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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지식과 대학이 버려지고 있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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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김광웅 서울대 행정대학원 명예교수

김광웅 서울대 행정대학원 명예교수

지식도 대학도 시원찮은 나라가 근근이 버티는 것이 신기하다. 20세기 초엽 우리가 일본에 외교권을 빼앗긴 을사늑약(1905년) 때 서양에서는 아인슈타인이 상대성원리를 발표했다. 코페르니쿠스가 세상을 한번 뒤집어 놓은 뒤 고전역학과 양자역학이 사물에 대한 지식의 기초를 닦았다. 지난 한 세기 동안 우리의 몸과 마음은 외세의 정신적·물질적 침탈과 남북 이념 대립의 족쇄에 꽁꽁 묶여 있다. 한국의 대학과 지식은 그동안 뭘 했는지, 앞으로 4차 산업혁명이라는 큰 획을 그을 변화의 주역인 이들이 얼마나 과거의 어리석음을 답습하지 않을지 걱정만 쌓인다.

자기 분과 영역 고수에만 전념해 #대립 세력간의 각축장만 돼 버려 #학문간 칸막이 허물고 기초다져야 #21세기 나라가 반석에 설 수있어

서양의 이분법적 합리주의를 잘못 배운 우리는 아직도 대립과 갈등으로 지새우고 있다. 정부는 정부대로, 대학은 대학대로 바람 잘 날이 없다. 그나마 고개를 들어 서양을 배워 우주생성 원리를 밝혀보려 했던 성리학의 이기론(理氣論)은 리(理)가 먼저인지 기(氣)가 먼저인지를 놓고 다투기를 오래 했다. 과학의 힘으로 세상사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기보다 현학적 논쟁으로 일관했다. 조선의 성리학은 서양 학문의 플라톤까지 가지 못한 데다 그들의 리(理)를 리로 보지 못했다. 리를 제대로 풀지 못하고(理解), 멋대로 해석하고, 설명한답시고 숫자와 모델만 좇으니 실재와 거리만 멀어졌다.

한 세기가 지나며 우리에게 남은 것은, 순수과학은 돈이 안 돼 응용과학(의학·법학·농학 등)으로 기울면서 경험주의, 실증주의, 기능주의, 그리고 구성의 오류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칼 포퍼의 말처럼 “학문은 입증만 아니라 반증이 돼야 과학적 연구가 완성”되는데 실증주의자들은 겉핥기에 급급해 연구의 본질을 외면해 왔다. 사물의 본질이나 존재의 근본 원리를 사유나 직관에 따라 탐구하는 형이상학은 철학자들이 하면 된다고 치부했다. 이 나라 학문의 취약점은 융합과학으로 가는 21세기 지식지도에서 뿌리가 철학과 수학이라는 것을 가끔 잊고 있는 듯하다.

2006년 서울대 개교 60주년 기념 학술대회 때 융합학문의 길을 열자고 ‘학문의 미래, 미래의 대학’이란 글을 필자가 발표하고 오세정 교수(현 서울대 총장)가 토론했다. 10년이 넘은 지금 유수 대학의 총장들이 대학의 미래를 걱정하면서도 대학의 소프트웨어인 지식과 그 남용의 책임에 관한 논의는 미흡하다.

시론 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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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은 사물과 현상을 이해하는 힘이다. 유물론이 먼저냐, 관념론이 더 중요한가를 놓고  싸움은 끊이지 않는다. 그러나 지식도 완벽하지 않아 종교나 마찬가지로 확실성이라는 것이 고대인이 부르던 오만(hubris) 이상이 아니다. 헤겔의 말처럼 “지식은 우리에게 과일을 건네주는 아름다운 아가씨의 눈에서 스쳐 가는 자기 인식”과 같은지도 모른다.

대학은 학문의 실험실이자 운동장이다. 그런데 학문의 각 분과는 무질서한 시장바닥에서 춤도 제대로 추지 못하는 것 같다. 껍데기만 그럴듯한 독자 영역을 고수하기에 여념이 없다. 진리는 하늘에 있지 않고 땅(현장)에 있기에 미네르바 같은 대학이 한껏 고개를 드는 오늘, 우리는 지도만으로 거기에 있는 지역의 온갖 특성을 설명하려고 든다. 분석의 세계와 경험의 세계 간의 유질동상(類質同像·isomorphism)을 굳혀야 지식이 살고 대학이 기를 편다. 그래야 할 대학이 그저 하나의 기관에 불과하고 대립하는 세력의 각축장이 돼버렸다.

지식의 우물도 제대로 파지 못한 대학이 신분만 내세워 계급의 사다리만 타려는 이들이 모인 곳, 군정(軍政) 문란의 온상이었던 옛 서원보다 나아진 것은 뭘까. 기억과 이성과 상상의 학문 축을 하나로 해 칸막이를 거두고 기초를 더 다질 때가 지나고 있다. 미래 대학의 기초기술이 될 프로그램 언어를 비롯한 컴퓨터 과학을 고립된 섬이 아닌 모두가 습득하는 육지에 놓아 내일에 대비해야 21세기에 나라가 반석에 선다. 엘리트만 키우는 대학, 언어와 표현하나 제대로 가르치지 않아 소통의 길을 막은 대학, 내일을 보는 눈은 먼 대학, 성형수술만으로는 어림도 없다.

사물이나 현상이 둘로 나뉘는 것은 지구의 섭리일 수 있겠다. 인간과 자연, 남과 여, 음과 양 등. 하나여야 하느냐, 둘이라도 좋으냐의 기나긴 싸움은 지속하겠지만, 물리학자 장회익의 일원양면론(一元兩面論)처럼 양태는 다르더라도 리와 기를 하나로 모아야 이분법의 질곡에서 벗어난다.

대학은 학문 간의 장벽을 헐고 정부는 시장과의 교집합부터 넓혀 가는 일이 시급하다. 지식인부터 착각에 빠져있지나 않은 지 자성하며 사다리를 걷어차야 한다. 교육부의 사유와 인식의 수준으로는 어림도 없다. 대통령은 기업인만 찾지 말고 대학부터 자물쇠를 풀고 지식지도를 다시 그리도록 자유의 깃발을 드높이는 데 앞장서기 바란다.

김광웅 서울대 행정대학원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