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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민·이발사·잡화상…"3·1운동은 평범한 사람들의 큰 역사"

중앙일보

입력

1919년 3월 1일 탑골공원에서 대한문으로 가두시위하는 모습.[국가기록원]

1919년 3월 1일 탑골공원에서 대한문으로 가두시위하는 모습.[국가기록원]

민족대표 33인, 학생 등 지식인이 주축이 돼 촉발된 3·1운동의 실제 주역은 농민과 이발사, 수레꾼, 잡화상 등 민초들이었다는 사실이 사료로 입증됐다.

국가기록원, 3·1운동 시위 참여자 조망 기념 책자 #지식인·학생부터 농민·숯장사·공장 노동자가 주역

행안부 국가기록원은 28일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당시 시위 참가자들의 면면을 조망한 기념 책자를 발간했다고 밝혔다. 그간 3·1운동에 대한 연구가 주요 독립 운동가들의 활동과 지역별 만세운동 전개 양상 등에만 중점을 맞췄던 것과 차별화했다.

기념 책자 발간을 위해 1919년 당대의 기록인 『한국독립운동지혈사』와 『한일관계사료집』 『한국독립운동사략』 등을 근거로 3·1 운동의 역사적 의미를 살폈다. 또 국가기록원이 소장하고 있는 각종 판결문과 피살자 명부 등을 토대로 독립운동에 참가자들의 나이와 신분 등도 밝혔다.

국가기록원은 3·1운동이 민족대표와 일부 독립운동가만의 업적이 아닌, 민초의 자발적 참여로 이뤄진 역사적 사건임을 비중있게 다뤘다.

숯장사, 공장 노동자 등이 만세 운동에 참여했다 수감된 내용이 담긴 판결문

숯장사, 공장 노동자 등이 만세 운동에 참여했다 수감된 내용이 담긴 판결문

실제로 1919년 3월 1일에 시작돼 같은해 4월 30일까지 전국에서 1542회 이상 집회가 이어졌던 만세운동의 참가자 가운데 농민의 참여 비중이 가장 높았다. 이 외에도 이발사·수레꾼·잡화상·재봉업자·솥장사·숯장사 등도 적극적으로 시위에 참여했다.

국가기록원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경남 밀양에서는 14~15세에 불과한 어린 학생들이 만세 시위에 참가했다가 체포됐다. 서울에서는 땔감 숯장수, 담배공장이나 양말공장 노동자, 무직자 등도 만세 시위 현장에서 일본군에 끌려가 수감돼 수개월~수년간 징역을 살았다.

이소연 국가기록원장은 “이번에 발간한 책자를 통해 평범한 사람들의 참여가 역사를 이끄는 원동력이란 사실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국가기록원이 펴낸 책자는 추후 누리집(www.archives.go.kr)에 게재할 예정이다.

박형수 기자 hspark9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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