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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량한 조선인' 800명 낙인···태극기 지지 않는 섬마을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전남 완도군 ‘소안항일운동기념관’에 설치된 소안도 출신 독립운동가들 조형물. 소안도에서는 항일 독립운동가 89명이 배출됐다. 프리랜서 장정필

전남 완도군 ‘소안항일운동기념관’에 설치된 소안도 출신 독립운동가들 조형물. 소안도에서는 항일 독립운동가 89명이 배출됐다. 프리랜서 장정필

섬 곳곳 태극기 1500개 ‘항일의 섬’ 

‘일제가 소안학교를 강제 폐교하자 소안도민은 거세게 항거했다. 당시 주민 800명은 불령선인(不逞鮮人)이란 낙인이 찍힌 채 감옥에 갇히거나 감시를 받았다.’

독립운동가 89명…항일운동 발원지 #‘청해진’ 완도의 작은섬에 쏠리는 눈 #1920년대 주민들…‘불령선인’ 낙인

3·1운동 기념일을 이틀 앞둔 지난달 27일 전남 완도군 소안도. 23㎢ 면적인 섬 안쪽에 자리한 소안항일운동기념관에 들어서자 눈에 띄는 문구들이 보였다. 1927년 5월 10일 강제 폐쇄된 소안학교의 역사를 다룬 당시 언론보도와 논문 내용이다.

일제는 항일운동의 거점이라는 이유로 소안학교를 폐교했다. 이에 주민들은 학교 문을 열기 위해 서명운동에 나섰다가 ‘불령선인’이 됐다. 불령선인은 일제에 반발하는 ‘불온하고 불량한 조선인’을 말한다.

섬 전역에 태극기 1500개가 365일 휘날리는 전남 완도군 소안도 마을 전경과 어린이들. 프리랜서 장정필

섬 전역에 태극기 1500개가 365일 휘날리는 전남 완도군 소안도 마을 전경과 어린이들. 프리랜서 장정필

부산 동래 등과 ‘항일운동 3대 성지’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항일운동 거점이던 작은 섬에 전국적인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일제강점기 내내 격렬하고 조직적인 항일운동이 전개된 완도 소안도다. 당시 800명에 달했던 불령선인은 소안도 주민의 기개를 보여준다. 1920년대 소안도 주민이 6000여명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대부분의 집이 조선총독부의 감시를 받았다.

완도에서 18㎞ 떨어진 소안도에서는 1800년대 후반부터 광복 때까지 항일운동이 이어졌다. 당사도 등대 습격(1909년)과 완도 3·1운동 주도(1919년), 소안학교 투쟁(1927년) 등이 대표적이다.

부산 동래·함경도 북청과 함께 항일운동 3대 성지로 꼽히는 섬에선 항일 독립운동가 89명이 배출됐다. 이중 정부로부터 건국훈장 받은 인사만 20명에 달한다.

전남 완도군 ‘소안항일운동기념관’에 설치된 소안도 출신 독립운동가들과 태극기 조형물. 소안도에서는 항일 독립운동가 89명이 배출됐다. 프리랜서 장정필

전남 완도군 ‘소안항일운동기념관’에 설치된 소안도 출신 독립운동가들과 태극기 조형물. 소안도에서는 항일 독립운동가 89명이 배출됐다. 프리랜서 장정필

1909년 日등대 습격…항일운동 ‘불길’

소안도의 가장 큰 특징은 1년 내내 섬 전역에 태극기가 나부낀다는 점이다. 태극기는 섬 입구인 소안항을 시작으로 도로와 거리, 마을·상가 일대에 1500여개가 걸려 있다. 소안항일운동기념관을 중심으로 섬 전역에 휘날리는 태극기들에는 100년 전 3월의 분위기가 남아있다.

이 섬에서는 3·1운동보다 10년 먼저 무장 항일운동이 시작됐다. 1909년 2월 소안 출신 동학군 이준하 선생과 마을 청년 5명이 당사도 등대를 습격한 사건을 통해서다. 일본이 만든 당사도 등대는 조선에서 수탈한 물자를 실어 나르던 일본 상선의 뱃길을 밝히는 역할을 했다. 당시 주민들은 이 등대를 지키던 일본인 4명을 처단함으로써 항일의지에 불을 댕겼다. 당사도는 직선거리로 3.7㎞ 떨어진 소안도의 부속 섬이다.

10년 뒤 3·1운동이 발발했다는 소식에 주민들은 또다시 일어섰다. 당시 소안도 독립운동가들은 1919년 3월 15일 완도읍 장날에 열린 만세운동을 주도했다. 서울에서 3·1운동이 일어난 후 14일 동안 태극기와 독립선언서를 등사하는 등 치밀하게 거사를 준비한 결과다. 당시 1000여 명이 참여한 3·15 만세운동은 남해안 일대의 항일의지를 결집하는 역할을 했다. 소안도에서는 올해도 3월 15일 만세운동이 열린다.

일제강점기 당시 항일운동의 거점이던 전남 완도읍 소안도에 설치된 3·1운동 기념 조형물. 프리랜서 장정필

일제강점기 당시 항일운동의 거점이던 전남 완도읍 소안도에 설치된 3·1운동 기념 조형물. 프리랜서 장정필

“폐교 막자” 서명운동에 ‘불령선인’ 낙인 

3·1운동 8년 뒤인 1927년에는 소안학교 폐교를 둘러싼 집단 항거운동이 촉발됐다. 일제는 당시 복교운동을 한 주민을 집중적으로 감시·통제했다. “교육을 통해 독립을 해야 한다”는 주민의 의지가 한 섬에서만 무려 800여 명의 불령선인을 만든 요인이 됐다. 이대욱(65) 소안항일운동기념사업회장은 “태극기 게양과 무궁화 심기는 선인들의 독립 정신을 되새기려는 일”이라며 “소안도의 항일 역사를 전 국민에게 알리고 싶다”고 말했다.

소안도 항일운동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송내호 선생이다. 소안도에서 태어나 서울 중앙학교를 졸업한 뒤 1919년 3월 완도에서 진행된 만세운동 등을 주도했다. 소안학교 교사로 재직하면서 수많은 독립운동가를 배출한 그는 34세의 나이로 옥사했다.

주민 정순옥(55·여)씨는 “소안 주민은 감옥에 갇힌 사람을 생각하며 추운 겨울에도 이불을 덮지 않을 만큼 항일의식이 높았다”며 “마을 곳곳의 태극기를 볼 때마다 당시의 아픔과 자부심을 동시에 느낀다”고 말했다.

완도=최경호 기자 choi.kyeong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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