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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세먼지 노출된 인공 폐 하루 만에 새까매졌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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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5일 서울 성북구 안암역 승강장에 설치된 구호용품 보관함의 방독면 그림 뒤로 마스크를 착용한 시민이 보인다. [뉴시스]

5일 서울 성북구 안암역 승강장에 설치된 구호용품 보관함의 방독면 그림 뒤로 마스크를 착용한 시민이 보인다. [뉴시스]

한국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미세먼지 등 대기오염에 대한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미세먼지의 진실 혹은 거짓 ⑨ 건강에 얼마나 위험할까 #네이라 공중보건환경국장 경고 #“초미세먼지 혈관 속까지 침투 #폐암·심장병·뇌졸중도 유발 #한·중, 대기오염과의 전쟁 선포해야”

세계보건기구(WHO)는 '2019년 건강을 위협하는 10대 요인'의 첫 번째로 '대기오염과 온난화'를 꼽았다. WHO에 따르면 매년 대기오염으로 조기 사망하는 사람은 무려 700만 명. 흡연과 간접흡연으로 인한 사망자(600만 명)보다 많다. 대기오염을 '보이지 않는 살인자' '신종 담배'라 부르는 이유다.

어린이 피해는 더욱 심각하다. 대기오염 조기 사망자 중 약 60만 명이 어린이다. 특히 어려서 대기오염에 노출될수록 평생 만성질환에 시달리거나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가 나타나는 등 심신에 후유증이 커 이대로라면 국가의 미래가 위험하다고 할 정도다.

“초미세먼지 혈관 속까지 침투” 

 인터뷰 중인 세계보건기구 네이라 국장. 이소아 기자.

인터뷰 중인 세계보건기구 네이라 국장. 이소아 기자.

지난 1월 15일 스위스 제네바 WHO 본부에서 만난 마리아 네이라 공중보건 환경국장은 “현재 세계 공중 보건을 위협하는 가장 큰 요인이 미세먼지와 대기오염”이라며 “한국은 아직은 매우 위험한 단계까지는 아니지만 WHO 공기 질 수준을 맞추기 위해 전방위로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WHO는 하루 평균 미세먼지(PM10)가 50㎍/㎥, 초미세먼지(PM2.5)는 25㎍/㎥를 넘으면 ‘위험하다’고 본다. 지난해 서울에서 초미세먼지가 25㎍/㎥를 초과한 날이 122일, 올해는 벌써 42일이나 된다.

스페인 의과대학 출신인 네이라 국장에게 대기오염이 건강에 얼마나 위험한지, 중국발 미세먼지 등 한국의 상황을 어떻게 풀어야 할지 들어봤다.

미세먼지 등 대기오염이 건강에 얼마나 위험한가.
“대표적인 게 천식·폐렴·폐암 등 호흡기 질환이다. 하지만 초미세먼지의 경우 걸러지지 않고 혈관 속까지 침투하기 때문에 정말 심각하다. 대기오염이 호흡기뿐 아니라 뇌졸중과 허혈성 심질환(심장근육에 혈액 공급이 부족해 생기는 질환) 등 심혈관 질환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WHO 분석에서 폐암 사망의 29%, 폐질환 사망의 43%, 심장병 사망의 25%, 뇌졸중 사망의 24%가 대기오염과 직접 관련이 있었다.”

“미세먼지, 나쁜 복권 사는 것”

미세먼지만으로 큰 병에 걸릴 수 있다는 것인가.
“최근 10년간 세계 각국의 전문가들 연구를 분석해 보니 대기오염과 치명적 질병의 인과관계가 매우 강했다. 복권을 많이 살수록 당첨 기회가 늘어나는 것처럼 미세먼지 위험도 '안 좋은 복권'과 같다. 미세먼지가 심한데 담배를 많이 피우고, 술도 많이 마시고,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다면 사망 확률은 더 높아지는 거다. '미세먼지로 인해 사망했다'는 말은 '미세먼지 영향으로 특정 질병이 발현해 그로 인해 사망했다'는 의미다.”

네이라 국장은 지난 1월 인도 북부 도시인 러크나우에서 진행한 실험을 예로 들었다. 그는 “인공 폐에 헤파 필터를 붙이고 노출했더니 24시간, 단 하루 만에 완전히 까맣게 변해버렸다. 너무나 충격적이었다”며 “그만큼 인도의 대기 질이 심각한 상태”라고 말했다.

“미세먼지 노출된 아이, 지능 떨어질 수도” 

인도 북부도시 러크나우에서 진행한 인공폐 실험 결과. 24시간 만에 폐가 시커멓게 변했다. [WHO 제공]

인도 북부도시 러크나우에서 진행한 인공폐 실험 결과. 24시간 만에 폐가 시커멓게 변했다. [WHO 제공]

한국도 미세먼지 '나쁨' 일수가 늘고 있는데.
“중요한 건 얼마나 오래 심한 미세먼지에 노출되느냐다. 하루든 사흘이든 오염도가 아주 높을 때가 있겠지만 건강에 치명적인 건 '장기간 노출' 정도다. 인도 뉴델리의 경우 고농도 미세먼지가 거의 1년 내내 이어진다. 반면 한국은 오염도가 치솟았다가 다시 떨어지고 오르고 한다. 일시적인 오염 증가가 직접 심각한 질환을 일으키는 건 아니라서 한국은 아주 위험 단계는 아니다.”
대기오염 조기 사망자 700만 명 수치는 어떻게 나온 건가.
“대기오염은 질병이 아니라 위험 요인이다. 그래서 사망에 영향을 미치는 위험을 평가하는 역학적 연구 방법을 쓴다. 뇌졸중·심혈관계 질환·폐암 등 특정 질병으로 조기 사망한 샘플 인구를 대상으로 연구한 결과, 92%가 고농도 대기오염에 노출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 정부는 지난해 3월부터 초미세먼지 기준을 일평균 35㎍/㎥와, 연평균 15㎍/㎥로 강화했다. 하지만 여전히 WHO 권고 기준보다는 느슨하다.

미세먼지 수치가 WHO 권고치를 웃돌면 건강에 위험한가.
“WHO 기준은 매우 엄격한 수치다. 달성하려면 단계적 과정이 필요하고 긴 시간이 걸리겠지만 한국 같은 선진국은 결국엔 도달할 수 있다고 본다. 불가능해 보여도 기준을 엄격하게 잡고 노력해야 한다. 한국의 환경·보건 당국이 정확하고 세밀한 측정 시스템을 갖추는 게 급선무다. 1년에 고농도 미세먼지에 노출되는 날이 며칠인지, 이 상태가 얼마나 오래 지속하는지 정확히 알아야 한다. 학교 안팎의 공기 질은 특히 더 중요하다.”

WHO는 최근 '대기오염과 어린이 건강'이란 보고서를 통해 위험성을 경고했다. 세계적으로 5세 미만 어린이 사망 원인을 살펴보니 1위가 조산(미숙아), 2위가 대기오염에 의한 급성 하기도 감염(ALRI)이었다.

미세먼지가 어린이의 건강에 왜 더 안 좋은가.
“어린이는 호흡량이 더 많아 미세먼지를 더 많이 들이키고 신체 기관이 발달 중이어서 성인보다 피해가 더 크다. 어릴 때 대기오염에 노출된 아이들은 10대나 성인이 돼서 당뇨병·고혈압·비만·동맥경화·고지혈증 같은 대사성 질환을 앓을 수 있다. 대기오염으로 지능(IQ)이 떨어질 수 있다는 연구도 있다. 태아도 마찬가지다. 공기 오염이 미래 세대를 위협한다면 이건 비상사태다. 서둘러 행동에 나서 할 수 있는 모든 조처를 해야 할 문제다.”

“한중이 함께 ‘대기오염과 전쟁’ 선언해야”

2018년 세계 초미세먼지 오염지도. [WHO 제공]

2018년 세계 초미세먼지 오염지도. [WHO 제공]

한국은 중국발 미세먼지에 고통받고 있다. 어떻게 해야 하나.
“아주 운이 나쁜 일이지만 이웃 나라 때문에 영향받는 게 한국만의 케이스는 아니다. '월경성 대기오염(Trans-boundary Pollution)'이란 단어가 보여주듯 대기오염은 국가의 문제이자 국제적 협력으로 풀어야 한다. 한국과 중국 정부가 함께 '대기오염과의 전쟁'을 선언하고 획기적인 오염 물질 저감대책을 추진해야 한다. 개인적으로는 한국이 석탄 발전소를 폐쇄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본다.”

네이라 국장은 오는 5월 서울에 문을 여는 'WHO 아시아·태평양 환경보건센터'가 중국발 미세먼지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센터의 주된 목적은 ▶아태 지역에서 환경오염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과학적 증거를 확보하고 ▶환경오염 저감과 건강 증진을 위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것이다.

WHO가 중국에 대기오염을 줄이라고 할 수 있나.
“우리가 중국 정부에 '한국에 피해를 주고 있으니 이렇게 저렇게 해라'라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국제기구들이 '건강'을 명분으로 글로벌 포럼이나 성명 등을 통해 중국의 대기 질 개선을 촉구할 수는 있다. 특히 WHO의 경우 대기오염으로 인한 사망자 수 등을 근거로 국민 건강을 위한 중국 정부의 계획은 뭔지, 화석연료 저감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물을 수 있다. 중국이 오염 물질을 줄이면 결국 중국에도 좋은 일이지 않나.”

내년까지 세계 대기오염 지도 제작

국제기구들은 '대기 질 개선'이란 공동 목적 아래 유례없이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제네바에서 열린 제1회 '국제 대기오염·건강 콘퍼런스'에서 WHO와 세계기상기구(WMO), 유엔환경계획(UNEP), 기후및청정대기연합(CCAC)은 '공기 질 관리 5단계 액션플랜'을 정하고 협업하기로 했다.

이들은 2020년까지 최신 세계 대기오염 지도를 만들어 실시간 데이터를 제공하고, UNEP는 이를 토대로 2021년 대기 질 개선 실천 방안을 유엔 가입국들에 전달할 방침이다.

제네바=이소아 기자 lsa@joongang.co.kr

◇본 기획물은 한국 언론학회-SNU 팩트체크 센터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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