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여성가족부의 (아이돌) 외모 지침 가이드라인을 보고 정말 분을 삼키지 못했습니다. 국민들이 염색을 하든 무슨 옷을 입든 그걸 정부가 왜 간섭합니까”
“옳소~ (짝짝짝)”
사뭇 긴장된 상태로 위축되어 있던 분위기는 조금씩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행사장 곳곳에서 여기저기서 “옳소”라는 고함과 함께 박수가 쏟아졌다.
21일 서울 여의도의 한 호텔에서 열린 한국연예매니지먼트협의회 정기총회장에 모인 각 기획사 매니저들의 이목은 이날 하태경 바른미래당 의원의 입에 집중되어 있었다. 이날 모인 매니저들은 K-POP을 움직이는 주요 기획사들의 실세들이었다. 이들은 최근 여성가족부가 내놓은 아이돌 그룹 외모 및 복장 규제와 관련해 우려하는 분위기였다.
이날 참석한 한 매니저는 “정부는 강제성이 없다고 하지만 방송사에서는 각 기획사에 가이드라인을 어기지 말라고 통보를 하니 이를 따를 수 밖에 없다”고 불만을 터트렸다. 그러면서 “미국뿐 아니라 일본이나 동남아시아도 이런 규제가 없는데, 어느 시대를 살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 하 의원은 여가부 성토 발언을 이어갔다.
“여러분 걱정하지 마십시오. 여성가족부는 내가 딱 붙들어 매서 지침 하나 내려오면 없애버리겠습니다”, “여러분의 친구가 되어드리겠습니다” “만약에 이를 계속하면 여성가족부가 아니라 여성가족 재단 정도로만, 그렇게 살려줄 생각입니다”
하 의원의 한 마디 한 마디가 끝날 때마다 객석에서는 “옳소”, “감사합니다” 등의 반응이 추임새처럼 이어졌다.
‘하태하태’라는 별명을 달고 다니는 하 의원은 바른미래당에서 몇 안 되는 ‘핫’한 정치인이다. ‘점잖은 보수’라는 관성을 깨고 뜨거운 이슈 속에 자신을 던지고 소신 발언을 통해 ‘찬티’와 ‘안티’를 동시에 확보하는 스타성을 키워나갔다.
최근만 해도 정치인들이 가장 개입을 꺼리는 워마드와의 전쟁을 선포하는가 하면 민주노총 소속 노조의 고용세습 의혹 명단을 공개하고 태극기부대를 맹비난해 주목을 받았다. 그는 이번엔 5ㆍ18 폄훼발언 논란과 아이돌 외모 가이드라인이라는 이슈의 한복판에 또다시 뛰어들었다.
하 의원을 밀착마크한 21일에도 그의 하루 일정은 의원총회를 시작으로 ‘5.18 북한 특수부대 파견, 왜 거짓인가’ 토론회, 한국연예매니지먼트협의회 총회 참석 등 인화성 큰 이슈들로 꽉 차 있었다. 다음은 하 의원과의 일문일답.
-여가부의 아이돌 외모를 규제하는 가이드라인 비판에 앞장서는 이유는.
=이거는 반헌법적 발상이고 전체주의다. 대단히 충격이다. 여가부는 자기가 전체주의 괴물이 되는 것을 인식을 못 하는 것 같다. 전체주의는 정부가 사람들의 미시적인 일상생활까지 들여다보고 간섭하는 거다. 물론 외모지상주의는 문제가 있다. 하지만 사회 자정작용으로 헤쳐나가야지, 자신이 보기 싫다고 해서 ‘나오지 마’라고 하는 건 옳지 않다. 여가부 장관을 ‘여성 전두환’이라고 하는 이유가 있다. 실제로 전두환 정부 때 박용식이라는 배우가 전두환 대통령을 닮았다는 이유로 출연 금지했다. 오히려 여가부 직원들은 (머리 색깔이) 다 비슷하지만, 트와이스 멤버들의 머리 색깔은 모두 다르다.“
-여가부에서는 자율적 지침이라고 한다.
=정부가 지침을 내는 데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면 정부가 왜 필요한가. 그건 시민단체가 할 일이지 정부가 할 일은 아니다. 여가부가 자기 조직의 근거를 부정한 것인데 그러면 여가부는 일종의 공공단체 정도로 축소해도 된다는 걸 스스로 인정했다고 본다. 그렇게 해드리겠다.
-워마드 등 극단적 여성주의 표방 단체들과 앞장서 싸우는 이유는 뭔가.
=우리 당이 창당 1주년 기념식에서도 확인했는데, 가장 중요한 정체성이 청년정당이고 2030을 대변하겠다는 것이다. 2030세대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중 하나가 ‘신(新)성차별’이다. 과거엔 여성에 대한 차별만 있었다면 이젠 남성에 대한 차별도 있다. 그런데 워마드는 성평등 단체가 아니라 성차별 단체다. 심지어 여성들도 싫어한다. 정상적인 여성들은 남녀가 평등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워마드는 한국 남성은 다 벌레고 죽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나. 앞으로도 신(新)성차별 뿐 아니라 채용 비리, 청년 주택 등 2030 세대를 대변하는 새로운 정당이라는 점을 보여드릴 것이다.
-5ㆍ18 폄훼발언 논란은 어떻게 봐야 하나.
=발언한 3인방(김진태ㆍ김순례ㆍ이종명 의원)은 국민을 대표할 자격이 없다. 공인이 아닌 사람이 그런 말을 하면 철이 없다고 하겠지만, 국민을 대표하는 사람이 그랬기 때문에 엄중 징계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만 5ㆍ18을 왜곡하는 사람들을 처벌하기 위해 특별법을 만드는 것이 능사인지는 고민이 필요하다. 5·18만 처벌할 것인가. 그러면 한국전쟁은 남침이라는 것을 부정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할 것이냐. 또한 천안함 폭침은 북한이 한 것이 아니다, 심지어 국정원이 한 것이라는 사람들도 있는데 같은 논리라면 이에 대해서도 특별법을 제정해야 하는 것 아닌가.
-더불어민주당에서 김경수 경남지사의 판결에 대해 불복하는 움직임이 있는데.
=저는 김경수 지사의 형량이 (항소심에서) 더 높아질 것 같다. 예전에도 민주당이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 한상균 전 민주노총 위원장과 묶어서 한명숙 전 총리를 사면하려고 했지만 한명숙도 사면이 안 됐다. 무슨 말이냐 하면 지금 한쪽에선 이명박ㆍ박근혜 석방하라고 하는 것과 다른 한쪽에서 김경수 석방하라고 하는 건 국민이 볼 때는 똑같이 법치주의 불복이다. 민주당이 자꾸 저렇게 푸닥거리하면 김 지사 석방 시기만 늦출 뿐이다. 감옥 안에서 김 지사는 ‘당은 제발 가만히 있으라’고 기도할 것 같다.
-자유한국당 전당대회 후 바른미래당이 합류하는 보수통합이 진행될까.
=지금 시점에서 말할 수 있는 건 바른미래당 의원들이 개별 탈당해서 가는 일은 없다는 거다. 솔직히 말해 정계개편 가능성을 부정하진 않는다. 정계개편이 어떤 방식으로 될지는 어떤 점쟁이도 맞출 수 없다. 그런데 우리 당이 주도하게끔 우리 당을 더 키워나가겠다는 목표를 갖고 정치를 하고 있다. 우리 당은 개혁적 중도보수로 가야 한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보수 야당이던 김영삼ㆍ김대중 노선이다. 유승민 대표도 개혁적 중도보수를 대변한다고 했으니 당직을 맡든 안 맡든 적극적 활동을 시작해야 한다. 곧 시작할 거라고 본다.
-지역구인 부산에서는 여론이 어떤가.
=다양한 의견이 있다. 한국당 가라는 분도 있고 합치라는 분도 있고, 소신을 굽히지 말라는 이야기도 있다. 종합하면 개혁세력이 중심이 되어 보수판을 재편하라는 거다. 극우에게 몸을 바치는 방식의 정계개편은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유성운 기자 pirate@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