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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아파트인데···101동만 못 받고 다 받는 현금복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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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지난달 복지관에서 103동 사는 친구에게 중구만 10만원씩 준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듣자마자 성동구청에 항의 전화를 했어요. 혜택을 비슷하게 주지 않을 거면 아예 101동도 성동구에서 중구로 편입시켰으면 좋겠어요.”(86세 김모씨)

서울 중·성동구 걸쳐 있는 아파트 #“한 단지인데 공로수당 차별” 논란 #중구, 25일 수당 지급 강행 예정에 #주민들 “구 바꿔달라” 성동구 난감

“세금은 똑같이 내는데 저쪽은 매월 10만원 주고 우리는 못 받는다니…. 솔직히 탐탁지 않네요.”(다른 101동 주민)

21일 서울 왕십리 H아파트에서 만난 주민은 이렇게 불만을 토로했다. 두 사람은 이 아파트 101동 주민이다. 4개동으로 된 이 아파트 101동은 성동구 하왕십리동, 102~104동은 중구 신당동이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중구가 ‘어르신 공로수당’을 신설하면서 102~104동 노인은 받게 됐고, 101동은 소외됐다. 이 수당은 만 65세 이상 기초생활보장 수급자와 기초연금 수급자에게 매월 10만원을 지급하는 것인데, 중구가 보건복지부의 반대를 무릅쓰고 25일 처음으로 지급하려 준비하고 있다.

복지부가 “공로수당이 기초연금과 중복된다”고 승인하지 않았는데도 중구는 이미 노인들의 신청을 받아버렸다. 지자체가 복지를 신설하려면 복지부의 승인을 받는 게 원칙이다.

아파트 경로당 옆 건물에는 이미 신청이 끝난 ‘어르신 공로수당 신청하세요’라는 중구의 포스터가 붙어있다. 중구 공로수당 대상자의 99.6%가 지난달 말 신청했다. 중구의 공로수당 기준을 적용하면 101동(108세대) 주민 25명이 수급 대상이다. 중구가 현금 수당을 신설하지 않았으면 불만이 없을 텐데, 같은 단지 이웃이 받는 걸 보면서 마음이 불편하지 않을 수 없다.

출산장려금도 마찬가지다. 중구는 첫째 아이부터 20만원을 주지만 성동구는 첫째 아이 때는 수당이 없고 둘째부터 20만원을 준다. 중구는 중·고교 신입생에게 무상으로 교복을 지급하지만 성동구는 그런 게 없다. 이런 ‘현금 복지’가 같은 아파트 주민을 갈라놓았다.

경로당 근처와 아파트 단지에서 만난 101동 주민들은 한결같이 “주려면 다 같이 줘야지. 한 아파트 안에서 이렇게 갈라지니 소외감이 느껴진다”고 말했다. 또 다른 김모(87)씨는 “저런 거(공로수당 포스터) 보면 많이 섭섭하다”고 말했다. 김씨는 “나이 먹어서 자식 집에 사는데, 눈치도 보이고 단돈 만원도 아쉽다”면서 “그런데 10만원이나 되는 돈을 누구는 주고, 누구는 안 준다고 하면 차별 아니냐”고 말했다.

조수곤(72)씨도 “공로수당 얘기를 듣고 ‘또 우리만 못 받나보다’라는 생각이 들어 씁쓸했다”며 “복지라는 게 원래 어려운 사람 도와주는 건데, 동네에 따라 다른 게 이상하다”고 말했다.

강치원(69)씨는 “같은 단지에 살면서도 주민들이 차별받는다는 피해의식을 갖지 않도록 성동구가 조치를 취해야 한다. 구청에 전화하겠다”면서 “예산이 부족하면 나라에서 돈을 좀 빌려서라도 중구 주민들과 차이 나지 않게 신경을 써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101동 통장 이영순(64)씨는 “한 단지 안에 중구와 성동구가 붙어있다 보니 복지 혜택을 속속들이 알게된다”면서 “공로수당뿐 아니라 국가유공자 명절 위문금 등에도 다소 차이가 있어 항의하는 일도 있다”고 말했다. 국가유공자인 강치원씨는 “똑같은 국가유공자인데 성동구는 명절 때 2만원, 중구는 3만원을 준다”고 말했다. 보훈 예우수당은 성동구는 3만원이지만 중구는 5만원이다.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면서 성동구의 고민이 커지고 있다. 중구의 공로수당을 따라하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정원오 성동구청장은 앞서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중구는 인구가 적어 한해 156억원이면 공로수당을 운영할 수 있지만, 성동구는 한해 예산 280억원이 필요하다. 이 돈을 지역밀착형 복지 서비스에 써야 한다”고 말했다.

또 정 구청장은 “이처럼 지자체가 현금복지를 경쟁적으로 쏟아내면 다른 지자체는 등 떠밀려 현금 뿌리기에 동참할 수밖에 없다”면서 “서로 발목 잡는 현금 복지의 유혹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했다.

박형수 기자 hspark9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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