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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3대 투어 한국여자골프, 그 뒤엔 방송권 다툼 비사가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민국홍의 19번 홀 버디(24)

한국 여자골프는 세계 최고 수준의 선수와 우수한 행정 능력의 골프협회를 보유하고 있다. 사진은 신인으로 KLPGA 투어 개막전에서 톱 10에 든 박현경과 조아연, 임희정(왼쪽부터). 골프계에서는 1999, 2000년에 태어난 선수들이 한국 여자골프의 새로운 얼굴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KLPGA 박준석, 중앙포토]

한국 여자골프는 세계 최고 수준의 선수와 우수한 행정 능력의 골프협회를 보유하고 있다. 사진은 신인으로 KLPGA 투어 개막전에서 톱 10에 든 박현경과 조아연, 임희정(왼쪽부터). 골프계에서는 1999, 2000년에 태어난 선수들이 한국 여자골프의 새로운 얼굴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KLPGA 박준석, 중앙포토]

최근 한국 여자골프는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하는 선수뿐 아니라 골프협회의 행정 능력까지도 일본으로부터 선망의 대상이 되고 있다. 올해부터 방송분야에서 일본여자프로골프(JLPGA) 투어가 한국 여자골프 투어를 벤치마킹하기 시작했다. JLPGA가 방송사에 내주었던 골프대회의 방송권을 되찾아오는 작업에 착수한 것.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가 2007년 완전한 방송권 제도를 확립하는 데 성공한 지 12년이나 지난 시점에서다. JLPGA는 우선 인터넷부터 방송권을 되찾아오기로 했다. 여기서 방송권이란 경기단체가 각종 대회 등 자신의 모든 행사와 관련한 콘텐츠에 관한 권리를 가지는 것을 말한다. 방송사·네이버 등 인터넷 및 모바일 업체는 이 콘텐츠를 중계방송 등에 사용하려면 유상으로 구매해야 한다.

JLPGA가 방송사에 무상으로 준 인터넷 방송권을 회수하려는 것은 올해 대회 수가 줄어드는 것을 감수하고 내린 결단이다. 히로미 JLPGA 회장은 방송권과 관련해 종전의 입장을 고수하던 일본 지역방송사들과 대립하다 이들이 주관하던 대회 3개를 과감히 포기하고 대회 1개를 새로 창설해 올해 대회를 36개로 치른다고 밝혔다.

일본여자골프협회도 골프 방송권 확립 추진

JLPGA는 한국의 KLPGA보다 21년이나 앞서 창립됐음에도 골프대회 방송과 관련해 흑역사가 있다. 1967년 창립 초기부터 방송국에 대회 방송권을 돈 한 푼 받지 않고 넘겨주었기 때문이다. 방송사가 대회를 만들어 주고 TV로 생중계해주는 것에 고마워한 나머지 방송에 관한 모든 권리를 공짜로 넘겨주는 문서에 도장을 찍었다.

그러다 보니 골프대회 방송이 실제 경기보다 2시간 정도 늦게 중계됐고, 인터넷이나 소셜 미디어에 다 나왔는데도 방송사는 생중계하는 생뚱맞은 모습을 보여 왔다. 이런 일본에 비해 KLPGA 투어의 방송권은 방송사로부터 완전하게 보장받고 있다. 현재 여자골프투어의 주관 방송사인 SBS골프는 선수들이 내던 대회발전기금마저 대납해야 하는 실정이다.

임성재가 작년 제주에서 열린 CJ컵 1라운드 10번 홀에서 티샷을 하고 있다. 당시 방송은 SBS 골프 채널이 아닌 SBS 스포츠 채널에서 협회가 원하는 시간에 중계했다. [연합뉴스]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임성재가 작년 제주에서 열린 CJ컵 1라운드 10번 홀에서 티샷을 하고 있다. 당시 방송은 SBS 골프 채널이 아닌 SBS 스포츠 채널에서 협회가 원하는 시간에 중계했다. [연합뉴스]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방송시간도 협회가 원하는 시간에 해주는 게 의무적이어서 지난해 제주도 나인브릿지에서 열린 CJ 컵 대회는 SBS골프 채널이 아닌 SBS스포츠 채널에서 중계했다. SBS가 KLPGA에 내는 방송권료는 모두 합쳐 연간 7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비해 JLPGA 투어는 방송사로부터 중계와 관련해 아직도 돈을 받지 못할 정도로 초라하다.

그렇다면 KLPGA는 어떻게 모범적인 방송권 제도를 확립할 수 있었을까. 2007년 이전엔 KLPGA도 방송권을 주장하지 못하고 있었다. 방송사가 여자 골프 대회를 중계하면 방송권을 가진 KLPGA에 중계권료를 내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인데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마치 프로야구협회나 프로축구협회가 방송사로부터 중계권료를 받고 중계방송을 허가해주는 것과는 달랐다. 초상권이 선수에게 있고, 선수는 이를 협회에 위임한 만큼 협회가 초상권이 종합적으로 표현되는 대회의 방송권을 가지는 것이 마땅하다. 그러나 그 권리를 행사하기에는 SBS의 힘이 너무 컸다.

협회가 스포츠 전문채널인 MBC-ESPN에 우선적인 방송권을 부여하고 있었으나 중계권료를 받는 것은 아니었다. 하이트나 국민은행 등 대회 스폰서(후원기업)들은 대부분 방송 제작료를 많이 내는 SBS 방송을 선호하는 상황이어서 협회가 이를 제어하지 못했다. 방송에 관한 한 갑의 위치에 있던 SBS골프는 방송 시간부터 출전 선수의 조 편성에 이르기까지 많은 것을 좌지우지했다. 이때는 남자프로골프대회가 더 인기가 많았기 때문에 여자골프대회는 방송에서 늘 찬밥신세를 면치 못했다.

당시 KLPGA 회장이던 홍석규 보광그룹 회장은 이런 상황을 개탄하다 마침내 2006년 하반기 KLPGA에 방송권 제도를 도입하기로 결심하고 협회 사무국에 실행 방안을 마련하라고 지시한다. 홍 회장은 협회가 방송권을 확립해야 한다는 원칙론자였다. 또 그는 방송시간을 여자대회에 유리한 시간에 배정하면 대회의 흥행이 보장돼 대회를 주최하려는 회사가 늘어날 것이라고 예견했다.

2006년 당시 홍석규 KLPGA 회장은 방송권 제도 도입을 결심한다. [중앙포토]

2006년 당시 홍석규 KLPGA 회장은 방송권 제도 도입을 결심한다. [중앙포토]

홍 회장은 “협회가 골리앗인 SBS골프에 비해 다윗의 처지지만 J골프라는 경쟁사가 새로 생긴 만큼 해볼 만하다”며 방송권제도의 확립을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골프계에선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격이라고 생각했다. J골프 본부장을 지낸 박희상 씨는 “협회가 SBS골프에 결국 무릎을 꿇고 방송권을 포기할 줄 알았다”고 회고했다.

당시 협회 전무였던 나는 사무국 직원과 함께 세계 각국의 방송권 제도를 연구해 2007년 투어부터 방송권을 행사하는 방안을 마련, 홍 회장에게 보고했다. KLPGA는 이를 실행하기 위해 스포츠마케팅회사인 IB스포츠(현 갤럭시아 SM)를 방송권 대행사로 선정하고 방송권 확립 작업에 돌입했다. 협회는 처음엔 SBS골프 측에 제작비를 부담시키고 일 년에 2억5000만 원의 중계권료를 받는 대신 대회 22개 모두의 독점중계를 허용하면 일이 잘 풀리리라고 기대했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로 돌아갔다. SBS골프 측이 “방송권은 대회를 주최하는 스폰서 측에 있고 하이트나 ADT 등 일부 대회는 SBS골프 방송이 공동 스폰서”라면서 협회의 방송권 주장에 코웃음을 쳤다. SBS골프 측은 하반기 들어 협회의 방송권 주장을 무력화하기 위해 실력행사에 나섰다. 하이트 골프대회 등 SBS가 공동 후원사로 계약을 체결한 대회를 협회 승인 없이 방송 중계를 강행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SBS와 골프 방송권 법적 분쟁서 승리

사실 이런 문제는 방송권 대행사인 IB스포츠가 풀어야 했는데 SBS가 너무 세게 나오자 속수무책으로 바라보기만 하는 실정이었다. 이때 협회가 다시 한 번 SBS골프에 방송금지가처분 소송이라는 초강수를 두는 결정을 내렸다. 돌이켜보면 협회의 가처분소송도 무리였던 것 같다. SBS골프가 하이트여자골프 대회를 방송한다고 공식으로 공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SBS골프는 ‘방송권은 스폰서 측에 있다’는 자신에게 불리한 논리를 내세우는 우를 범했다. 아마도 하이트 대회의 방송을 공식 결정한 것이 없다는 점을 부각해 가처분소송에서 이긴 다음 하이트 대회를 중계하는 게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판단해 그렇게 나왔던 것 같다. SBS골프와의 법적 분쟁은 가처분소송으로 시작됐지만, 방송권 자체의 인정 문제가 다툼의 대상이 되면서 재판부가 협회의 손을 들어주었고 자연스레 KLPGA의 방송권이 확립됐다.

여자협회가 소송에서 승리하면서 여자골프투어의 인기는 하늘로 치솟았다. 여자골프투어 방송의 질이 높아졌고, 방송 시간과 여자투어 대회 수도 크게 늘었다. 사진은 2017년 KLPGA에서 시즌 3승째 우승을 거둔 &#39;핫식스&#39; 이정은. [사진 KLPGA]

여자협회가 소송에서 승리하면서 여자골프투어의 인기는 하늘로 치솟았다. 여자골프투어 방송의 질이 높아졌고, 방송 시간과 여자투어 대회 수도 크게 늘었다. 사진은 2017년 KLPGA에서 시즌 3승째 우승을 거둔 &#39;핫식스&#39; 이정은. [사진 KLPGA]

그 당시 여자협회가 소송에서 졌더라면 누군가 책임을 져야 했을는지 모른다. (2007년 9월 승소결과가 나오기 전 나는 질 경우에 대비해 사표를 써놓고 있었다) 하지만 승리의 열매는 달콤했다. 여자골프투어의 방송시간이 2시간에서 4시간 이상으로 늘어나고 중계 홀도 4개 홀에서 9개 홀 이상으로 확대되면서, 골프투어 중계의 질이 높아져 여자골프투어의 붐으로 이어졌다.

단지 문제가 있었다면 SBS골프 측이 재판에 진 후 KLPGA를 몇 달간 원색적으로 비난하는 보도를 해 골머리가 아팠다. 하지만 이 문제도 홍 회장이 SBS 윤세영 회장과 만나 골프발전이라는 대승적 차원에서 말끔하게 해결했다. 2008년 여자투어의 대회 수가 28개로 늘어나는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었다. 올해엔 해외투어 3개를 포함해 대회가 29개나 되는 등 미국과 일본 투어와 함께 세계 3대 투어의 하나로 컸다.

조그맣게 시작한 방송권제도 확립이 여자투어의 오늘을 이룩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셈이다. KLPGA는 대회 방송권을 MBC-ESPN과 J골프, J골프와 SBS골프에 공동으로 주다가 지금은 SBS골프 채널에 독점적인 방송권을 부여하고 있다. 한국남자프로골프협회의 코리안투어도 3년이 지난 2010년 방송권을 확립하고 JTBC 골프와 방송권 계약을 체결해 운영하고 있다.

민국홍 KPGA 경기위원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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