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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취재일기

나라 살림 개혁 보고서, 개혁은 없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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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김도년 기자 중앙일보 기자
김도년 경제정책팀 기자

김도년 경제정책팀 기자

재정개혁특별위원회가 26일 내놓은 ‘재정개혁보고서’는 정책 제언을 위해 모인 전문가 28명이 출범 후 열 달 만에 공개한 결과물이다. 평가는 ‘기대 이하’였다. 우선, 특위 보고서에는 재정 개혁의 핵심인 재정 건전성 관리 기준에 대한 언급이 없었다. 문재인 정부는 임기 말(2022년)까지 경기부양을 위한 확장 재정 정책을 공식화했다. 정부 방침대로면 2022년 한국의 관리재정수지(나라 살림에서 예산으로 쓸 수 없는 사회보장성기금을 뺀 ‘순수 예산’) 적자 규모는 국내총생산(GDP)의 2.9%로 늘어난다. 이는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이래로 가장 큰 규모다.

특위도 이런 점을 알고 있다. 그런데도 재정을 어떤 수준에서 관리해야 하는지에 대한 내용이 빠져 있다는 게 전문가들이 보는 가장 큰 문제점이었다. 옥동석 인천대 무역학과 교수는 “노무현 정부 땐 관리재정수지 적자 규모를 GDP의 1%로 제한하는 등 구체적 기준이 있었다”며 “건전 재정 운영 기준 자체가 특위 안에 빠진 건 아쉬운 대목”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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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세 개혁 정책 권고안 역시 핵심을 비껴갔다는 지적이다. 복지 재원을 마련하려면 46%에 육박하는 근로소득자의 면세율을 줄이는 것이 필수적이지만, 이런 내용은 언급하지 않았다.

결국 전문가 28명이 모인 특위도 정부 눈치 보기에 급급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어느 정부든 지지율을 높이기 위해 나랏돈을 쓰고 싶어한다. 재정학자들이 ‘재정 건전성’을 강조하면 경기 일으키듯 반응해 온 게 역대 정부 관료 집단이다. 근로자 면세율을 줄이는 사안도 마찬가지였다. 모든 정부가 필요성을 인정하지만, 유권자 상당수인 근로소득자들의 지지율 하락을 우려해 추진하지 못했다.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가 어려워도 전문가들의 특위는 “반드시 해야 할 일”이라고 일침을 가해주길 기대했다. 허사였다.

특위는 거꾸로 정부의 인기 영합주의적 재정 운영에 날개를 달아줬다. 국정 목표에 따라 재정 지출 우선순위를 정하는 ‘전략적 지출 검토 제도’가 그것이다. 공공 단기 일자리 확충,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의 부작용 보완 등 정부의 ‘이상주의적’ 정책 실험에 재정이 먼저 동원되는 부작용이 우려된다.

특위가 나라 살림 개혁을 위해 ‘총대’를 맸지만, ‘용두사미’로 마무리 지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다른 ‘대통령 직속’ 위원회들도 변죽만 울리는 정책 제언을 반복하게 될까? 사정이 비슷하다면, 미래는 암울하다. 이런 위원회들부터 구조조정하는 것이 방만 재정을 개혁하는 첫 번째 길 아닐까.

김도년 경제정책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