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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오죽하면 구청장이 옆 구청 ‘현금 살포’ 개탄하겠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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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서울 왕십리동 H아파트 102·103동 노인(65세 이상)은 이달 25일 20만원 상당의 지역 화폐를 받는다. 서울 중구청이 지급하는 ‘어르신 공로 수당’이다. 매달 10만원으로 책정됐는데, 이달엔 1월분까지 소급해 받는다. 같은 아파트 101동 노인에겐 이 수당이 제공되지 않는다. 101동은 행정구역이 성동구로 편제돼 있기 때문이다. 성동구에는 노인 수당 제도가 없다. 이 아파트 말고도 길 하나, 골목 하나를 사이에 두고 이런 ‘차별 아닌 차별’이 벌어진다. 성동구청에는 “우리는 왜 안 주느냐”는 항의가 빗발치고 있다고 한다.

성동구는 주민 수가 중구의 2.5배이고 상대적으로 노인 비율이 높아 월 10만원의 노인 수당을 만들려면 한 해에 280억원의 예산이 필요하다. 사회복지학 석사인 정원오 성동구청장은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옆 구청들 따라 하면 구립 어린이집 늘리기, 고독사 예방 등 꾸준히 해 온 복지 사업을 포기해야 한다”고 토로하며 지방자치단체들의 ‘현금 복지’ 경쟁을 막아 달라고 정부에 호소했다. 구립 어린이집 마련에 앞장선 성동구청은 공공보육에 대한 평가에서 최고 점수를 받아 왔다.

자치단체들은 최근 노인 수당, 청년 수당, 출산 축하금 등 각종 보조금을 앞다퉈 만들었다. 현 정부 출범 뒤 유행처럼 번진 일이다. 도서관에서 책 빌리면 상품권 주겠다는 곳도 있다. 곳간에 재물이 넘쳐 나눠 쓴다면 무슨 문제겠는가. 하지만 자치단체 예산은 결국 시민의 돈이고, 이렇게 현금으로 뿌리면 보육시설 건립, 취약계층 지원 등 정작 꼭 필요한 일에 쓸 돈이 모자라게 된다.

자치단체장들의 포퓰리즘적 현금 살포 경쟁을 중앙정부가 방치하지 말아야 한다. 이미 국가의 복지 틀이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2년 전 서울시의 청년수당 지급을 가로막았던 보건복지부가 지금은 강 건너 불 구경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직무유기가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