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많아 '유해동물' 신세된 노루, 이젠 급감해 또 문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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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시 노루생태관찰원에서 나뭇잎을 받아먹는 노루. 최충일 기자

제주시 노루생태관찰원에서 나뭇잎을 받아먹는 노루. 최충일 기자

“전에 온라인에서 본 것처럼 많은 노루가 뛰어노는 모습을 기대했는데 생각보다 휑하네요” 평소 동물을 좋아해 지난 1일 오후 제주시 봉개동 노루생태관찰원을 찾은 이정민(34·부산시 대연동)씨는 적잖게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한라산 상징서 골칫거리로…과거 먹이주기로 늘어 #농가 피해 호소로 2013년부터 올해 6월까지 포획 #2013년보다 9000여 마리 줄어…포획·로드킬 영향

같은 날 가족과 함께 이곳을 찾은 최현(17·경기 수지고1)양 “노루생태관찰원을 찾으며 가족들과 노루의 천적은 멧돼지 등 다른 야생동물이 아닌 사람이 아닐까 하는 이야기를 했다”며 “여기 와서 직접 노루가 줄어들었다는 얘기를 듣고, 그 상황을 보니 야생동물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고 했다. 이씨와 최양 같은 관광객들이 노루의 숫자가 줄었다 느낄만하다. 제주 한라산 노루의 전체 개체 수가 줄었기 때문에 노루생태관찰원의 노루도 전보다 자주 보이지 않는다.

지난 1일 제주시노루생태관찰원을 찾은 관광객들. 최충일 기자

지난 1일 제주시노루생태관찰원을 찾은 관광객들. 최충일 기자

지난해 이맘때 100마리가 넘던 이곳의 노루는 현재 23마리뿐이다. 너무 많아져 ‘유해동물’ 신세로 전락한 한라산 노루가 최근에는 개체 수가 눈에 띄게 줄어 논란이다. 답은 나와 있다. 너무 많이 잡아서다. 제주도는 지난 2013년 7월부터 노루를 한시적 유해동물로 지정했다. 1980년대에 한라산의 상징 동물인 노루를 살리자며 먹이를 주고 보호한 탓에 먹이를 찾아 한라산 밑 농가들의 밭까지 침범했기 때문이다.

제주도는 노루에 의한 농경지 피해 민원이 잇따르자 2013년 7월 ‘야생동물 보호 관리 조례’를 개정해 3년 동안 노루를 ‘한시적 유해동물’로 지정했다. 이후 2016년 7월부터 올해 6월 말까지 유해동물 지정을 연장해 허가를 받아 포획할 수 있도록 했다. 2013년 7월부터 지난해 말까지 포획된 노루는 7032마리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됐다. 제주에 서식하는 노루는 2009년 1만2800여 마리로 추산됐으나, 지난해에는 3800여 마리로 줄어 10년 새 9000여 마리가 감소했다.

제주도는 지난 2013년부터 7000여 마리의 노루를 포획했다. 최충일 기자

제주도는 지난 2013년부터 7000여 마리의 노루를 포획했다. 최충일 기자

제주에 사는 노루의 적정 개체 수 6100마리의 62.3%(3800마리)만 남은 상황이다. 이런 상태라면 밀렵 등으로 개체 수가 크게 줄어 노루보호운동을 벌였던 2000년대 이전 상황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우려 섞인 관측까지 나온다. 유해동물로 지정된 2013년 이후 개체 수가 크게 줄어 2015년 8000여 마리, 2016년 6200여 마리, 2017년 5700여 마리로 지속 감소했다.

줄어든 노루숫자(9000여 마리)가 잡은 7000여 마리보다 더 많은 건 이유가 있다. 전문가들은 어미를 잡으면 젖먹이 새끼들이 살 수 없는 점, 짝짓기 기간에 잡아 개체 수가 늘어날 기회를 줄인 점, 총에 맞거나 도망치다 다쳐 숲속에 들어가 죽어 수거가 안 된 노루가 꽤 있는 점 등을 이유로 들었다.

제주시노루생태관찰원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노루들.  최충일 기자

제주시노루생태관찰원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노루들. 최충일 기자

또 산간 도로 등에서의 로드킬도 노루가 줄어든 이유다. 제주도세계유산본부에 따르면 지난 2010년부터 2018년 9월까지 로드킬로 희생된 노루는 2700여 마리다. 2010년부터 2012년에는 매년 평균 140마리였다가 2013년에는 330여마리로 증가한 후 2014년부터 2018년까지 450여 마리로 증가했다.

로드킬이 늘어난 것도 이런 포획의 간접 영향이라는 분석이다. 해발 400m 이하에 서식하던 노루들이 포획에 위협을 느껴 주변 지역으로 확산되는 과정에서 도로를 횡단하는 경우가 많아졌다는 것이다. 또 중산간 이하 지역에서는 무분별한 개발과 과거 초지대였던 목장용지가 다른 용도로 변경돼 서식환경이 악화된 것도 로드킬이 늘어나는 이유로 분석됐다.

지난 1일 제주시노루생태관찰원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노루들. 최충일 기자

지난 1일 제주시노루생태관찰원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노루들. 최충일 기자

제주도는 더 정확한 노루 개체 수 파악을 위해 최근 지역별 노루 개체 수를 조사했다. 세계유산본부 한라산연구부에 따르면 봉개동의 노루 서식밀도가 ㎢당 11.28마리로 가장 높았다. 이어 조천읍(11.20마리), 구좌읍(10마리), 연동(9.61마리), 아라동(8.93마리), 애월읍(6.4마리), 한림읍(4.83마리) 순이었다. 또 노루들이 많이 서식하는 제주도 내 오름 368곳 중 110곳을 조사한 결과 오름 내 노루의 평균 서식밀도는 ㎢당 8.29마리였다.

강연호 제주도의원(무소속·환경도시위원회)은 “유해야생동물 지정 기한 만료가 4개월여밖에 남지 않은 만큼 이에 대한 대책과 농작물 피해 최소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제주=최충일 기자 choi.choongil@joongang.co.kr

지난 1일 제주시노루생태관찰원을 찾은 관광객이 노루를 찾고 있다. 최충일 기자

지난 1일 제주시노루생태관찰원을 찾은 관광객이 노루를 찾고 있다. 최충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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