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실드에어 코퍼레이션은 일명 ‘뽁뽁이’로 부르는 비닐 포장재 생산 기업이다. 1989년 12월 5일 실드에어 코퍼레이션은 주당 0.4달러의 대규모 현금배당을 한다. 통상 연말배당(0.08~0.16달러)의 2~5배 수준이다. 대규모 배당 소식이 알려지자 주식투자자가 몰렸다. 1.41달러였던 주가도 2배(2.86달러) 뛰었다. 대규모 배당은 독이었다. 기업의 체력(이익)이 안 되는데도 무리하게 대출해 배당금을 지급했다. 돈을 벌어도 대출 갚는 데 급급했다. 실적이 따라주지 못하자 대규모 구조조정이 이어졌다.
요즘 외국계 펀드의 공세를 보면 30여년 전 사건이 떠오른다. 엘리엇매니지먼트가 주주 자격으로 현대차·현대모비스에 고배당을 요구했다. 이를 수용하면 현대차(5조8000억원)·현대모비스(2조5000억원)는 8조3000억원을 지급해야 한다. 양사의 지난해 순이익 합계는 3조5332억원이었다.
배당은 장단점이 있다. 자본을 댄 주주에게 성과를 충분히 배분해야 기업도 자본을 확보할 수 있다. 하지만 배당을 많이 한다고 주주에게 반드시 이익은 아니다. 성장 잠재력을 믿고 장기 투자한 사람에겐 손해가 될 수 있다. 기술력 확보를 위한 연구개발(R&D)이나 설비투자가 줄어들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유가증권시장에서 배당성향(13.5%·2010년→28.9%·2016년)이 2배 정도 뛸 때 시설 투자는 68.2%(43조8000억원→13조9000억원) 감소했다.
엘리엇은 현대차그룹 지배구조 개편 과정에 개입하면서 투자수익을 끌어올리려다 2000억원가량의 손실을 본 것으로 추정된다. 고배당을 요구하고 있는 것도 투자손실을 만회하려는 전략으로 보인다. 하지만 기업의 성장 잠재력을 침해하면서까지 배당금을 받아내겠다는 생각은 오히려 손실로 이어질 수 있다. 실제 실드에어 코퍼레이션은 2006년까지 16년 넘게 단 한 푼도 배당을 하지 못했다.
배당보다 영업이익을 늘려 기업 가치가 상승하면 주가도 올라 시세차익을 거둘 수도 있다. 적정 배당 규모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린다. 하지만 일 년 동안 벌어들인 돈보다 2~3배 많은 배당은 기업의 발목을 잡는다는 주장에는 대부분의 전문가가 동의한다. 엘리엇매니지먼트는 2월 28일 서신에서 자신들을 ‘현대차·기아차의 중요 주주’라고 소개했다. 중요한 주주는 이윤과 더불어 일자리·가치창출 등 기업의 장기적 성장에 관심을 갖는다. 오로지 주가 그래프만 보면서 주판알을 튕기다 손절매하는 주식 보유자는 ‘중요 주주’가 아니라 투기꾼이다.
문희철 산업1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