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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하는 세상] “지 아빠랑 똑같아”…아이에겐 깊은 상처 되는 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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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13일까지 코엑스 메가박스 이벤트홀에서 열리는 이 전시에 참여한 아동들이 부모에게 상처받는 말을 들었을 때 느낌을 그린 그림. (왼쪽부터) ‘내가 널 왜 낳았는지 모르겠다’‘네 형 반만이라도 따라가 봐’‘너 또 싸웠니?’‘너 커서 뭐가 되려고 그래’라는 말을 들었을 때 감정을 표현했다. [사진 세이브더칠드런]

13일까지 코엑스 메가박스 이벤트홀에서 열리는 이 전시에 참여한 아동들이 부모에게 상처받는 말을 들었을 때 느낌을 그린 그림. (왼쪽부터) ‘내가 널 왜 낳았는지 모르겠다’‘네 형 반만이라도 따라가 봐’‘너 또 싸웠니?’‘너 커서 뭐가 되려고 그래’라는 말을 들었을 때 감정을 표현했다. [사진 세이브더칠드런]

“네 살 난 딸에게 가끔 했던 말이 꽤 있네요. ‘잘해야지’ 다짐해도 가끔 욱하죠. 무심코 나온 말이 이렇게 상처가 된다니….”

세이브더칠드런 ‘100가지 말상처’ #아이들 그림에 그대로 드러나 #다그치기 전에 공감 먼저 해줘야

박은아(43·경기도 하남시)씨는 지난달 28일 코엑스 메가박스 이벤트홀에서 아동권리단체 세이브더칠드런이 기획한 전시 ‘그리다 100가지 말상처’(2월 28일~3월 13일)를 보며 이렇게 말했다. 이곳엔 자녀가 상처받는 부모의 말 100가지와 자녀가 이 말을 들었을 때 드는 느낌을 직접 그린 그림이 전시돼 있다. 만 3세부터 만 16세까지 300여 명의 아동이 참여했고 이 중 100점이 전시회에 출품됐다.

‘안 되면 안 된다는 줄 알아’ ‘너 이따 집에 가서 보자’ ‘계속 그러면 무서운 아저씨가 잡아갈 거야’ ‘네 형 반만 따라가 봐’ ‘다 너 잘되라고 그러는 거야’ 등 전시에 등장한 100가지 말은 많은 부모가 아이를 혼낼 때 자주 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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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엔 울면서 창살에 갇힌 아이, 형과 동생이 함께 나무에 묶인 모습 등이 그려져 있다. 그림 옆엔 이 말을 쓰면 안 되는 이유와 대체할 말도 적혀 있다. 아예 쓰지 말아야 할 말도 있다. ‘내가 널 왜 낳았는지 모르겠다’처럼 아이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말이나 ‘지 아빠랑 똑같아’처럼 부부간의 불만을 아이에게 표출하는 말이 그 예다.

이 말들은 자문을 맡은 마음돌봄상담센터 진혜련 소장이 책 『아이에게 상처를 주는 101가지 말과 행동』(김주희 지음)과 그간 아동 전문가들이 꼽아온 ‘아이에게 해서는 안 될 말’을 종합해 선정했다. 대체로 아이를 무시하며 모욕감을 주는 말, 짧은 시간에 부모의 말을 듣게 하려 아이를 협박하는 말이다.

이날 만난 진 소장은 “이 캠페인은 자녀보다 부모를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단순히 말을 가려 하자는 게 아니라 자녀와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는 태도를 고민하자는 얘기다.

바쁜 생활 속에 정서적 여유가 없는 부모가 자녀의 행동을 빨리 교정하려 할 때 이런 말을 쓰게 된다. 진 소장은 “많은 부모가 겁주는 말을 들으며 자라 이런 말이 (아이가 말을 듣게 하는 데) 효과가 빠른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무심결에 쓰는 것”이라며 “장기적으로 부모와 자녀의 관계를 틀어지게 하는 방식”이라고 꼬집었다.

이 캠페인에 참여한 노연호(6) 어린이의 어머니 김소영(37)씨는 ‘이럴 거면 엄마 아들 하지마’라는 말을 들은 연호의 그림을 보다 눈물이 흘렀다. 그림 속 아이 머리 위엔 두 주먹이 있었고 아이는 울고 있었다. 네 아이를 키우는 김씨는 “많은 엄마가 바쁘고 힘들어 어쩔 수 없이 겁주는 말을 썼다고 합리화한다. 나 역시 ‘넷을 키우면서 이 정도면 덜 혼낸다’고 생각했지만 연호의 그림을 보고 한마디라도 아이가 상처받지 않게 훈육해야겠다고 결심했다”고 말했다.

가장 중요한 건 훈육에 앞서 아이의 감정을 공감해주는 태도다. 예를 들어 씻고 어린이집에 가야 할 시간에 장난감을 갖고 노는 아이를 바로 질책하기 보단 “집에서 엄마랑 더 놀고 싶구나”라고 마음을 읽어준 뒤 가르쳐야 한다. 진 소장은 “자녀에겐 가장 친밀한 존재인 부모가 자기감정을 받아주는 경험은 아주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부모 스스로 마음의 틀을 바꾸면 아이를 대하는 태도도 조금씩 바뀔 수 있다”고 덧붙였다.

세이브더칠드런은 1919년 세계 제1차대전 직후 전쟁으로 고통받는 아이들을 위해서 창립됐다. 국내에선 아동권리보호에 초점을 맞췄다. 세이브더칠드런 미디어커뮤니케이션부 박영의 부장은 “우리 사회가 아동을 대하는 태도는 가장 일상적인 소통 수단인 ‘말’에서 드러난다는 생각에 이번 전시를 기획했다”며 “아동을 부모의 소유물이 아닌 온전한 인격체로 대우하길 바라는 메시지를 담았다”고 밝혔다.

세이브더칠드런은 2011년 민간단체로는 처음으로, 국내 아동 671명의 목소리가 담긴 보고서를 UN아동권리위원회에 제출해 사전 심의 회의에 참석했다. 2015년엔 가정내 체벌을 금지하는 아동복지법 개정을 이끌어냈다.

김나현 기자 respir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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