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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시장님은 못말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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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전영선 기자 중앙일보 팀장
전영선 산업 1팀 기자

전영선 산업 1팀 기자

박원순 서울시장이 주도하는 제로페이에 대한 궁금증은 솔직히 딱 하나였다. “왜 아무도 그를 말리지 못했을까.” 지난해 8월 ‘서울페이’라는 이름으로 사업 추진을 중간발표 할 때 부터다.  취재해 보니 서울시 공공페이 추진단은 해결해 둔 사안이 거의 없었다. 몇명 되지 않는 실무자는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진심으로 이 과정을 짊어지고 갈 그들이 불쌍했다.

승산없는 싸움이라는 건 그때 이미 나올 수 있는 결론이었다. 그런데도 제로페이 서비스 시작은 일정대로 진행됐다.

최근 박 시장이 등장한 비서 가족과의 식사 동영상을 보고 이에 대한 어느 정도의 해답을 발견했다. 바로 “그렇게 쉽게 말릴 수 있는 분은 아니겠구나”이다. 일부러 코믹하게 제작됐다지만, 자세히 보면 뼈가 있었다. 귀 기울여 다 들어주시지만, 답은 정해져 있다. 친절하시지만, 설득이 되지는 않는다. 서울시에도 각 부문에 에이스가 많다. 이들이 치열한 간편결제 시장에 대해 보고를 하지 않았을 리 없다(고 믿고 싶다). 그러나 결국엔 공약이었다는 이유로 추진했고, 박시장은 최근 전국 확산을 위해 다시 뛰고 있다. 정부는 이에 맞춰 제로페이 사용처 확산에 유리한 정책을 만들겠다고 했다.

현재 간편결제 시장은 그야말로 경계 없는 전쟁터다. 페이의 범용성을 높이기 위해 각 진영이 결제 가능 분야를 확대해 가는 영토 싸움이다.

업종 무관하게 한 분야의 각 1위가 시장을 선도한다. 휴대폰 단말기 1위인 삼성전자의 삼성페이(추정 가입자 약 1300만명), 메신저 1위 카카오의 카카오페이(2600만명), 포털 1위 네이버의 N페이(2600만명), 대형마트 1위 이마트·신세계의 SSG페이(700만명), e커머스 1위 이베이 코리아의 스마일페이(1300만명) 등이 피말리는 경쟁을 벌인다. 가입자를 이만큼 확보한 이들조차 이 사업에서 성공하리라 장담할 수 없다. 각각 장점이 다르고 사용자마다 편리해 하는 부분이 다르기 때문이다. 궁극적으로 누가 ‘한국의 알리페이’가 될 지 전망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이들이 전부인가. 그럴리 없다. 사업 영역을 빼앗길 처지의 카드사 등 금융권도 손놓고만 있지 않다.

이들이 모두 ‘착한 페이’ 제로페이의 경쟁 상대다. 서울시가 제로페이 확산 대책을 낼 때마다 민간 사업자와는 부딪히고 예산은 허무하게 증발한다. 서울시가 진짜 해야 할 일, 꼭 필요한 일은 이것 말고도 너무나 많다. 공약 사업을 포기하는 것은 한 조직의 장으로 정말 어려울 것이라 짐작한다. 매몰 비용도 아깝겠다. 실익이 없을 때 결단을 내릴 수 있는 게 리더의 덕목이다. 하지만 과연 누군가가 시장님을 말릴 수 있을까.

전영선 산업1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