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할머니 떠올리게 한 안락사 소설

중앙선데이

입력 2019.03.02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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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호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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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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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모든 지음

소설은 적극적인 안락사를 허용하는 법안이 발의된 10년 후쯤의 대한민국을 그린다. 지혜의 할머니는 가족들에게 자신의 수명 계획을 밝힌다. 국민투표로 법안 통과가 결정되자 할머니는 쾌재를 부르지만, 엄마는 망연자실해 한다. 반면 지혜는 할머니의 선택을 지지하는 쪽이었다. 일상생활을 유지할 기력조차 남지 않은 쇠약한 육체로 고통스러운 하루를 보내야 하는 사람이 자신의 삶을 종결짓는 것에 타인이 왈가왈부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해왔던 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할머니가 곧 일정을 잡을 거라는 이야기를 듣고도 그렇군요, 그럼 안녕히, 할 수는 없었다.

임종 당일, 예정된 시간이 되자 할머니는 지혜와 함께 담근 자두주를 가족들과 한 잔씩 마신 뒤, “다들 애 많이 썼다. 고맙다”는 마지막 인사를 남기고 눈을 감는다.

소설 『안락』 을 편집하며 나는 내내 돌아가신 내 할머니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임종 전 할머니를 마지막으로 뵌 것은 90세가 되는 생신날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다른 가족들이 왁자지껄 거실에서 이야기를 나눌 때, 할머니와 나는 둘이 방에 누워 TV를 보았다. 무심히 웃음을 터뜨리게 하는 예능 프로그램을 보던 중이었는데 그 웃음 끝에 할머니는 툭, 와 이리 안 죽는고 모르겄다, 라는 말을 뱉으셔서 내 심장을 쿵 내려앉게 했다. 하지만 그 톤은 슬프고 한스럽기보다 오히려 진심 섞인 투정 같은 말투여서 당황한 나는 한참이나 말을 골라야 했다. 10년이 지난 지금도 할머니가 너무 보고 싶어 눈물이 날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마음속으로 할머니에게 이제 편안하시냐고 물어보게 된다. 지혜 할머니처럼 우리 할머니도 가족들의 환송을 받으며 가셨으니, 웃고 계셨으면 좋겠다. 소설 『안락』 과 함께하는 동안, 할머니를 추억할 수 있어 더없이 좋은 시간이었다.

이정미 아르테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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