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전영기의 시시각각

이병령·이경우 원안위원 거부 사건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0면

전영기
전영기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전영기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전영기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원자력안전위원회(위원장 엄재식)는 테러와 사고 등 내외부 위협으로부터 원자력 발전을 보호하고 방사능이 국민 안전에 미칠 영향 등을 분석·평가하여 원전의 운행 중단까지 명령할 수 있는 있는 원자력에 관한 최고의 의사결정 기관이다. 비상시 방출되는 핵물질과 방사선에 의한 재해, 그리고 방사성 폐기물의 기술적 관리로부터 산하 단체·기업들의 방대한 보고서에서 은폐 요소를 파헤쳐내야 하는 고도의 전문성이 요구되는 기관이다. 문재인 정부는 탈원전 미신에 빠져 과학기술적으로 단련된 전문가들을 원안위에서 체계적으로 배제해 왔다.

정부가 국회 의결 무시한 초유 사태 #청와대 입김 의심 … 3권분립 파괴돼

그런 원안위가 최근 국회를 무시하고 3권분립을 파괴하는 사건을 저질렀다. 2018년 12월27일 국회가 표결로 선임해 문재인 대통령에게 위촉을 요청한 원안위원 2명에게 거부권을 행사한 것이다. 이 황당한 사건의 피해자는 1990년대 원자력연구원의 본부장으로 북한 신포에 보낸 한국형 원자로를 설계·개발·완성시킨 이병령(72)박사와 액체금속학의 대가로 원전 부품과 사용후 핵연료 처리·처분 과정의 안전도를 점검해 줄 이경우(57) 서울대 재료공학부 교수다. 두 사람은 국회법에 따라 자유한국당이 추천하고 국회 의결을 거쳐 국회의장이 서명해 정부에 넘긴 원안위원 지명자다. 원안위에 합류하면 기존의 다섯 명 위원들 보다 탁월한 전문적 식견과 안목을 보여줄 것으로 기대되는 초당파적인 인물이다.

현 원안위원들은 사회복지학과 출신 위원장을 비롯해 화공학,지질환경, 예방의학 교수와 민변 소속 변호사로 원전의 내부 구조와 프로세스를 제대로 아는 전문가는 한 명도 없다. 비전문가한테서 원자력 발전의 각 단계마다 미묘하게 나타나는 특성들을 간취해 원전 안전을 실현시킬 능력을 기대하긴 어렵다.

정부 부처인 원안위에 의해 국회 결정이 부정당하는 초유의 위헌적 사건은 최연혜 의원에 의해 적발됐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인 최 의원이 본회의 표결 두달이 지나도록 이병령·이경우 지명자에게 원안위원 위촉장이 전달되지 않은 점을 의아하게 여겨 추적하던 중 발견했다.

원안위가 주장한 결격사유는 이병령은 순수 민간회사인 원전수출 기업의 대표라는 점, 이경우는 원전산업협회가 초청한 전문가 간담회에 참석해 자문료 25만원을 받은 적이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원안위 설치법 10조에 열거된 5가지 결격사유와 아무런 관계가 없다.  5개 결격사유는 국가공무원법상 무자격자, 탄핵된 자, 정당인, 최근 3년내 원자력이용자 단체장 등의 근무자, 최근 3년내 원자력이용단체 등으로부터 용역을 받은 자인데 두 사람은 여기에 일절 해당하지 않는다.

더구나 이병령 박사의 회사는 6년간 해외 마케팅만 하다 그나마 3년전부터 공식 휴업 상태다. 이경우 교수도 원전산업회의로부터 자문료를 받았지만 용역 수탁도 아니고 특정 사업에 참여한 것도 아니었다. 법에도 없는 결격사유를 정부가 자의적으로 만들어 국회를 우롱한 것이다.

얼마전 문재인 대통령은 야당이 추천한 5·18진상조사 위원들에게 거부권을 행사해 3권분립 파괴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 이번엔 정부가 국회에서 표결로 통과된 원안위원을 비토했으니 반헌법적인 직권남용죄를 묻지 않을 수 없다. 존재감 없는 국회의장, 굴종에 가득찬 여당, 문제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딱한 야당이 절망스러울 뿐이다. 원안위가 자존망대(自尊妄大)한 행태를 보이는 이유는 한 가지 밖에 없을 것이다. 청와대가 입김을 넣었으리라. 청와대의 독선과 오만이 하늘을 찌르다 보니 대통령에게 보고도 않고 원안위를 통해 국회와 야당을 능멸하고 있는 게 아닌가.

전영기 중앙일보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