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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동 차단 사태, 못마땅한 남친 전화 딸 안바꿔 주는 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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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5면

4일 전북 전주시 전북지방경찰청 브리핑룸에서 불법사이트 개설 운영자 검거와 관련해 언론 설명회가 열렸다. 박호천 전북경찰청 사이버수사대장이 기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전주=뉴시스]

4일 전북 전주시 전북지방경찰청 브리핑룸에서 불법사이트 개설 운영자 검거와 관련해 언론 설명회가 열렸다. 박호천 전북경찰청 사이버수사대장이 기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전주=뉴시스]

일부 포르노 사이트가 다시 열리기 시작하면서 ‘섣부른 정책의 실패 사례’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포르노 영상물 접속을 막겠다는 정부 정책은 어디서부터 꼬인 것일까. 전문가들은 접속하려는 서버 이름을 확인하는 SNI 필드 차단은 방식과 방향이 모두 잘못됐다고 지적한다. IT 전문가인 구태언 테크앤로 변호사는“SNI필드 차단 방식은 접속 요청 정보를 들여다본다는 점에서 마치 엄마가 전화기를 쥐고 마음에 안드는 딸 남자친구의 전화를 바꿔주지 않는 방식과 같다”고 비유했다. 시대에 맞지 않다는 얘기다.

다시 풀리는 야동 … 정책 실패 왜? #불온 서적 파는 사람 처벌해도 #서점 입구 막아서면 공권력 남용 #내부 검열 강화, 국제 비난 자초

구태언

구태언

김용대 카이스트 전기·전자공학부 교수는 “19금 이상 사이트를 19세 이상이 본다면 문제가 없다. 문제는 불법 사이트인데 이 경우 다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불법 콘텐트 제공자를 잡아내는 ‘소라넷’ 처벌 방식으로 접근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소라넷은 국내 최대 음란사이트로 해외에 서버가 있었지만, 경찰은 3년여 추적 끝에 운영진을 검거했고 사이트를 폐쇄했다. 이들은 올 초 법원에서 징역 4년,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 80시간 이수, 추징금 14억1000여만원을 부과 받았다.

임종인

임종인

김 교수는 “명백한 불법 행위자를 처벌할 때 아무도 불만이 없어 정책 효과가 높아진다”고 말했다. 임종인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개인의 접속 정보를 언제든 들여다 볼 수 있는데 하지 않는 것과, 아예 들여다 볼 수 없는 것은 큰 차이”라며 “정부나 이통사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개인 접속 정보를 들여다 볼 수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네티즌들이 더 충격을 받았다”고 진단했다.

임 교수는 “2001년 세계 60여개국이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협약을 맺고 사이버 범죄에 공동대응하기로 했다”며 “일종의 진화된 인터폴 형태로 운영하기로 했는데 한국은 사이버 범죄가 가장 많은 나라 중 하나면서 정작 여기에는 가입조차 안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인터넷 강국인데 국제 공조에는 발을 빼고, 국내에서는 패킷을 들여다보는 정책을 내놓으니 국제 사회에서 ‘차이나 2.0’이라는 비난이 나온다”고 진단했다. 그는 이어 “기술적 조치는 금세 무력화돼 실효성이 떨어지므로 국제 협력을 얻어 불법 사이트에 대한 결제를 차단하는 방식이 효과적”이라며 “G20 같은 국제 무대에서 불법 사이트 발본색원을 아젠다로 제안해 국제 공조를 이끌어내면, 국가 위상도 높이면서 검열 오해도 피하고 실효성도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김용대

김용대

구 변호사는 “이번 논란은 국가의 사이버 권한이 어디까지인가의 문제로 귀결된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국민의 자유를 침해할 소지가 있더라도 궁극적으로 정의를 위한 것이니 어쩔 수 없다고 정책 입안자들이 생각했을 수 있다”며 “이런 생각이 절대주의나 전체주의의 출발이 된다는 점을 되새겨야야 한다”고 말했다.

임 교수는 “인터넷의 역사는 자유를 통제하려는 시도와 그에 대한 반발의 역사였다”며 “미국에서는 지난 20여년간 콘텐트를 걸러내려는 모든 움직임에 대해 전부 위헌 판결이 났고, 이런 경험이 정부와 국민 사이에 신뢰로 쌓였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미국은 2013년에 스노든이 ‘국가안전보장국이 개인 데이터 패킷을 들여다본다’고 폭로했지만 국민들 60%이상이 ‘정부를 믿는다’고 응답했다”며 “정책에 대한 신뢰가 쌓인 것”이라고 설명했다.

구 변호사는 “이번 논란을 기술 문제로 따지고 들면 함정에 빠지는 것”이라는 분석도 내놨다. 그는 “국가가 국민의 열람 행위, 웹서핑 행위를 차단할 수 있느냐의 문제로 접근하면 ‘위헌성’이라는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가 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불온 서적을 파는 서점을 단속할 수는 있지만, 서점을 들어오는 손님에게 ‘불온서적을 사러 온 것 아니냐’며 불법 행위자로 몰아 부치면 국가 권력의 남용이 된다”고 설명했다.

정부에 대한 주문도 잇따랐다. 김 교수는 “개인의 패킷을 들여다 보는 방식은 감청 소지가 있어 통신비밀보호법도 위반이지만 정보의 평등이라는 웹 정신, 모든 사람을 연결하는 ‘inter-net’ 정신에도 위배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부가 이런 큰 원칙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불법 사이트 폐해는 없도록 정교하게 정책 설계를 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박태희 기자 adonis55@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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