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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사 10명 기소하고도 수사 종결 안 한 검찰…“양승태 재판에 영향” 우려

중앙일보

입력

지난달 11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에서 한동훈 3차장검사가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으로 구속기소한 양승태 전 대법원장 중간 수사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뉴스1]

지난달 11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에서 한동훈 3차장검사가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으로 구속기소한 양승태 전 대법원장 중간 수사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뉴스1]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을 수사해 온 검찰이 전·현직 법관을 무더기로 재판에 넘기는 과정에서 추가기소 가능성을 열어뒀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고영한 전 법원행정처장(대법관)의 공소유지를 위해 법원을 압박할 ‘카드’를 남겨둔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검찰 "현 단계에서 수사 종결 아니다"

서울중앙지검 수사팀은 5일 전·현직 법관 10명을 직권남용,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겼다. 검찰이 9개월 동안 사법부 수사를 하면서 기소한 전·현직 판사 수는 양 전 대법원장을 포함해 14명으로 늘었다. 또 판사 66명의 비위 사실을 대법원에 통보하면서도 수사가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검찰은 현직인 권순일 대법관에 대해서는 법원에 비위 통보를 하면서도 불기소나 기소유예 등의 처분은 하지 않았다. 수사 대상에 올랐던 판사들 중 ‘혐의 없음’으로 불기소 처분을 내린 사례는 없다고 한다. 경우에 따라 언제든 기소가 가능한 상황이다.

검찰 관계자는 “수사 종결이 아니기 때문에 추후 추가 기소되거나 새로운 기소자가 나올 수 있으며 필요한 수사는 계속할 것이다”며 “현 단계에서 기소가 필요하고 가능하다고 본 사안에 대해서만 기소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사건 외적인 고려는 전혀 없다"고 덧붙였다.

양승태측 "검찰, 선별 기소로 재판에 영향미쳐"

이미 구속기소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검찰이 재판부에 제출한 참고인 진술조서에 대거 부동의 할 예정이다. 피고인이 동의하지 않으면 진술조서는 증거로 활용되지 않는 대신 법관들이 재판에 증인으로 나올 가능성이 높다. 이럴 경우 검찰이 기소를 하지 않은 상태로 남겨둔 전·현직 판사 수십 명이 증인으로 나와 신문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지난 1월 23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영장실질심사를 마친 후 굳은 표정으로 검찰 차량으로 걸어가고 있다. 최승식 기자.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지난 1월 23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영장실질심사를 마친 후 굳은 표정으로 검찰 차량으로 걸어가고 있다. 최승식 기자.

양 전 대법원장 변호인단은 검찰이 증인으로 출석할 가능성이 높은 판사들에 대해 기소 가능성을 열어둔 것이 재판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이들이 양 전 대법원장의 재판에 증인으로 나와 신문을 받을 때 추가 기소에 대한 부담감을 느낄 수 있다는 얘기다.

양 전 대법원장의 변호인은 “검찰 말대로 전·현직 법관에 대한 수사가 완전히 끝나지 않은 상태라면 마무리를 한 뒤 한 번에 기소하는 게 맞지 않냐”며 “공소장에 공범으로까지 적시한 판사는 두고 10명만 선별적으로 기소한 것은 향후 재판에서 증인으로 나올 판사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양 전 대법원장측은 영장실질심사 때부터 양 전 대법원장의 구속영장 발부 여부에 따라 법관 기소 범위가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을 가장 우려했다고 한다. 양 전 대법원장 구속 여부나 유·무죄를 판단해야 하는 재판부가 검찰에 불리한 판단을 할 경우 동료 법관들까지 기소될 수 있는 상황에 부담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검찰 출신도 '기소 독점주의 남용' 지적

지방법원의 한 부장판사는 “검찰이 기소독점이라는 권한을 이용해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활용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부장판사는 “다음번에는 누가 ‘타깃’이 될지 모르기 때문에 검찰 조사에 협조하지 않았던 판사들은 표정이 어두울 것이다”고 했다.

검찰은 이날 재판에 넘기는 전·현직 법관 명단을 발표하기 전부터 “수사 협조 정도가 기소 여부를 판단하는 요소 중 하나”라고 밝혔다. 검찰은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에 연루된 판사들에 대한 처리를 마무리하지 않은 상태다. 법조계에서는 현행법상 금지된 ‘플리바기닝’이 적용된 게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검찰 고위 간부 출신의 변호사도 검찰의 선별적 기소에 대해 지적했다. 그는 “피의자 신분임에도 기소하지 않은 법관들을 입건 상태로 두면서 공소유지를 하는 건 검찰의 악의적인 전략이다”며 “무혐의 처분이 되지 않은 법관들은 수사팀이 부르면 조사를 받기 위해 나와야 하는데 법정에서 검찰에게 불리한 증언을 할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정진호 기자 jeong.ji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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