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8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핵 담판을 시작하면서 ‘속도’를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오전 9시(현지시간) 시작된 단독회담에 앞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환담에서 “오늘 김 위원장과 다시 함께해 기쁘게 생각한다”며 “오늘 말고도 앞으로 많이 만날 것으로 보인다”고 운을 뗐다. 그러면서 “처음부터 이야기를 했지만 속도가 가장 중요한 것은 아니다”며 “중요한 건 북한이 핵실험이나 미사일 실험이 없었다는 것에 대해 김 위원장에게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반복적으로 ‘속도’를 거론한 건 북한이 원하는 대로 대북제재 해제를 하기는 곤란하다는 취지로 풀이된다. 완전한 비핵화를 이루기 전에 성급하게 제재 해제에 나서지는 않을테니 완전한 비핵화 부터 먼저 나서라는 일종의 '선공'이라는 관측이다.
회담장인 하노이로 출발하기 전 “북한의 경제적 잠재력”을 언급했던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도 “북한은 경제 강국이 될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고 반복했다. 북한과 미국의 관계가 강력하다는 평가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오늘 뿐 아니라 중기, 장기적으로도 좋은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언급해 북한의 비핵화를 달성하기 위해 장기전을 나설 것임을 예고했다. 평소 자신감에 차 파격적인 언급을 즐겼던 트럼프 대통령의 언어 습관을 고려할 때 신중해졌다는 평가다.
트럼프 대통령은 언론에 공개된 환담 말미에 김 위원장을 향해 “어제 얘기할 때 발언한 내용에 대해 감사의 뜻을 표한다”며 “지금 얘기해도 좋고 안해도 좋지만...”이라고도 했다. “북한이 추가 핵실험이나 미사일 발사를 하지 않은 것에 감사한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언급을 고려하면 김 위원장은 전날 진행한 단독회담과 친교 만찬 도중 평양에서 들고 온 비핵화 카드를 내비친 것으로 풀이된다.
트럼프 대통령의 '속도' 표현이 포함된 발언이 끝난 후 취재진의 질문이 나오고 트럼프 대통령이 김 위원장에게 한 마디할 것을 권하자 김 위원장은 "우리한텐 시간이 귀중한데…"라고 하기도 했다. 이는 이날 시간이 제한된 만큼 어서 정상회담에 들어가자는 취지로 풀이되지만, 이번 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설득해 제재 완화와 관련된 양보를 받아내야 한다는 김 위원장의 속내가 드러났다는 평가도 있다.
김 위원장은 모두 발언에서 “이틀째 훌륭한 대화를 이어가고 있다. 오늘도 역시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있도록 모든 노력을 다하겠다”고 밝혀 대북제재 해제와 관련해 전력투구를 예고했다. 평소 언론에 보였던 여유있고 자신감 넘치는 트럼프 대통령과 달리 김 위원장의 얼굴은 다소 부어있었고, 목소리도 갈라져 본게임을 앞두고 김 위원장이 밤늦게까지 전략을 짰던 것으로 추정된다.
하노이=정용수 기자 nkys@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