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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홍구 칼럼

하노이 정상회담, 동아시아 평화체제 출범 계기되기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1면

이홍구 전 국무총리·본사 고문

이홍구 전 국무총리·본사 고문

트럼프와 김정은의 2차 미·북 정상회담이 다음 주로 다가왔다. 양측의 실무회담이 순조로이 진행되어 북한비핵화의 구체적 로드맵과 이에 상응한 미국의 보상조치들의 조율이 진행되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좋은 소식이다. 그러나 한반도와 동아시아평화를 위협하는 핵심적 과제가 제대로 부각되지 못하고 있는 듯싶어 과연 항구적 해결책 합의에 도달할 수 있을지가 우려된다.

북한, 2017년 핵보유국 선언하며 #동아시아를 ‘NPT 예외지역’으로 #한·일의 핵무장 개의치 않는지를 #트럼프가 김정은에게 추궁해야 #‘동양평화’라는 3·1 선언 뜻대로 #동아시아 항구평화 논의를 기대

지난 20여년 북한의 위기조성→잠정해결책 합의→몇 해 후 새로운 위기조성으로 돌아온 북한핵 문제 사이클은 2017년 11월 북한의 핵보유국 선언으로 새로운 단계에 접어들었다. 1993년 핵확산금지조약(NPT)체제에서 탈퇴한 북한은 24년 만에 중국에 이어 두 번째 동아시아 핵보유국이 되었고 결과적으로 북한을 포함한 동아시아가 NPT예외직역임을 선언한 것이다. 이것은 동아시아를 넘어서 세계적 핵 확산의 새로운 위험성을 야기함으로써 북한핵 문제의 성격과 초점을 명시한 것이다.

트럼프대통령은 이번 하노이정상회담에서 핵무기를 탑재한 북한미사일의 미국본토에 대한 위협에 대처하는 입장을 밝히는 한편 김정은 위원장에게 한국과 일본의 핵무장에 개의치 않는가를 추궁할 필요가 있다. 70여년에 걸친 치열한 한반도의 남북대결 구도에서 북한의 일방적 핵무장에 한국이 어떻게 대응할지를, 세계 3위의 경제대국인 일본이 북한핵미사일이 두 번이나 열도를 넘어간 상황에서 과연 어떻게 대처할지를 김정은에게 물어야 한다. 북한을 포함한 동아시아를 정말 NPT의 예외지대로 만들자는 것인지를, 그로 말미암은 위험을 감수하겠다는 것인지를 알아보아야 할 것이다.

이홍구칼럼

이홍구칼럼

얼마 전까지 예정되었던 미·중 정상회담이 후일로 넘어간 것은 다소 아쉬운 측면이 없지 않다. 미·중간에 관세문제를 포함한 통상분야에서 심각한 대결구도가 형성되어 북핵문제의 심각성에 최우선 순위를 부여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북한이 핵보유국임을 선포하고 동아시아를 NPT예외지역으로 몰고 가는 상황에서 중국이 취해온 애매한 자세는 아시아 유일의 유엔안보리상임이사국으로서, 더욱이 미국과 더불어 초강대국 반열에 오른 입장에서 긍정적으로 평가받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기에 트럼프와 시진핑 두 정상이 직접 북핵 문제를 포함한 아시아·태평양지역의 평화체제를 논의할 기회가 다소 늦추어진 점을 거듭 아쉬워하는 것이다.

미·중 정상이 합의하면 북한의 비핵화와 더불어 경제발전도 급속히 진행될 수 있다는 데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최근(2월8일자 중앙일보) 장형수교수가 지적한 대로 북한의 경제발전 로드맵은 IMF가입에서 시작하여 WTO가입으로 마무리되는 것이 적절한 그림이다. 그러나 오직 북한의 NPT 복귀만이 UN의 제재를 해제시키고 고도성장의 행진을 극적으로 조속히 출발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북한이 스스로 선택한 예외국가의 위치를 벗어나 국제사회로, 특히 동아시아평화체제에 합류하는 가장 확실한 신호다.

이러한 맥락에서 내년이면 개전 70주년을 맞는 한국전쟁을 마무리 짓고 평화협정으로 가기 위한 종전선언의 필요성에 미국과 남북한이 그리고 중국도 공감대를 이루어 가고 있다고 보도되고 있다. 그러나 ‘개전’을 잊은 채로 ‘종전’을 논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1950년 6월25일의 한국전 개전은 누구의 결정이었는가? 이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전쟁의 책임소재를 규명하자는 것이 아니라 종전선언에의 참여범위를 조정하고 한미동맹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을 차단해야 되기 때문이다.

미·북의 하노이정상회담이 끝난 바로 다음날인 3월1일은 3·1운동 100주년이 되는 날이다. 3·1 독립선언서를 읽을 때 마다 느끼는 것은 우리 민족의 자주와 독립에 대한 권리와 결의를 천명하는 것 못지않게 “동양평화”에 대한 거듭된 강조이다. 3·1 운동보다도 10년 전인 1909년에 이토 히로부미를 척결한 사형수로 뤼순감옥에 수감 중이던 안중근의사가 남긴 옥중유고 『동양평화론』의 핵심 논제는 한국의 독립과 자주는 열강이 협력하는 동양평화와의 상호 간에 필수요건 임을 잊지 말아야한다는 것이었다. 쓸데없는 객기로 민족의 앞길을 헤쳐 나갈 수는 없다. 3·1 독립선언서는 안 의사가 남긴 지침을 재강조하고 있다. 강대국이나 선진국의 모범이나 선례를 무작정 따를 필요도 없다. 한반도에서 핵전쟁의 위험을 근본적으로 예방하자는 약속은 27년 전 남북이 함께 ‘비핵화공동선언’으로 이미 세계에 공표하지 않았던가. 베트남에서의 미·북 정상회담이 트럼프와 김정은 두 사람만의 이해타산으로 이루어지는 거래가 되지는 말아야 할 것이다.

이홍구 전 국무총리·본사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