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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 총리' 트뤼도를 추락시킨 두 女장관의 퇴장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4년 전 젊은 지도자 열풍의 중심에 서며 10년 만에 캐나다 정권을 바꾼 꽃미남 총리 쥐스탱 트뤼도(48)가 정치인생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다. 퀘벡의 대형 건설사(SNC-라발린) 뇌물 사건 수사를 무마하려 했다는 ‘외압설’이 불거지면서다. 특히 페미니스트(여권 옹호자)를 자처해온 그가 핵심 여성 장관 두 명의 잇따른 사임으로 역공을 당하는 모양새다.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 [AP=연합뉴스]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 [AP=연합뉴스]

6일(현지시간) CNN 등 외신에 따르면 문제의 외압설은 의회 청문회를 계기로 ‘진실 공방’으로 확대되고 있다. 트뤼도의 최측근인 제럴드 버츠 수석보좌관은 이날 하원 법사위원회에 출석해 “압력을 가하지 않았다”며 총리의 외압 의혹을 부인했다. “모든 대화가 규칙 내에서 이뤄졌고, 합당한 행동이었다”는 트뤼도의 입장을 뒷받침하는 발언이다. 지난달 중순 돌연 사임한 뒤 지난달 27일 의회 청문회에서 꾸준한 압력을 받았다고 주장한 조디 윌슨-레이볼드 전 법무장관의 발언과 정면 배치된다.

수사 외압 스캔들로 내각 핵심 장관 잇따라 사임

윌슨-레이볼드 전 장관은 트뤼도 총리가 초대 내각 때 발탁한 스타 여성 장관이다. 그러나 뇌물 사건이 불거진 후 트뤼도에게서 등을 돌렸다. 트뤼도 총리와 측근들로부터 지난해 뇌물 제공 혐의로 수사를 받는 SNC-라발린을 기소하지 말라고 ‘은근한 협박(veiled threats)’을 수차례 받았다는 사실도 폭로했다. “10차례의 전화와 10번의 면담, 문자 메시지 등을 통해 압박을 받았다”는 구체적 증언을 덧붙이면서다. 트뤼도의 요구를 거부한 대가로 지난 1월 보훈부 장관으로 좌천됐다고도 주장했다.

조디 윌슨-레이볼드 전 법무장관. [AP=연합뉴스]

조디 윌슨-레이볼드 전 법무장관. [AP=연합뉴스]

윌슨-레이볼드에 이어 또 다른 스타 장관이던 제인 필포트 재무장관도 지난 4일 “더이상 트뤼도 내각의 편을 들어줄 수 없다”며 자리에서 물러났다. 사직서에 그는 “슬프게도 나는 정부가 이 사안에 대해 대처해 온 방식에 신뢰를 잃었다”고 썼다.

두 여성 장관의 사임이 뼈아픈 것은 이들이 ‘트뤼도 정치’의 상징과도 같은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트뤼도는 자랑스럽고 당당하게 자신이 페미니스트임을 밝혀왔다. 4년 전 캐나다 사상 최초로 남여 동수의 파격적 내각을 출범시킨 뒤 가진 기자회견에서는 ‘동등한 성비를 중요하게 고려한 이유가 뭐냐’는 질문에 “지금은 2015년이기 때문”이라고 답해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캐나디안 프레스는 “둘 다 강한 여성 후보들을 영입할 수 있는 자유당의 능력을 보여주는 상징이었다”고 썼다. NBC방송도 “필포트는 트뤼도 정부에서 가장 존경받고 유능한 장관 중 한사람이었다”다며 “소신있는 사임이 트뤼도에게 중대한 타격”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 [AP=연합뉴스]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 [AP=연합뉴스]

이번 파문으로 트뤼도의 ‘이미지 정치’가 한계를 드러낸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트뤼도는 총리 선출 당시 카리스마 있고 훈남 정치인이라는 이유로 국제적 유명인사가 됐다. 페미니스트적 관점과 타투, 번지점프 코치를 포함한 과거 직업까지 그의 모든 것이 대서특필될 만큼 화제를 모았다.

하지만 이런 대중 호소형 전략이 ‘부메랑’으로 돌아오고 있다. 토론토 일간 토론토 썬은 “트뤼도의 ‘페이크(fake) 페미니즘’이 드러났다”며 “이는 레이볼드에 대한 경멸적 대우에서 다시 드러났다”고 꼬집었다. 캐나디안 프레스도 “레이볼드가 사임한 후 트뤼도는 그녀를 ‘조디’라고 반복해 불렀는데 작은 굴욕이었지만 많은 사람이 알아차렸다”고 지적했다.

야당도 “2015년 선거 운동 이후 자유당이 유권자에게 호소해온 핵심 요소는 페미니즘이었지만, 총리는 그가 위선자라는 것을 보여준다”고 공세의 고삐를 죄었다. 제1야당인 보수당의 앤드루 쉬어 대표는 트뤼도 총리의 즉각 사퇴와 사법당국의 수사를 촉구하고 있다.

글로벌뉴스는 “통상 세계 여성의 날(8일)은 트뤼도 총리에 빛나는 시간이었다”며 “하지만 트뤼도가 (이날) 계획한 활동이 무엇이든 논란의 여지가 있을 것이다. 그가 세심하게 쌓아온 페미니스트 브랜드 뿐 아니라 그의 정부가 캐나다 여성들의 삶을 더 좋게 만들기 위해 기울인 노력마저 위태롭게 한다”고 꼬집었다.

황수연 기자 ppangsh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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