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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트렌드] ‘인생사진’ 어디서 찍니? 미술관 그림 앞서 찰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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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세대 신풍속도

프랑스 파리 오랑주리 미술관에서 사진 촬영하는 심지선(@shimgsun)씨.

프랑스 파리 오랑주리 미술관에서 사진 촬영하는 심지선(@shimgsun)씨.

미술관 풍경이 달라지고 있다. 요즘 미술관을 찾는 2030세대에게 “사진 찍으러 왔냐?”고 물으면 “응! 작품 보고 마음에 드는 공간에서 예쁜 사진 찍으러 왔지!”라고 당당하게 답한다. ‘정숙’ ‘촬영 금지’ 표지판은 어느덧 사라지고 전시회곳곳에서 포즈를 잡는 관람객들 사이로 ‘찰칵찰칵’ 셔터 소리가 연신 들린다. 줄을 길게서서 사진 찍을 순서를 기다려야 하는 ‘포토존’까지 생겼다. 멋진 의상을 차려입고 전시장을 찾는 패션 피플, 일명 ‘전·찾·피(전시장을 찾는 피플)’가 늘고 있다. 이들은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검색어 ‘#미술관투어’ ‘#미술관나들이’ 등의 해시태그를 달고전시장에서 촬영한 사진을 올리는 사람들이다.

작품과 조화로운 옷 차려입고 #그림 속 인물과 같은 포즈 취해 #함께 찍은 사진을 SNS서 뽐내

서울 신사동 K현대미술관에서 작품 속 주인공 포즈를 따라 하는 전아름(@pigmong__)씨.

서울 신사동 K현대미술관에서 작품 속 주인공 포즈를 따라 하는 전아름(@pigmong__)씨.

직장인이자 프리랜서 모델로 활동 중인전아름(SNS 아이디 @pigmong__)씨는 강렬한 색상으로 꾸며진 미술관을자주 찾는다. 지난달 15일에는 서울 신사동 K현대미술관에서 열린 ‘뮤지엄 테라피디어 브레인’ 전시를 관람하며 여러 장의사진을 찍었다. 전씨는 “작품 속 인물과 동일한 포즈를 취하고 사진을 찍으면 작품속 오브제가 된 듯하다”며 “전시를 ‘본다’는 의미보다 ‘온몸으로 즐기는’ 시간”이라고 말했다.# 사업자 심지선(@shimgsun)씨는 지난달 22일 프랑스 파리 오랑주리 미술관에서 찍은 사진을 자신의 SNS에 올렸다. 심씨는 “미술관을 방문하기 전에 주요작품을 찾아보고 작품 색상과 분위기에 어울리는 의상을 준비한다”며 “모네의 작품‘수련’에 맞춰 하얀 실크 치마와 연한 갈색니트 상의를 입었다”고 설명했다. 이어서그는 “작품 앞에서 사진을 찍고 오면 단순히 눈으로 보는 것보다도 더욱 오래 기억할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맛집에서 문화 전시 공간으로 이동

SNS 콘텐트 역시 진화하고 있다. 사진만올리던 종전과 달리 이제는 사진에 동영상까지 추가해 개성 넘치는 콘텐트를 올리는사람까지 등장했다. 콘텐트를 담는 형태가변화하면서 내용도 다채로워지고 있다. 

충청남도 당진에 위치한 아미 미술관을 찾은 김사라(@sara_blossom)씨

충청남도 당진에 위치한 아미 미술관을 찾은 김사라(@sara_blossom)씨

3~4년 전만 해도 유명 식당을 찾아 음식사진을 촬영하는 것이 인기였다. 요즘은 음식과 같은 특정한 부분만 찍는 것이 아니라촬영하는 사람이 움직이면서 공간까지 보여줄 수 있는 문화 전시 공간이 인기 촬영지로 꼽힌다. 실제 인스타그램에서 ‘#미술관투어’ ‘#미술관기행’ ‘#미술관나들이’로검색해보면 관련 게시물만 2만5000장이넘는다.

일본 세타가야 문학 뮤지엄에서 포즈를 취하는 아마시 다마미(@tamachan_930).

일본 세타가야 문학 뮤지엄에서 포즈를 취하는 아마시 다마미(@tamachan_930).

박성희 한국트렌드연구소 책임연구원은 “일상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음식 사진에지겨움을 느낀 2030세대가 남들과 다른 콘텐트를 찾으면서 전시 공간으로 눈을 돌린것”이라며 “시각적으로 보여지는 요소가많고 화려한 패션과도 잘 어울리는 공간으로 SNS 콘텐트 활용에 매력적인 장소”라고 분석했다.

작품의 일부가 된 전시장

일부 지식층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예술 전시 공간이 누구나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문턱이 낮아진 것도 한몫했다. 옛 공간은작품을 하얀 벽에 일자 형태로만 나열하는 형태였다면, 요즘엔 전시장 공간 전체를 작품의 일부로 꾸미고 관람객이 공간에들어와 온전히 느끼고 즐길 수 있도록 구성한다. 

서울 신천동 롯데뮤지엄에서 진행한 전시회를 즐기는 황현주(@joox2dotcom)씨

서울 신천동 롯데뮤지엄에서 진행한 전시회를 즐기는 황현주(@joox2dotcom)씨

최근 열렸던 서울 신천동 롯데뮤지엄에서 진행한 팝 아트 전시회 ‘케니 샤프, 슈퍼팝 유니버스’는 이 같은 기획으로 인기를 끈 대표적인 사례다. 미국 현대미술을대표하는 팝 아티스트인 케니 샤프의 100여 작품을 보여준 전시다. 이 전시장의 일부는 관람객이 작품 공간 안에 들어가 예술적 분위기를 경험하고 자유롭게 사진을찍을 수 있도록 꾸며졌다. 아예 방문객이앉아서 쉴 수 있도록 의자가 놓인 곳도 있다. 지난 3일까지 열렸던 이 전시회엔 가수BTS의 RM, EXO의 세훈, 배우 신세경 등이 방문해 자신의 SNS에 사진을 올릴 만큼 2030세대에게 큰 호응을 얻었다.

서울 신사동 K현대미술관을 방문한 류종호(@rolemodel_ryu)씨.

서울 신사동 K현대미술관을 방문한 류종호(@rolemodel_ryu)씨.

관람객이 작품 속 주인공의 여정을 따라 움직이며 하나의 스토리를 함께 만드는전시장도 있다. 서울 신사동 K현대미술관에서 오는 31일까지 열리는 현대미술 전시회 ‘나의 어린 왕자에게’가 바로 그 현장이다. 국내외 작가 20여 명이 참여한 이 전시회엔 소설 『어린왕자』의 주제인 ‘틀에 갇히지 않는 상상력’을 회화, 영상 설치 예술등 다양한 수단으로 표현했다. 소설에 나오는 큰 달과 장미를 배경으로 촬영할 수있는 포토존까지 설치해 관람객들이 동화책 속 등장인물처럼 사진을 찍을 수 있다.최영심 K현대미술관 큐레이터는 “작품을배경으로 ‘인생사진’을 찍고자 하는 미술관 관람객이 지속적으로 늘고 있다”며 “이들을 만족시키는 전시를 만들기 위해 기획단계서부터 배경을 꾸미고 인물이 어우러질 수 있도록 조명과 색채를 선택하는 등공간 디자인 ‘미장센’을 강화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서울 한남동 디뮤지엄에서 미술 작품을 관람하는 모델 고민성(@koms_koms)씨.

서울 한남동 디뮤지엄에서 미술 작품을 관람하는 모델 고민성(@koms_koms)씨.

16개의 다양한 공간을 경험하고 사진을함께 찍을 수 있는 전시회도 있다. 서울 한남동 디뮤지엄은 오는 9월 1일까지 국내 미술작가 16명의 작품을 각각 다르게 옴니버스식으로 표현한 전시회 ‘I draw:그리는것보다 멋진 건 없어’를 전시 중이다. 방문자는 2층으로 구성된 예술 전시장을 구경하며 각기 다른 분위기의 작품 앞에서 사진을 찍을 수 있다. 

서울 능동 본다빈치뮤지엄에 꾸며진 미디어 아트 앞에서 사진을 촬영하는 윤효혁(@yoon_hh)씨.

서울 능동 본다빈치뮤지엄에 꾸며진 미디어 아트 앞에서 사진을 촬영하는 윤효혁(@yoon_hh)씨.

벽을 가득 채운 화면에 영상 콘텐트를 띄워 볼거리를 제공하는 전시장도 있다. 서울 능동 본다빈치뮤지엄이 오는 12월까지진행하는 ‘누보로망, 삼국지’다. 동양 고전『삼국지연의』를 움직이는 영상으로 볼 수있는 전시회다. 전시장은 바닥부터 천장까지 소설 속 한 장면으로 꾸민 공간들로 구성됐는데, 모든 관람객이 이 공간 내부로들어가 사진 촬영을 할 수 있도록 꾸몄다.김려원 본다빈치뮤지엄 연출대표는 “단순히 보고 지나치는 전시가 아니라 관람객이바쁜 일상을 잠시라도 잊고 영상 콘텐트를직접 체험하며 예술을 감상하고 휴식을 취하길 바라며 기획했다”고 설명했다.

“ 감상에 방해된다” 우려도

방문자가 자유롭게 사진을 촬영할 수 있도록 꾸며진 전시 공간이 많지만 우려의 시선도 있다. 작품을 집중해서 보고 싶은 관람자 입장에서는 사진을 촬영하는 사람들때문에 작품 감상에 방해된다는 것. 또 작품의 의미나 작가의 의도는 잊히고 단순히 사진 찍기 좋은 공간으로만 알려져 전시의 의미를 잃어버리는 경우도 있다. 프리랜서 공간 기획자 김도현씨는 “개인이 올린 SNS 게시물이 대중의 흥미를 끌고 이를 보고 미술관을 찾아오는 관람객이 많기 때문에 작가나 전시장 입장에서도 무시할 수 없는 흐름”이라며 “하지만 전시 공간 등을 기획할 때 단순히 사람을 끌어모으는 것을 목적으로 할 것이 아니라 전시장을 감상하면서 문화예술 콘텐트를 온전히 경험할 수 있도록 세밀하게 기획하는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글=라예진 기자 rayejin@joongang.co.kr, 사진=각 사례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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