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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회담 낙관론 펼치다 당황한 외교안보라인

중앙일보

입력

2차 북ㆍ미 정상회담의 실패는 사실상 예견된 것이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는 가운데 문재인 정부의 외교·안보라인은 이런 기류를 제대로 읽지 못해 낙관론만 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2일(현지시간) "북한이 미국이 요구하는 일괄타결 방식의 비핵화를 받아들일 가능성은 제로에 가까웠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감으로 이를 밀어붙였다. 김 위원장 역시 제재 완화에 완강한 미국의 입장을 잘 알지 못한채 영변 핵 시설만으로 제재 해제를 요구하면서 노 딜(no deal)은 예견된 수순이었다"고 보도했다. 또 "이를 존 볼턴 안보보좌관과 폼페이오 국무장관등 미 참모진은 알고 있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의 외교ㆍ안보라인은 연초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의 친서 외교 가동으로 북·미 대화가 급물살을 탄 이후 장밋빛 전망만 부각시켰다. 정의용 청와대 안보실장은 이달 초 스티븐 비건 미 대북정책특별대표를 면담한 이후 “큰 방향에서 북·미 회담이 잘 움직이고 있다”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18일 종교 대표단과 만난 자리에서 “비핵화와 북ㆍ미 관계 정상화에서 큰 진전이 있을 것으로 전망한다”며 기대감을 높였다. 협상 이틀 전에는 김의겸 대변인이 정례 브리핑을 통해 종전선언을 기정사실로 했다. 김 대변인은 "주체만 놓고 봐도 많게는 4자 남·북·미·중, 3자 남·북·미, 2자 북·미 등 여러 방식이 있을 수 있는데 어떤 형식의 종전선언이라도 우리 정부는 환영이다”고 말했다.

 북·미 협상을 중재해 온 외교부도 다르지 않았다. 지난달 31일 북·미 실무협상 경과를 설명하는 자리에서 외교부 당국자는 “김 위원장은 세계만방에 비핵화 의지가 있다고 밝혔으며 협상의 모멘텀이 유지되고 있다”며 “지난 1년 동안 매우 큰 성과가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결과는 협상 결렬이었다. 외교부 고위 당국자는 28일 밤(현지시간) 베트남 하노이에서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회담 결과가 기대 수준에 못 미친 것 아니냐'는 질문에 “누구도 기대를 높이지 않았다. (대화의)흐름 속에서 잘 돼 가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던 것”이라며 흐름과 다른 해명을 내놨다.

 외교가에선 정부의 외교·안보라인이 특히 제제완화와 관련된 미국의 완강한 입장을 제대로 읽지 못하고 남북 경제협력 가능성만 기대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제임스 김 아산정책연구원 박사는 “미국은 북한이 매우 높은 단계의 비핵화 조치를 해야만 제재 완화를 하겠다는 입장을 계속 유지했다"며 “한국 정부가 이런 흐름을 제대로 읽지 못하고 남북교류 사업 강행 등 열매만 따는 일에 너무 집착했다"고 말했다.

 협상 결렬 가능성을 사전에 인지하고도 청와대에 제대로 전달이 되지 않았다는 말도 나온다. 외교부 사정을 잘 아는 소식통은 "미국의 협상 테이블에 노 딜 카드가 있었다는 것을 외교부도 사전에 인지하고 있었다"며 "북·미 대화 국면에서 '판이 엎어질 수도 있다'는 보고를 청와대에 차마 하지 못한 것 아니냐"고 말했다.
 박휘락 국민대 정치대학원장은 “청와대의 인적 구성을 고려할 때 북·미 정상회담이 실패할 수도 있다는 목소리를 (문 대통령이) 듣기 어려웠을 것"이라며 "판문점 선언 이후의 과정을 되돌아보고, 향후 개각 때 외교·안보와 관련해 대통령에게 다른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참모를 기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유정ㆍ김지아 기자 uu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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