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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취재일기

엘리엇, ‘중요 주주’인가 ‘투기꾼’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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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문희철 기자 중앙일보 기자
문희철 산업1팀 기자

문희철 산업1팀 기자

미국 실드에어 코퍼레이션은 일명 ‘뽁뽁이’로 부르는 비닐 포장재 생산 기업이다. 1989년 12월 5일 실드에어 코퍼레이션은 주당 0.4달러의 대규모 현금배당을 한다. 통상 연말배당(0.08~0.16달러)의 2~5배 수준이다. 대규모 배당 소식이 알려지자 주식투자자가 몰렸다. 1.41달러였던 주가도 2배(2.86달러) 뛰었다. 대규모 배당은 독이었다. 기업의 체력(이익)이 안 되는데도 무리하게 대출해 배당금을 지급했다. 돈을 벌어도 대출 갚는 데 급급했다. 실적이 따라주지 못하자 대규모 구조조정이 이어졌다.

요즘 외국계 펀드의 공세를 보면 30여년 전 사건이 떠오른다. 엘리엇매니지먼트가 주주 자격으로 현대차·현대모비스에 고배당을 요구했다. 이를 수용하면 현대차(5조8000억원)·현대모비스(2조5000억원)는 8조3000억원을 지급해야 한다. 양사의 지난해 순이익 합계는 3조5332억원이었다.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배당은 장단점이 있다. 자본을 댄 주주에게 성과를 충분히 배분해야 기업도 자본을 확보할 수 있다. 하지만 배당을 많이 한다고 주주에게 반드시 이익은 아니다. 성장 잠재력을 믿고 장기 투자한 사람에겐 손해가 될 수 있다. 기술력 확보를 위한 연구개발(R&D)이나 설비투자가 줄어들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유가증권시장에서 배당성향(13.5%·2010년→28.9%·2016년)이 2배 정도 뛸 때 시설 투자는 68.2%(43조8000억원→13조9000억원) 감소했다.

엘리엇은 현대차그룹 지배구조 개편 과정에 개입하면서 투자수익을 끌어올리려다 2000억원가량의 손실을 본 것으로 추정된다. 고배당을 요구하고 있는 것도 투자손실을 만회하려는 전략으로 보인다. 하지만 기업의 성장 잠재력을 침해하면서까지 배당금을 받아내겠다는 생각은 오히려 손실로 이어질 수 있다. 실제 실드에어 코퍼레이션은 2006년까지 16년 넘게 단 한 푼도 배당을 하지 못했다.

배당보다 영업이익을 늘려 기업 가치가 상승하면 주가도 올라 시세차익을 거둘 수도 있다. 적정 배당 규모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린다. 하지만 일 년 동안 벌어들인 돈보다 2~3배 많은 배당은 기업의 발목을 잡는다는 주장에는 대부분의 전문가가 동의한다. 엘리엇매니지먼트는 2월 28일 서신에서 자신들을 ‘현대차·기아차의 중요 주주’라고 소개했다. 중요한 주주는 이윤과 더불어 일자리·가치창출 등 기업의 장기적 성장에 관심을 갖는다. 오로지 주가 그래프만 보면서 주판알을 튕기다 손절매하는 주식 보유자는 ‘중요 주주’가 아니라 투기꾼이다.

문희철 산업1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