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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자·백자와 다른 아름다움···녹청자 1000년 만에 재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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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이정은의 장인을 찾아서(14)

녹청자 백상감 무궁화양각문호. [사진 이정은]

녹청자 백상감 무궁화양각문호. [사진 이정은]

토기, 옹기, 자기, 청자, 분청사기, 백자라는 용어는 박물관에서 많이 봤어도 녹청자는 모르는 사람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1965년부터 1년 동안 4차례 이상 인천시립박물관과 국립박물관이 공동으로 발굴·조사한 인천시 서구 경서동 국가사적 제211호로 지정된 도요지에서 녹청자의 파편 조각이 처음 출토됐다. 고 최순우 선생(1967 문화재위원회 위원)께서 처음으로 ‘녹청자’로 명명했다.

녹청자 도요지는 신라말부터 고려 초(9~10세기경)까지 중앙정부에서 지방호족에게 녹청자를 보급하기 위해 만든 가마로 추정된다. 고려부터 조선 시대까지 녹청자를 구워낸 도요지에선 발굴 당시 많은 녹청자 조각과 가마 도구가 발견됐다. 발굴 조사 시 드러난 가마의 남은 부분은 보호각을 지어 보존하고 있다.

녹청자는 녹색의 짙은 청자로 녹갈색의 유약을 발라 굽는다. 녹청자는 다른 도자기에 비해 철분성분이 많은 점토를 사용하는데, 녹갈색 유약을 발라야 그 독특한 색을 갖게 된다. 드물게 도자기의 몸통에 주름 무늬가 보이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문양이 없고, 표면이 투박하고 거친 것이 특징이다.

녹청자는 통일신라 질그릇을 바탕으로 만들어지다가 점차 세련된 제작기법이 동원돼 본격적인 청자로 발전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과거에는 녹청자를 질그릇에서 청자로 가는 과도기의 초기 청자로 인식했으나, 최근 문화재적 조사결과 고려 초기부터 중기, 후기에 걸쳐 생활용 막청자로 널리 제작한 것으로 추측된다.

이러한 인천 고유의 녹청자 문화재를 살리고 있는 장인이 있다. 녹청자 도예가 김갑용 장인(62)은 녹청자 파편만으로 수천 번 시행착오 끝에 1000년 전 녹청자를 최초로 재현하는 데 성공했다. 그는 옹기장인 아버지의 영향을 받았다.

김갑용 장인과 녹청자 달항아리. [사진 이정은]

김갑용 장인과 녹청자 달항아리. [사진 이정은]

“아버지께서 제가 어릴 적부터 옹기 공방을 운영하셨어요. 어려서부터 학교 공부보다는 만드는 것이 더 재밌었죠. 부모님은 옹기장의 대를 잇는 것을 반대하셨어요. 옹기장을 해서는 경제적 어려움이 있을 거라고 하셨어요. 하지만 매 맞을 각오하고 학교 다녀와서도 계속 흙으로 따라 만들었죠. 어릴 적 살림이 넉넉지 않았어요. 아버지가 충남 홍성 고향에서 물물교환으로 곡식과 바꾸던 옹기가 우리 가족 유일한 생계수단이었어요. 아버지는 65세까지 50년 정도 옹기만 만드시다가 별세하셨어요.”

그는 1976년부터 부친의 가업을 이어받아 옹기를 배우다 1990년대에 인천으로 우연히 답사를 가 녹청자를 알게 된 후 ‘녹청자가 나만의 길이다’ 싶어 삶의 터를 아예 인천으로 옮겼다. 일본은 녹청자가 독자 문화유산이라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인천 경서동에서 출토한 유물의 연대가 일본의 것보다 앞선 것으로 판명되면서, 그 제조기술이 한반도에서 유래된 것으로 밝혀졌다. 녹청자가 한국에서 탄생한 것으로 판명되었지만 그 뒤로 20여 년이 흐를 때까지 이를 연구하는 사람은 없었다. 김 장인은 이런 녹청자가 제대로 재현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고 1990년대 이 분야 연구를 시작했다.

“옹기는 예부터 시골집에 가면 있는 우리 선조의 지혜입니다. 숨을 쉬는 기능이 있어 조미료의 저장 용구, 주류 발효 도구, 음료수 저장 용구 등으로 사용했어요. 집 바깥에서 쓰는 게 장독이나 간장독이라면, 녹청자는 집안에서 쓰는 숨 쉬는 기능의 도자기에요. 자연의 재료라 웰빙시대에 매력적인 공예품이에요.”

녹청자 백상감 모란문광구병. [사진 이정은]

녹청자 백상감 모란문광구병. [사진 이정은]

녹청자는 파편만 있을 뿐 기록이 거의 없었다. 그는 녹청자가 토기에서 자기로 변천하는 과정에 만들어졌을 것이라 추정하고 재현하기 시작했다. 김 장인은 이 파편으로 수천여 번의 시도 끝에 조상들이 사용하던 녹청자를 재현했다.

녹청자는 인체에 이로운 친환경 도자기다. 음식을 담아 놓으면 잘 변질되지 않고 오래 보관할 수 있다. 쑥색을 띠는 게 특징인 녹청자는1230~1250도로 16시간 동안 구워내야 한다.

녹청자는 그 색감 때문에 온도가 가장 중요하다. 초벌, 재벌 두 번 구워낸다. 여느 도자기처럼 완벽한 모양이 나올 때까지 수천번 깨고 다시 만든다. 김 장인은 전국 도요지에서 모은 녹청자 조각들로 조상들이 사용하던 녹청자를 만들어냈다. “부서진 파편 조각이지만 저에게는 스승입니다. 이 파편을 부수고 다지고 구워서 그 옛날 조상들이 사용하던 녹청자를 만들어냈지요.”

현재 옹기장은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지만 아직 녹청자 분야는 없다. 김 장인은 녹청자 분야 문화재에 선정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다. 제조방식과 기술은 독보적인 길을 닦아왔지만 걸림돌이 있다. 녹청자 제조공정 중 전통방식인 장작 가마로 구워야 하지만 이를 설치할만한 장소가 마땅치 않고 경제적인 여유도 없다.

녹청자 고리문각호. [사진 이정은]

녹청자 고리문각호. [사진 이정은]

현재 연수문화원 부근에서 운영하며 가스 가마로 녹청자를 굽고 있지만 이 방식으로는 녹청자를 완벽하게 재현하기가 어렵다. 전통가마인 장작가마를 이용해야만 완벽한 재현이 가능하다. 이른 시일 내에 전통가마로 전통에 최대한 가깝게 만들어내는 게 그의 바람이다.

청자나 백자는 외면의 아름다움이 있다면 녹청자는 내면의 아름다움이 있다. 내면의 아름다움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그는 녹청자와 닮았다. 장인은 여러 가지 기법을 응용해 기존의 녹청자 문화재를 재현도 하지만, 녹청자의 아름다움을 좀 더 많은 사람이 그저 알아주길 바란다.

“저에게 꿈이 있다면 첫째는 녹청자 무형문화재가 되는 것이고, 또 하나는 녹청자를 바르게 후대에 전수하는 것입니다. 인천도, 녹청자도 문화로 바로 잡히길 희망합니다.”

이정은 채율 대표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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