 에너지수요를 태양광재생에너지로 공급해서 탄소배출을 전혀 안 하겠다는 원대한 포부였다. 그런데 이 시도는 현재 실패로 돌아갔다. 중동의 경우 무한히 공급되는 태양광은 있었지만 동시에 먼지도 많아서 태양광 패널의 효율을 떨어뜨리는 문제가 있었다. 탄소제로 시티라는 꿈같은 아이디어는 현재 인류의 기술로는 아직 무리가 있어 보인다.

여섯째 날의 창조물 스마트시티

부산 스마트시티 조감도에선 건물과 자동차, 인간이 하나의 신경망으로 연결돼 있다. [중앙포토]

부산 스마트시티 조감도에선 건물과 자동차, 인간이 하나의 신경망으로 연결돼 있다. [중앙포토]

구약성경에 나오는 창조의 순서를 보면 하나님이 우선 하늘과 땅을 만들고 다음날 식물을 만들고 동물을 만들고, 마지막 여섯째 날에 인간을 만들었다고 나온다. 무생물을 먼저 만들고, 유기체 생명을 만들고 최후에는 인격체인 인간을 만든 것이다. 건축도 마찬가지다. 인간이 만든 최초의 건축물은 그저 무기물 덩어리였다. 그러다가 21세기 들어서 유기체와 같은 에너지 순환 고리를 가지는 지붕을 만들었다. 그러다가 IoT(사물인터넷)기술이 나오면서 사물에 센서를 부착하고 인간과 교감하는 건축을 만들려하고 있다. 그것이 ‘스마트시티’다. 스마트시티는 건축물을 인격체로 만들려는 시도다. 스마트시티가 되려면 기본적으로 필요한 것이 인간과 건물과 주변의 움직이는 물체가 신호를 상호 교환하면서 소통을 해야 한다. 건물과 자동차와 인간이 하나의 신경망처럼 연결되는 것이다.

과거 우리 조상들도 첨단기술은 아니지만 비슷한 일을 했다. 선조들은 건축을 하면 건물에 이름을 지어주었다. 소쇄원, 경회루, 만대루. 보통 세 글자로 지어졌는데 그 이유는 사람의 이름이 세 글자여서다. 여기에는 건축물을 인격체로 대하고 소통하라는 뜻이 담겨있을 것이다. 이 같은 행위가 은유적이고 상징적인 교감이었다면, 이제는 초급수준이지만 서서히 인간과 교감하는 건축으로 이동 중이다. 그 첫 번째는 스마트가전이고 다음은 자율주행 자동차일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기능들이 건물 내부로 스며들어서 벽, 지붕, 창문 자체가 대화 가능한 요소들이 되어갈 것이다. 건축은 이제 진화의 마지막 단계에 접어들고 있다.

유현준 홍익대 건축학과 교수
하버드·MIT에서 건축 공부를 했다. 세계적인 건축가 리처드 마이어 사무소에서 실무를 익혔다. 젊은 건축가상 등을 수상했고 『어디서 살 것인가』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 등 저술활동도 활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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