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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남겨진 조성길 딸, 부모 증오···자발적 귀국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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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적한 이탈리아 주재 조성길 대사대리. [중앙포토]

잠적한 이탈리아 주재 조성길 대사대리. [중앙포토]

지난해 11월 임기 종료를 앞두고 잠적한 주이탈리아 북한대사관 조성길 전 대사대리의 미성년 딸이 북송된 것으로 확인되면서 이탈리아 정가에 논란이 일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북한 사회의 이데올로기에 투철했던 조 전 대사대리의 딸이 오히려 부모를 배신하고, 자발적 귀국을 선택한 것이라는 현지 보도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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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일(현지시간) 이탈리아 외교부는 성명을 통해 “북한 측 통보에 따르면 조 전 대사대리의 딸이 고국에서 조부모와 함께 있길 희망해, 11월 14일 대사관 여성 직원과 함께 북한에 돌아갔다”고 밝혔다. 이에 현지 언론은 “위험에 처한 미성년 소녀가 부모와 망명하기 전에 북한으로 끌려갔다”고 보도했다.

이탈리아 정계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다. 만리오 디 스테파노 이탈리아 외교부 차관은 “사실로 드러난다면 이는 전례 없는 엄중한 일”이라며 “책임이 있는 사람들이 대가를 치러야 한다”고 밝혔다.

이탈리아 유력 일간인 라레푸블리카는 22일자 지면에 ‘이중의 배신, 납치됐다고 알려진 북한 소녀에 대한 진짜 이야기’라는 제목의 기사를 소개하며 조 전 대사대리의 딸 북한 송환과 관련한 진실을 조명하는 기사를 실었다.

신문은 “이탈리아 정보기관 4곳으로부터 확인된 정보에 근거해 사건을 재구성했다”고 밝히며 지난달 세상에 드러난 조성길 전 대사대리 부부의 잠적, 태영호 전 영국주재 북한 공사의 기자회견으로 공개된 조성길 딸의 북한 송환은 ‘이중의 배신’으로 점철된 이야기라고 규정했다.

조 전 대사대리는 북한의 핵실험에 대한 국제사회 제재의 일환으로 이탈리아 정부가 2017년 10월에 문정남 전 이탈리아 북한 대사를 추방한 뒤 대사 역할을 맡게 됐다. 이때부터 그는 이탈리아 정보기관의 감시 대상이 된 것으로 알려졌다.

라레푸블리카는 첫 번째 배신은 조성길 전 대사대리 부부가 자유를 얻기 위해 조국을 등진 것이라면, 또 하나의 배신은 핏줄보다 조국을 더 사랑한 그의 17세 딸이 부모를 배신한 것이라고 전했다.

이 신문에 따르면 정보기관의 보고서에 “정서적으로 불안정하다”고 묘사된 조 전 대사대리의 외동딸은 사춘기의 자녀들이 으레 그렇듯이 부모와 종종 갈등을 빚었다.

신문은 또 J.S.Y.이라는 이니셜로 표기된 그의 딸은 특히 북한 정권의 이데올로기에 충실했으며, 부모가 북한의 정서와 동떨어진 현지 TV를 시청하거나, 북한 정권의 사상에 부합하지 않는 언행을 할 때마다 부모를 책망하곤 했다고 보도했다.

그는 또한 부모의 이런 약점을 평양에 있는 조부모에게도 불평했고, 함께 같은 건물에 거주하고 있던 북한대사관의 다른 직원들에게도 공공연하게 이야기한 것으로도 전해졌다.

북한 정부가 작년 9∼10월에 조성길에게 귀국 명령을 내린 것은 이 같은 딸의 불평으로 북한 정권이 조 전 대사대리의 충성심에 의구심을 품었기 때문이라고 이 신문은 추정했다.

11월 하순에 귀국하라는 명령을 받은 조성길 부부는 북한에 가도 환영을 받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과 탈출을 위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다른 대안이 없었기에 결국 부모보다는 북한 체제를 더 좋아하는 딸을 대사관에 남겨두고 11월 10일 잠적을 감행했다고 신문은 추정했다.

부모가 없어진 사실을 알게 된 딸은 즉시 이 사실을 북한대사관 직원들에게 알렸고, 나흘 뒤인 11월 14일에 북한대사관 여성 공관원과 함께 로마의 피우미치노 공항으로 가 담담히 북한행 비행기에 올랐다고 신문은 전했다.

이런 정황을 종합하면 결국 이탈리아 정치권에서 우려하는 것처럼 조성길 부부가 딸을 버리고 탈출을 감행한 뒤 어쩔 수 없이 남겨진 딸이 북한 정보요원들에 의해 강제로 북송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딸이 부모가 북한 정권에서 이탈하도록 만든 측면이 있다고 신문은 지적했다.

[이탈리아 일간 ‘라 레푸블리카’홈페이지 캡처]

[이탈리아 일간 ‘라 레푸블리카’홈페이지 캡처]

이탈리아 정치권과 인권단체들은 미성년자인 조성길 부부의 자녀가 자신의 의사에 반해 강제로 북한으로 보내진 것이고, 이 과정에서 북한 정보요원들이 개입했다면 딸의 인권이 침해당한 동시에 이탈리아 주권도 손상을 입은 것이라며 격앙된 반응을 보여왔다.

이 신문은 “이탈리아 정보기관은 조성길의 딸이 자발적으로 귀국을 선택했고, 이탈리아 영토에서 잠적한 조성길에 복수하기 위한 북한 정권의 어떤 강제적 행위도 없었으며, 조성길의 딸이 자신의 선택을 위해 부모를 버린 것으로 파악했다”고 정리했다.

한편, 이 신문은 이밖에 현재까지 공식적으로 행방이 확인된 바 없는 조성길 부부가 이탈리아를 떠나 스위스로 갔고, 스위스에서 미국과 영국 정보기관의 보호를 받으면서 이들과 협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신임 북한 대사대리 “조성길 딸, 납치 아냐”

한편 조성길 전 이탈리아 북한 대사대리의 후임은 조성길 딸의 북한 송환에 대해 입을 열었다.

22일 뉴스통신 ANSA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최근 이탈리아에 부임한 김천 대사대리는 오스발도 나폴리 이탈리아-북한(조선) 친선의회그룹 위원장에게 서한을 보내 조성길 잠적 후 그의 딸을 북한 정보요원들이 납치해 강제로 북한으로 보냈다는 소문은 사실이 아니라고 부인했다.

김천 대사대리는 이날 나폴리 위원장에게 보낸 서한에서 “남한에서 제기한 ‘납치설’은 이탈리아와 북한의 관계를 훼방 놓기 위한 것”이라고도 비난했다.

김 대사대리는 또한 조성길 전 대사대리가 11월 10일에 북한대사관을 떠나 잠적했다는 사실을 확인하면서도 그가 정치적인 동기로 이탈한 게 아니라고 강조했다.

그는 “조성길은 딸 조유정의 정신장애 때문에 아내와 부부 싸움을 한 뒤 대사관을 나갔고, 다음 날 아침 그의 아내도 대사관을 떠난 뒤 두 사람 다 돌아오지 않고 종적을 감췄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한 고등학생인 조성길 전 대사대리의 딸은 아버지의 임기 종료를 앞두고 작년 3월부터 학교에 나가지 않았다고도 덧붙였다.

배재성 기자 hongdoy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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