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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스틱 소비대국 韓...'쓰레기 수출국' 오명 벗을 수 있나

중앙일보

입력

필리핀에 불법 수출됐던 한국산 쓰레기가 잔뜩 쌓여 있다. 그린피스 필리핀 사무소 관계자가 현장조사를 벌이는 모습. [연합뉴스]

필리핀에 불법 수출됐던 한국산 쓰레기가 잔뜩 쌓여 있다. 그린피스 필리핀 사무소 관계자가 현장조사를 벌이는 모습. [연합뉴스]

인구 1인당 1년에 145.9㎏ 소비 추산

‘753만9000t’

유럽의 플라스틱·고무 생산자 협회인 유로 맵(Euro-map)이 한국의 2020년 플라스틱 소비량을 예측한 수치다. ‘전 세계 63개국의 플라스틱 수지 생산·소비 보고서’(2016)를 통해서다. 보고서는 한국의 2020년 인구수를 5166만7000명으로 추산했다. 단순 계산하면, 한국인 1인당 1년에 145.9㎏의 플라스틱을 소비하는 셈이 된다. 일본(71.5㎏)의 두배 수준이다. 63개국 중 벨기에(177.1㎏)·대만(154.7㎏)에 이어 3위다.

지난해 4월 국내에서 폐비닐 수거 중단 사태가 일어났다. 전 세계 폐기물의 56%를 수입하던 중국의 폐기물 수입중단 조치 등에 따른 영향이었다. 중국의 이런 정책 변화는 81분짜리 다큐멘터리 영화 한 편으로 시작됐다. 왕지우랑(王久良) 감독의 2016년 작품 ‘플라스틱 차이나’(塑料王國)다. 영화는 폐플라스틱 처리 공장이 삶의 터전인 산둥성(山東省) 시골 마을 주민들의 얘기를 담았다. 오염된 환경 속에서 병까지 얻어가며 일하지만 빈곤한 삶은 바뀌지 않는 불편한 현실이 준 경각심은 컸다.

제로(0) 웨이스트숍 지구의 김아리 공동대표가 제품을 진열하고 있다. 벽면의 디스펜서 안에는 곡물류 등이 담겼는데 g(그램) 단위로 구입할 수 있다. 김민욱 기자

제로(0) 웨이스트숍 지구의 김아리 공동대표가 제품을 진열하고 있다. 벽면의 디스펜서 안에는 곡물류 등이 담겼는데 g(그램) 단위로 구입할 수 있다. 김민욱 기자

주목받는 '제로(0) 웨이스트' 운동

플라스틱 소비 대국이자 수출국인 한국에선 지난해 폐비닐 수거 중단 사태를 계기로 ‘제로(0) 웨이스트(waste)’ 운동이 본격화되고 있다. 쓰레기 없는 삶을 지향하는 운동이다. 이런 흐름을 반영해 에스엠 컬처 앤 콘텐트사는 지난해 8월 ‘이제는 제로 웨이스트 라이프가 대세’라는 제목의 빅데이터 리포트를 냈다. 지난해 10월에는 서울 동작구에 두 번째 제로 웨이스트 숍 ‘지구’가 문을 열기도 했다. 2016년 서울 성동구 ‘더 피커’ 이후 국내 두 번째라는 게 환경단체의 설명이다.

식료품·생활용품 판매점이면서 카페인 지구와 더 피커에 매장에서는 플라스틱 대체상품을 구매할 수 있다. 신문지 연필·대나무 칫솔·비누 열매·스테인리스 빨대 등이다. 일반 마트처럼 포장·묶음 상품은 판매하지 않는다. 견과류·곡물류 등도 원하는 만큼 g(그램) 단위로 살 수 있다. 지구 매장 내 일회용품은 테이크아웃용 종이컵이 유일하다. 이마저도 생분해가 가능한 대나무 재질로 만들었다. 더 피커는 텀블러나 머그잔을 가져오지 않으면 아예 테이크아웃 음료를 판매하지 않는다.

플라스틱을 사용하지 않은 필(必)환경 제품들. 오른쪽 끝 나무 볼펜은 버려진 목재를 활용했다. 김민욱 기자

플라스틱을 사용하지 않은 필(必)환경 제품들. 오른쪽 끝 나무 볼펜은 버려진 목재를 활용했다. 김민욱 기자

박병길 지구 공동대표는 “플라스틱 대체용품을 소개하는 공간”이라며 “환경에 대한 관심이 쏠리다 보면 사회나 정책을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송경호 더 피커 대표는 “쓰레기 발생 자체를 줄이고 싶어 문을 열게 됐다”고 말했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처리 한계 넘은 국내 폐기물 저개발국 흘러가

환경부에 따르면 국내 생활 플라스틱 폐기물의 하루 평균 배출량은 2016년 5488t에서 2017년 8164t으로 48.8% 증가했다. 국제 환경보호 단체인 그린피스는 처리 한계를 넘은 국내 폐플라스틱이 동남아시아 지역으로 수출되고 있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지난 2017년 중국의 폐기물 수입 중단 조치 이후 이런 흐름은 더욱 두드러졌다.

관세청의 수출입 무역통계 자료를 보면, 한국의 폐플라스틱은 태국·필리핀·인도네시아로 흘러 들어가고 있다. 태국의 경우 한국산 폐플라스틱을 2017년 604.2t 수입했지만, 지난해에는 6864.4t으로 10배 이상 늘었다. 같은 기간 ‘쓰레기 불법 수출’ 문제가 발생한 필리핀은 99%, 인도네시아는 49%씩 각각 한국산 폐플라스틱 수입량이 증가했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플라스틱 발생량 자체를 줄여야"

전문가들은 발생량 자체를 줄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오태현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전문연구원은 “폐플라스틱은 전 세계적으로 규제하는 추세”라며 “기업의 불필요한 포장재 사용을 지양하고, 플라스틱을 대체하는 친환경 제품 개발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유럽연합(EU)은 기존 ‘생산→유통·소비→분리·배출→수거→폐기’의 선형경제에서 생산단계 재활용(재생)을 고려하는 순환경제로 패러다임을 전환하고 있다.

장현숙 한국무역협회 연구위원도 “고품질 플라스틱을 선별하는 정교화된 폐기물 분리 배출 시스템을 구축해 재활용 작업을 수월하게 해야 한다”며 “플라스틱 배출 자체를 줄일 수 있게 플라스틱 재활용·재사용 기술을 가진 업체들을 지원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쓰레기 수출은 환경문제를 떠나 부끄러운 일"
그린피스 김미경 팀장 인터뷰

그린피스 서울사무소 김미경 팀장이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민욱 기자

그린피스 서울사무소 김미경 팀장이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민욱 기자

“수출된 쓰레기가 어떻게 처리될까요?”
그린피스 서울사무소 김미경(32·사진) 플라스틱 캠페인 팀장은 최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불법적인 플라스틱 폐기물 야적과 수출의 근본 원인은 지나친 (플라스틱) 소비에서 기인한다”며 이같이 물었다. 그는 세계 여러 나라의 ‘재활용 통’ 역할을 하는 말레이시아의 사례를 들었다.

김 팀장은 “그린피스 말레이시아 사무소가 지난해 11월 펴낸 ‘재활용 신화’ 보고서를 보면, 수입된 폐기물을 현지 업체가 불법 투기하거나 소각해 주민들이 심각한 피해를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한국에서 생산된 일회용 플라스틱 제품은 한 번 쓰고 버리기 때문에 저품질이 대부분이다. 한국에서도 처리가 어려운 저품질의 유색, 복합재질 폐플라스틱이 동남아시아 국가에서 잘 처리될 리 만무하다”고 지적했다.

김 팀장은 쓰레기를 다른 나라에 보내는 것 자체가 환경 문제를 떠나 굉장히 부끄러운 일이라고 지적한다. 특히 동남아시아·아프리카 등 소득수준이 낮은 국가의 경우 자원 부족 문제를 해결하고 산업화에 활용하려 폐기물을 수입하는데, 한국 역시 이들 국가의 경제 현실을 악용해 폐기물을 수출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플라스틱 문제의 근본적 해결을 위해서는 일회용 플라스틱 제품과 포장재 사용에 대한 포괄적인 규제가 필요하다”며 “이를 위해 기업이 제품 포장에 사용하는 일회용 플라스틱의 소비량 조사가 우선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소비감축 목표를 세우고 여기에 맞는 로드맵을 짠 뒤 생산자 책임 확대까지 나아가면 실효성 있는 정책이 될 것이다”며 “해외에서는 ‘다회용’ 정책이 오히려 새로운 경제모델을 만들기도 했다. 다회용 컵과 포장재를 수거한 뒤 씻어 카페나 식료품 가게 등에 공급하는 서비스업체가 좋은 예다”고 설명했다.

그린피스 말레이시아 사무소가 지난해 11월 펴낸 ‘재활용 신화’ 보고서 표지. [자료 그린피스]

그린피스 말레이시아 사무소가 지난해 11월 펴낸 ‘재활용 신화’ 보고서 표지. [자료 그린피스]

평택·인천= 김민욱·심석용 기자 kim.minwo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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