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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 붕괴] 분만실 0 장례식장 10곳…의성이 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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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지방이 위기다. 저출산ㆍ고령화ㆍ저성장의 직격탄을 맞고 있다. 나라 전체 인구는 아직 증가세지만 지방에선 자연 사망이 출생을 압도한다. 여기에 젊은이가 돈과 꿈을 찾아 도시로 빠져나가고 있다. 인접 4개 시군을 묶어도 서울 한 개 구 인구의 절반도 안 될 정도로 지방은 텅 비었다. 이대로 가면 지방 소멸은 불 보듯 뻔하다. 2040년에 지자체의 30%가 제 기능을 상실할 것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공동체 유지가 어려운 한계 마을은 점(點)에서 선(線)으로, 면(面)으로 퍼지고 있다. 반면 국토 면적의 12%인 수도권은 거의 모든 게 조밀하다. 사람, 돈, 의료, 문화시설이 쏠려 있다. 지방 쇠퇴, 수도권 중심의 극점(極點) 사회는 눈앞의 현실이다.  
하지만 정부의 위기의식은 엷다. 정책이 지방 재생의 대계보다 토건 국가형 대형 SOC 투자, 도시 재생에 무게가 가 있다. 그나마 일부 사업엔 정치 논리도 꿈틀거린다. 지방 소멸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인가. 정부나 지자체 정책에 문제점은 없는 것일까. 지방 회생의 처방전은 있는 것일까. ‘지방 붕괴…재생의 길을 찾아서’ 시리즈를 통해 지방의 현주소와 대안을 짚어본다. 

학교는 울고 있었다.
지난달 12일 오전 10시 경북 의성군 금성면 금성여상 3층 강당. 3년생 28명의 마지막 졸업식은 시간이 갈수록 숙연해졌다. 1회 졸업생인 박란희 동창회장(60)이 “우리 학교가 이번 졸업으로 영원히 폐교되고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고 하자 참석자들이 눈물을 글썽였다. 남상은(20ㆍ구미시) 졸업생은 “3년간 버스로 통학한 학교가 없어진다고 하니 정말 우울하다”고 했다. 금성여상 폐교는 의성군 고교로는 네 번째다. 졸업생 28명 중 3명만 의성 출신이고 나머지는 구미에서 왔다. 김기복(94) 학교발전위원장은 “해마다 감소하는 입학생으로 불안과 초조 속에서 학교를 운영해오다 결국 취학생 부족으로 학교 문을 닫게 됐다. 이 운명적 대세를 누가 막겠느냐”고 울먹였다.

학교 붕괴는 소멸 덫에 걸린 의성군의 한 단면이다. 1983년 이래 초등학교 17곳, 중학교 5곳, 초중 분교 37곳이 문을 닫았다. 2017년 현재 의성군 전체 중학생은 687명으로, 과거 베이비 붐 세대의 중학교 한 학년생과 비슷하다. 옥산면의 옥산중은 학생 수가 9명에 불과하다. 그나마 1학년생 1명이 전학 가는 바람에 올해부터 2학년은 없어진다. 학교 관계자는 “귀농ㆍ귀촌한 분들 덕택에 학교가 유지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의성군은 지난해 말 현재 인구가 5만2944명으로, 전국 228개 기초단체(시ㆍ군ㆍ구) 가운데 소멸 위험이 가장 높다. 한국고용정보원(이상호 팀장)이 마스다 히로야(增田寬也)전 일본 총무상의 분석 틀(20~39세 여성 인구를 65세 이상 인구로 나눈 수치)을 원용한 결과다. 지수가 낮을수록 소멸 위험이 큰데 0.2~0.5 미만이면 소멸 위험 진입 단계, 0.2 미만이면 소멸 고위험 지역이다. 의성군은 0.151로 전국에서 가장 낮았다. 가임 여성이 도시로 빠져나가고 고령자가 늘면서 생겨난 지방 절벽이다. 의성군 측은 “2013년 이래 출생(200여명) 대비 사망(800여명)이 4배로 고착화했다”고 설명했다. 군민 평균 연령은 56세로 전국 42.1세보다 14세, 경북 44.9세보다 11세 높다. 65세 이상 고령화율은 38.8%다. 일본의 5만명 이상 기초단체 중 가장 고령화율이 높은 니가타(新潟) 현 사도(佐渡ㆍ5만7172명)시의 40.3%와 맞먹는다. 면(面), 리(里) 단위는 더 심각하다.

소멸 위험지수 1위 의성군을 가다 #소멸위기 도시 1위 ‘컬링 본산’ #평균 56세 … 사망이 출생의 4배 #인구 2500명 늘리기 프로젝트 #일·집·보육 갖춘 ‘청년마을’ 실험 #10가구 중 3가구 빈집인 마을도 #“존립 위기 지방도시, 예산 블랙홀” #전문가, 맞춤형 지방 재생 주문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지난 2일 오후 4시 의성군 서부 신평면 면사무소 주변. 주말이지만 주위에 사람이 눈에 띄지 않았다. 아스팔트 포장길 옆 공터도, 안평초등학교 신평분교도…. 면사무소에 걸린 ‘활력 넘치는 희망 의성’ 표지판이 무색했다. 이곳에서 만난 이정우 씨(51)는 “면의 약 10가구 중 3가구가 빈집”이라며 “어른들한테 긴급 상황이 생겨도 병원이 없어 인근 안동시로 나간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가 가장 젊은 축에 속한다”며 “아이 울음이 끊긴 마을이 적잖다”고 했다.

지난 22일 의성군 금성면에서 고령자 2명이 보행기를 끌고 마을을 나서고 있다. 의성 군민 평균 연령은 56세로 전국 42.1세보다 14세 높다. 프리랜서 김성태

지난 22일 의성군 금성면에서 고령자 2명이 보행기를 끌고 마을을 나서고 있다. 의성 군민 평균 연령은 56세로 전국 42.1세보다 14세 높다. 프리랜서 김성태

신평면은 의성군 내에서 대표적으로 인구가 적은 지역이다. 인구 799명으로 전체 18개 읍ㆍ면 중 유일하게 1000명을 밑돈다. 평균 연령은 64.2세이고, 고령화율은 53.9%다. 반면 15세 미만 인구는 18명(2.25%)에 불과하다. 신평면 교안 4리는 고령화율이 80%다. 신평면 마을은 향후 공동생활 유지를 장담 못 하는 한계 취락의 전형이다. 쇠퇴를 지나 소멸로 치닫고 있었다.

의성군 가음면의 한 폐가 모습. 마당에 무성하게 자라 마른 풀이 인적이 끊긴 세월을 짐작케해주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의성군 가음면의 한 폐가 모습. 마당에 무성하게 자라 마른 풀이 인적이 끊긴 세월을 짐작케해주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신평면과 맞닿은 안평면도 오십보백보다. 마을을 관통하는 도로 옆에 빈집이 적잖게 눈에 들어왔다. 안평면 금곡2리 노인회관에서 만난 박호윤씨(85)는 “한때 마을에 100호가 있었지만, 지금은 40호 정도밖에 없다”며 “전국에서 가장 오지 중의 하나인 신평면이 없어지면 그다음은 안평면일 것”이라고 자조했다.

경북 의성의 현주소

경북 의성의 현주소

의성군 동부 중심지 의성읍이 활기를 잃은 지도 오래다. 지난 2일 정오 읍내 역전 오거리 앞. 시내버스 정류장 의자는 노인들로 빈틈이 없었다. 도시의 지천에 널린 프랜차이즈 커피숍도, 은행도 보이지 않았다. 주변은 흡사 의료가였다. 요양병원을 포함해 병·의원, 약국 10곳이 도로 양쪽을 메웠다. 동부 쪽엔 문 닫은 소규모 공장도 적잖았다. 신승호(65·공인중개사) 씨는 “유동 인구가 적어 주말에 문을 닫는 식당이 수두룩하고, 되는 장사는 장례식장(전체 10곳)밖에 없다”며 “일자리가 있으면 오지 말라고 해도 사람들이 올 텐데 돈이 안 되고 복지가 안 돼 있으니 의성을 살릴 방도가 없다”고 한숨지었다. 컬링의 본산이자 경북 한복판의 의성은 저출산ㆍ고령화ㆍ공동화의 쓰나미를 맞고 있었다.

의성군 의성읍 역전오거리 부근 버스 승강장에서 고령의 주민들이 의자에 앉아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오영환 기자

의성군 의성읍 역전오거리 부근 버스 승강장에서 고령의 주민들이 의자에 앉아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오영환 기자

열악한 출산, 의료 환경은 인구 유출에 한몫했다. 의성군 면적은 서울의 두배지만 분만실과 산후조리원이 없다. 산전 진찰만 하는 외래 산부인과는 안계면의 Y 병원이 유일하다. 2015년 18년 만에 군에 개설됐다. 오동규 산부인과 과장은 “한 달에 8명의 산모가 찾아온다”며 “산모 대부분은 다문화 가정”이라고 말했다. 현재 군의 다문화 가정은 274가구다. 출산은 주로 대구나 안동에서 한다. 어쩔 수 없는 ‘원정 출산’인 셈이다. 분만 취약지의 유산율은 그렇지 않은 지역의 3배나 높다는 연구 결과도 나왔다(대한의학회 발간 국제학술지 1월호).
응급 의료기관은 두 곳이다. 군 서부는 Y 병원, 동부는 군 보건소가 지정됐다. 이 병원 관계자는  “응급 환자는 70~80대가 대부분으로 하루 10명꼴로 찾아온다”고 전했다. 의성의 전체 의료기관은 병원(30병상 이상) 4곳, 일반의원 18곳, 요양병원 6곳이다. 일반 병원보다 많은 요양병원 수가 의성군의 고령화를 상징한다.

의성군 의성읍 시외버스터미널 주변 양쪽 도로는 요양병원을 비롯한 병의원과 약국이 빼곡히 들어서 흡사 의료가를 방불케한다. 프리랜서 김성태

의성군 의성읍 시외버스터미널 주변 양쪽 도로는 요양병원을 비롯한 병의원과 약국이 빼곡히 들어서 흡사 의료가를 방불케한다. 프리랜서 김성태

경북도는 올해 의성군 재생의 일대 실험에 나섰다. 동부 중심지 안계면 일대에 일자리ㆍ주거ㆍ복지ㆍ문화 복합의 ‘이웃사촌 청년 시범마을’을 조성할 계획이다. 2022년까지 1743억원을 들여 스마트팜, 식품산업 클러스터, 100세대 주거 단지 등을 만든다. 30분 내 보건ㆍ보육, 60분 내 창업, 5분 내 응급 의료의 ‘농촌 3ㆍ6ㆍ5 생활권’을 구축해 일대 인구를 2500명 늘리겠다는 야심 찬 청사진이다. 이 프로젝트가 지방 소멸 극복의 선도 모델이 될 것인지 안팎의 관심이 적잖다.

의성군의 존립 위기는 지방 전체의 현주소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지방 곳곳이 ‘죽음에 이르는 병’에 걸려 있다. 인구, 기업 본사, 대학, 의료기관, 정부투자기관의 절대다수가 몰린 수도권 공화국에선 감지 못하는 증상이다. 인구ㆍ에너지ㆍ식량 공급원인 지방의 소멸은 결국 수도권 소멸의 전조다. 지방의 빈집과 노후화하는 인프라의 역습도 시간문제다. 마강래 중앙대 도시계획부동산학과 교수는 “중앙 정부 지원 없이 독자적 생존이 불가능한 지방 중소도시는 정부 예산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될 것”이라며 “지방 쇠퇴가 나라 전체의 공멸을 부를 것”이라고 말했다. 지방 소멸은 스멀스멀 턱밑까지 닥쳐온 조용한 위기다. 지방 분권, 지역 균형 발전의 거대 담론을 넘어 맞춤형 지방 재생의 각론을 논할 때가 됐다. 지방 문제도 결국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 지방 없이 나라 없다.

의성군=오영환 지역전문기자 hwas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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