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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누구 편일까…비핵화 장기전 앞둔 북ㆍ미 계산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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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8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왼쪽)이 북ㆍ미 정상회담 장소인 베트남 하노이의 메트로폴 호텔 정원을 산책하고 있다. 북한의 조선중앙통신을 비롯한 북한 매체는 북ㆍ미 정상회담 소식을 전하면서 합의문 없이 끝난 점에 대해선 언급이 없었다. [사진 조선중앙통신=AP]

지난달 28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왼쪽)이 북ㆍ미 정상회담 장소인 베트남 하노이의 메트로폴 호텔 정원을 산책하고 있다. 북한의 조선중앙통신을 비롯한 북한 매체는 북ㆍ미 정상회담 소식을 전하면서 합의문 없이 끝난 점에 대해선 언급이 없었다. [사진 조선중앙통신=AP]

제2차 북ㆍ미 정상회담이 합의문 없이 끝나면서 북한 비핵화 협상이 장기전 국면으로 향할 전망이다.

협상 결렬 다음 날인 1일 조선중앙통신은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정상회담 소식을 전하며 “두 나라 사이에 수십여년간 지속된 불신과 적대의 관계를 근본적으로 전환해나가는 데서 중대한 의의를 가진다는 데 인식을 같이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김정은 동지는 트럼프 대통령과 새로운 상봉을 약속하며 작별인사를 나눴다”고 보도했다. 회담 결렬을 예상하지 못해 미리 준비했던 내용을 보도했을 가능성이 있지만, 일단은 회담장에서 뛰쳐나갈 의향을 내비치지 않았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부 장관은 앞서 지난달 28일(현지시간) 베트남 하노이를 떠나 필리핀 마닐라로 향하는 전용기 안에서 기자들과 만나 북ㆍ미 실무대화에 대해 “아직 일정을 정하지 않았다”면서 “내 느낌으론 시간이 좀 걸릴 것 같다”고 말했다. 협상은 계속하지만 먼저 판을 깔지는 않겠다는 기조로 읽힌다. 현재로선 미국과 북한 모두 판을 깨겠다는 선언을 하지 않고 있어 다음 수순은 협상 장기전이다.

대북 제재의 측면으로 보면 장기전은 대체로 미국에 유리하다는 전망이 많다. 촘촘한 대북 제재 때문에 북한 경제가 제약을 받고 있어서다. 이석 한국개발연구원(KDI) 선임연구위원은 ‘2018년 북한경제, 위기인가 버티기인가?’ 보고서에서 “지난해 북한의 대중국 수출은 2017년 대비 87% 줄었고, 대중국 수입도 33% 감소했다”며 “이는 거의 ‘붕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라고 평가했다. 중국은 북한의 최대 무역국이다.

정영태 북한연구소장은 “오랜 제재 속에서 김 위원장의 통치 자금과 중국의 기존 경제 지원이 바닥이 났을 것”이라며 “평양 미래과학자거리와 같은 신도시 사업으로 경기를 부양할 여력도 많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이럴 때 북한이 기댈 수 있는 대상이 중국이다. 그런데 중국은 백악관과 무역전쟁을 벌이기 때문에 대놓고 북한 지원에 나서기가 쉽지 않다는 관측이 많다. 박재적 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 교수는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은 조만간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 미ㆍ중 무역분쟁의 담판을 지어야 한다”며 “중국이 좀 더 유리한 조건을 미국으로부터 받아내기 위해 대북 제재를 강화하겠다고 제안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반면 북한이 장기전에서 불리하지 않다는 계산법도 있다. 익명을 요구한 전직 당국자는 “핵ㆍ미사일 고도화를 달성한 북한은 이제 변수가 아니라 상수”라며 “미국이 손 쓰지 않고 그대로 두면 인도ㆍ파키스탄과 같이 사실상의 핵보유국으로 인정을 받게 된다. 이는 미국 외교에선 악몽”이라고 말했다.

문성묵 한국국가전략연구원 통일전략센터장은 “북한은 나름대로 대북 제재에 대한 내성이 있다”며 “대북 제재 때문에 북한이 막다른 곳으로 몰리지만 않는다면, 시간이 지날수록 미국이 더 초조해할 것 같다”고 말했다.

장기전으로 향하는 와중에 트럼프 대통령이 북핵 문제에 대해 흥미를 잃을 경우 북핵이 백악관 관심사에 사라지는 국면이 올 수 있다. 김현욱 국립외교원 교수는 “지금까지 비핵화 협상의 가장 큰 동력은 이 이슈를 자신의 치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이었다”며 “미국에서 마이클 코언 청문회, 뮬러 특검 보고서 등으로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적 입지가 좁아질 경우 외교에서 손을 떼고 내치에 집중할 수 있다”고 예상했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트럼프 대통령의 우선 순위에서 북핵이 뒤로 밀리면 오바마 정부 때의 ‘전략적 인내’로 되돌아가는 셈이다.

이철재 기자 seaja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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