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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관순 열사의 무덤은 왜 찾을 수 없을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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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이 올해로 100주년을 맞는다. 1919년 3월1일 우리 민족은 한반도 전역에서 봉기해 ‘대한독립 만세’를 외쳤다. 그날의 함성, 뜨거운 역사의 흔적을 품은 장소가 지금도 전국 곳곳에 남아 있다. 한국관광공사가 ‘3월 가볼 만한 곳’으로 3.1운동 관련 관광지 7곳을 꼽았다.

3.1운동 100주년 관련 유적 7곳

서울 망우리공원

서울 망우리공원 유관순 열사 분묘 합장 표지비 [사진 한국관광공사]

서울 망우리공원 유관순 열사 분묘 합장 표지비 [사진 한국관광공사]

망우리공원은 가슴 저민 공간이다. 만해 한용운(1879~1944), 위창 오세창(1864~1953), 호암 문일평(1888∼1939), 소파 방정환(1899~1931) 등 독립을 위해 헌신한 애국지사들이 이곳에 잠들었다. 유관순(1902~1920) 열사의 묘도 이곳에 있다. 1920년 서대문형무소에서 순국한 유관순 열사는 당시 이태원 공동묘지에 묘비도 없이 파묻혔다. 현재 유관순 열사의 유해 위치가 불분명한 이유다. 1935~36년 이태원 공동묘지는 일제가 군용기지를 조성하는 과정에서 망우리공원으로 이전했다. 이때 유관순 열사의 무덤을 포함해 이름 없는 2만8000여 분묘를 한꺼번에 화장하여 합장시켰다. 현재 유관순 열사의 묘는 정확히 찾을 수 없지만 합장한 자리에 비석이 남아있다. 옛 이태원 공동묘지가 있던 이태원부군당 공원에도 2015년 유관순 추모비가 세워졌다.

천안 독립기념관과 유관순 생가

천안 병천면의 유관순 열사 생가 [사진 한국관광공사]

천안 병천면의 유관순 열사 생가 [사진 한국관광공사]

천안 독립기념관은 외침을 극복하고 독립을 지켜온 우리 민족의 국난 극복사를 살펴볼 수 있는 곳이다. 우리 역사와 일제의 침략, 독립운동을 시기별로 전시한 7개 전시관이 있다.

천안 병천은 독립 만세 운동이 전국으로 퍼지는 도화선이 된 ‘아우내장터 만세 운동’의 현장이다. 1902년 병천면 용두리에서 태어난 유관순 열사는 1919년 아우내장터 만세 운동을 주도하다가 체포돼 옥사했다. 당시 전소한 가옥과 헛간을 복원한 유관순 열사 생가가 병천면 용두리에 있다. 차로 5분 거리에 유관순 열사 유적도 자리한다. 유관순의 영정이 모셔진 추모각과 동상, 기념관 등이 열사의 숭고한 뜻을 기리고 있다.

서울 종로구·중구·서대문구 일대

유관순 열사가 순국한 옛 서대문형무소. 지금은 역사관으로 운영되고 있다. [사진 한국관광공사]

유관순 열사가 순국한 옛 서대문형무소. 지금은 역사관으로 운영되고 있다. [사진 한국관광공사]

서울은 항일 민족운동의 중심지였다. 서대문독립공원 안에 있는 서대문형무소역사관(옛 서대문형무소)는 3·1운동 이후 수많은 열사가 갇혔던 장소다. 유관순 열사가 숨을 거둔 장소도 서대문형무소다. 1998년 박물관으로 다시 태어났는데, 옥사의 모습은 여전히 생생히 보존·재현돼 있다. 유관순 열사의 옥중 생활을 그린 최근 영화 ‘항거:유관순 이야기’(2월 27일 개봉)도 서대문형무소역사관에서 주요 장면을 촬영했다.

독립선언서를 전 세계에 타전한 앨버트 테일러가 살았던 행촌동 딜쿠샤. [사진 한국관광공사]

독립선언서를 전 세계에 타전한 앨버트 테일러가 살았던 행촌동 딜쿠샤. [사진 한국관광공사]

종로의 서울역사박물관에서는 3·1운동 관련 특별전 ‘딜쿠샤와 호박목걸이’ ‘서울과 평양의 3·1운동’이 열린다. 딜쿠샤는 앨버트 테일러가 살았던 행촌동 가옥의 이름. 앨버트 테일러는 3.1운동 이후 독립선언서를 전 세계에 타전한 인물이다. 박물관 옆 경희궁은 일제강점기에 훼손된 아픈 역사가 서려 있다. 경희궁을 나서면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주석 김구 선생이 집무실과 숙소로 사용한 경교장, 도심 재생에 예술을 덧씌운 돈의문박물관마을이 나온다.

중구 정동길에는 근대사의 애환이 담긴 장소가 모여 있다. 덕수궁과 옛 러시아공사관을 연결하는 좁은 길은 일명 ‘고종의 길’로 불린다. 아관파천 당시 고종이 걸어간 길로 지난해 10월부터 일반인에 개방됐다. 중명전은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된 장소다.

괴산 홍범식 고가

괴산보훈공원의 충렬탑 [사진 한국관광공사]

괴산보훈공원의 충렬탑 [사진 한국관광공사]

1910년 한일병합조약으로 대한제국은 국권을 빼앗긴다. 이에 독립운동가 일완 홍범식(1871~1910) “죽을지언정 친일하지 말고 먼 훗날에라도 나를 욕되게 하지 마라”라는 유서를 아들에 남기고 자결한다. 그 아들이 소설가 벽초 홍명희(1888~1968)다. 아버지의 유훈을 받은 홍명희는 후에 고향 괴산에서 3·1운동을 주도했다. 충북 괴산으로 여행을 떠난다면 홍범식과 홍명희가 태어난 홍범식 고가에 가보자. 충렬탑과 충혼탑이 자리한 괴산보훈공원, 홍명희가 자주 찾았다는 고산정과 제월대 등 둘러볼 곳이 많다. 진주성대첩의 명장 김시민 장군을 모신 충민사, 호젓하게 자연을 즐기기 좋은 성불산자연휴양림, 괴산호의 절경이 펼쳐지는 연하협구름다리 등까지 곁들이면 괴산 여행이 더욱 다채로워진다.

완도 소안도

소안항일운동기념탑. 뒤편으로 소안항일운동기념관이 보인다. [사진 한국관광공사]

소안항일운동기념탑. 뒤편으로 소안항일운동기념관이 보인다. [사진 한국관광공사]

소안도는 함경도 북청, 부산 동래와 함께 치열한 저항 정신을 보여준 곳이다. 1919년 섬 주민들이 일본인과 맞섰던 당사도등대(자지도등대), 일제강점기였던 1923년 주민의 자발적인 모금으로 설립한 사립소안학교 등 유적지가 곳곳에 있다. 소안도에서 건국훈장을 받은 독립 유공자가 20명이나 된다는 사실로도 항일운동의 성지라 불릴 이유는 충분하다. 소안항일운동기념관에는 이런 저항의 역사가 고스란히 남아있다. 소안항일운동기념관 앞으로 가학산과 부흥산을 끼고 해안도로가 이어진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완도 미라리·맹선리 상록수림, 바다 풍광을 보기 좋은 물치기미전망대, 해맞이일출공원 등이 지척에 있다.

안동 경상북도 독립운동기념관과 임청각

이상룡 선생의 생애와 활동을 기록한 임청각의 전시관. [사진 한국관광공사]

이상룡 선생의 생애와 활동을 기록한 임청각의 전시관. [사진 한국관광공사]

안동은 전국에서 독립 유공자(약 350명)가 가장 많은 지역이다. 그 투쟁의 역사를 경상북도독립운동기념관에서 문헌과 영상 등으로 확인할 수 있다. 기념관 인근에는 독립운동의 성지로 알려진 내앞마을이 있다. ‘만주벌 호랑이’로 불린 일송 김동삼(1878~1937) 생가와 독립운동가 김대락(1845~1914)의 집(백하구려)이 내앞마을에 있다.

대한민국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을 지낸 석주 이상룡(1858~1932)의 생가인 임청각도 안동에 있다. 이곳은 3대에 이은 독립운동의 산실이다. 독립운동가의 집이자 500년 역사가 있는 고택이다. 현재는 고택 체험 시설로 운영하고 있다. 1박2일 프로그램을 참여하면 붓글씨 쓰기, 등불, 전통놀이 체험을 하며 고택에서 하룻밤을 보낼 수 있다. 1박 5만원부터.

경남 밀양 노상하1길(의열기념관)

김원봉 생가터에 문을 연 밀양 의열기념관. [사진 한국관광공사]

김원봉 생가터에 문을 연 밀양 의열기념관. [사진 한국관광공사]

영화 '암살'을 통해 재조명된 의열단장 김원봉(1898~1958)의 고향이 밀양이다. 밀양은 일제강점기 항일 독립운동의 요람이다. 지난해 김원봉 생가 터에 문을 연 의열기념관과 이 일대에 조성된 해천항일운동 테마거리에서 밀양 출신 독립운동가의 활약상을 살펴볼 수 있다. 의열기념관에는 밀양의 청년이 주축이 되어 결성한 의열단의 활동, 조선의용대와 한국광복군으로 이어지는 항일 무장투쟁의 역사가 펼쳐진다. 의열기념관 앞을 흐르는 해천 일대 산책로에는 밀양의 만세 운동과 다양한 독립운동의 모습을 벽화로 생생하게 표현돼 있다. 의열기념관과 500m 거리에 있는 밀양 관아지는 1919년 3월 13일 밀양의 만세 운동이 벌어진 현장이다. 진주 촉석루, 평양 부벽루와 함께 우리나라 3대 명루로 꼽히는 밀양 영남루도 독립운동과 연결된다. 밀양아리랑대공원 안에 자리 잡은 밀양독립운동기념관에서는 밀양의 독립운동 역사를 한눈에 보인다.
백종현 기자 jam1979@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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