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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왕 독살했다···'광해'보다 독해진 '왕이 된 남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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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왕이 된 남자'에서 임금과 광대 1인2역을 소화한 배우 여진구 [tvN]

드라마 '왕이 된 남자'에서 임금과 광대 1인2역을 소화한 배우 여진구 [tvN]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에서 임금과 광대 1인2역을 열연한 배우 이병헌 [중앙포토]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에서 임금과 광대 1인2역을 열연한 배우 이병헌 [중앙포토]

tvN드라마 '왕이 된 남자'는 1200만 관객을 모은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2012, 추창민 감독)의 리메이크 드라마다.
임금을 쏙 빼닮은 광대 하선이 궁안에 들어와 심신이 피폐해진 임금 대신 용상에 앉아 선정(善政)을 펼친다는 기본 얼개는 원작과 똑같다. 하지만 드라마는 중반인 8회를 기점으로 원작과 완전히 차별화된 전개를 펼친다.
도승지 이규(김상경)가 내면의 트라우마를 이기지 못하고 폭군이 돼가는 임금(여진구 1인2역)을 독살하고, 애민(愛民) 리더십의 가능성을 보이는 광대 하선과 함께 이상적인 국가를 만들려는 노력이 그려진다. 은신처에서 돌아온 임금(이병헌 1인2역)이 자신을 대신해 애민 정치를 펼친 하선을 죽이라 명하지만, 하선이 위기를 모면하고 도망가는 결말의 영화와는 너무나 다른 전개에 많은 시청자들이 충격을 받았다.

드라마 '왕이 된 남자'에서 진짜 임금(여진구)이 도승지(김상경)에 의해 독살된 장면 [사진 tvN]

드라마 '왕이 된 남자'에서 진짜 임금(여진구)이 도승지(김상경)에 의해 독살된 장면 [사진 tvN]

드라마 '왕이 된 남자'에서 도승지 역을 맡은 배우 김상경 [사진 tvN]

드라마 '왕이 된 남자'에서 도승지 역을 맡은 배우 김상경 [사진 tvN]

진짜 임금 독살에 시청자들 큰 충격, 원작 차별화의 키 포인트  

하선이 자신의 정체를 알고 목을 옥죄어오는 반정 세력에 서슬퍼런 단죄의 칼을 뽑아든 13회(19일 방영) 시청률은 10%(닐슨코리아)까지 올랐다. 종영을 3회 앞둔 이 드라마의 시청률이 두 자리수까지 올라간 건, 이처럼 예상을 깬 파격적인 전개 덕분이다. 임금이 살해된 충격적 반전 이후 영화와는 다르게 펼쳐질 전개에 대한 시청자들의 궁금증은 더욱 커졌다.
때문에 업계에선 영화 원작을 성공적으로 변주한 드라마라는 평가가 나온다. 원작영화의 제작자인 원동연 리얼라이즈픽쳐스 대표는 "임금이 독살되는 대목에서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며 "영화를 원작으로 리메이크한 드라마의 성공적인 예로 남을 것 같다"고 말했다.
영화를 기반으로 제작되는 드라마는 소설·웹툰을 원작으로 한 작품과 마찬가지로 대중에게 이미 검증받은 콘텐츠라는 장점을 등에 업고 출발한다. 탄탄한 스토리와 캐릭터에 대한 익숙함은 리메이크 드라마에 대한 기대감을 높여주지만, 그 이상의 새로운 무언가를 보여주지 못하면 대중은 냉정히 돌아선다.

드라마 '왕이 된 남자'의 한 장면. 임금(여진구 1인2역)이 자신을 쏙 빼닮은 광대 하선을 보고 놀라고 있다. [tvN]

드라마 '왕이 된 남자'의 한 장면. 임금(여진구 1인2역)이 자신을 쏙 빼닮은 광대 하선을 보고 놀라고 있다. [tvN]

원작영화의 '광해'를 지움으로써 상상의 나래를 펴다  

이는 영화 원작의 드라마 판권을 손에 쥔 제작진이 가장 많이 고민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2시간 남짓의 영화에 어떤 차별화된 설정과 내용을 추가해 16부작 이상의 분량으로 확장할 수 있는가에 리메이크 드라마의 성패가 달려 있다.
드라마 '왕이 된 남자'는 원작 제목에서 '광해'를 떼어냄으로써 차별화의 물꼬를 텄다. 시대 배경을 광해군 시절로 못박았던 영화와 달리, 드라마는 조선의 어느 임금 때인지 모호하다.
대동법 시행, 명과 후금 사이의 외교적 줄타기 등의 사건은 원작과 겹치지만, 드라마 어디에서도 광해군의 흔적을 찾을 수 없다. 그렇기에 원작 뿐 아니라 정사(正史)로부터 자유로운 상상력이 개입할 여지가 생겼다. 임금이 독살되는 파격도 광해의 그림자를 지워냈기에 무리없이 받아들여질 수 있었다.
시대 배경을 특정하지 않은 것에 대해 장정도 책임프로듀서는 "시대를 정하면 16부작으로 얘기를 풀어가는데 여러가지 제약이 생길 것 같았다"며 "원작의 플롯을 가져오되 가상의 왕이 현실정치와 사랑에 눈을 떠간다는 판타지적인 상황을 만든 것"이라고 설명했다.
임금의 독살이란 설정 외에도 많은 것이 달라졌다. 하선에 맞서 반정 세력의 중심에 서는 대비(장영남)라는 새로운 캐릭터가 생겨났고, 이상적인 세상을 꿈꾸며 권력욕을 키워가는 도승지처럼 기존 캐릭터들도 감정선이 더욱 디테일해졌다. 원작과 같은 건, 기본 뼈대와 조내관(장광) 뿐이란 말까지 나올 정도다.

드라마 '왕이 된 남자'의 한 장면. 임금이 된 광대 하선(여진구, 오른쪽)이 중전(이세영)을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다. [tvN]

드라마 '왕이 된 남자'의 한 장면. 임금이 된 광대 하선(여진구, 오른쪽)이 중전(이세영)을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다. [tvN]

드라마 '왕이 된 남자'의 한 장면. 임금이 된 광대 하선(여진구)과 중전(이세영)의 로맨스가 영화 원작보다 한층 강화됐다. [사진 tvN]

드라마 '왕이 된 남자'의 한 장면. 임금이 된 광대 하선(여진구)과 중전(이세영)의 로맨스가 영화 원작보다 한층 강화됐다. [사진 tvN]

한층 강화된 왕과 중전의 로맨스, 꿀 떨어지는 눈빛에 시청자 매료  

특히 눈에 띄는 건, 원작보다 한층 강화된 로맨스다. 하선(이병헌)과 중전(한효주)의 로맨스에 큰 비중을 두지 않았던 영화와 달리, 드라마는 하선(여진구)의 따뜻한 인간미에 매료된 중전(이세영)이 그가 가짜임을 알고 나서도 지아비로 모시는, 달콤하면서도 애틋한 사랑을 큰 축으로 삼는다. 여진구와 이세영이란 젊은 배우를 캐스팅한 건 이같은 이유에서다.

드라마 '왕이 된 남자'에서 대비 역을 맡은 배우 장영남. 임금이 된 광대 하선과 사사건건 대립하는 대비는 영화 원작에는 없는 캐릭터다. [사진 tvN]

드라마 '왕이 된 남자'에서 대비 역을 맡은 배우 장영남. 임금이 된 광대 하선과 사사건건 대립하는 대비는 영화 원작에는 없는 캐릭터다. [사진 tvN]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올바른 정치에 대한 고민과 멜로가 균형을 맞추며 드라마가 전개되고 있다"며 "두 가지가 따로 놀지 않고 서로 자연스럽게 녹아들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임금의 독살이란 반전을 넣는 등 과감한 이야기 변용을 했다는 점에서 영화원작 드라마의 모범사례가 될 법하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방영된 JTBC 드라마 '뷰티 인사이드' 또한 원작 영화를 과감히 변주,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냈다는 점에서 호평을 받았다. 얼굴이 바뀌는 주인공을 남성에서 여성으로 바꿨고, 얼굴이 매일 바뀌는 게 아니라 한 달에 일주일만 다른 얼굴로 살아간다는 설정도 새로웠다. 또한 원작에는 없던, 안면인식장애를 가진 남자주인공(이민기)이 등장해 한 여자(서현진)만을 알아보는 마법 같은 로맨스를 펼치며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흥행 영화를 드라마로 만드는 흐름은 계속 이어질 전망이다. 한물 간 스타 가수와 매니저의 우정을 그린 '라디오 스타'(2006,이준익 감독)는 드라마를 위한 각본 작업에 들어갔고, 두 편 합쳐 2700만 관객을 모은 '신과 함께' 시리즈도 드라마로 만들어진다.

영화 '라디오스타'의 한 장면. 한물 간 스타가수 최곤(박중훈, 오른쪽)과 매니저 박민수(안성기)가 라디오부스에서 독자사연을 읽고 있다. [중앙포토]

영화 '라디오스타'의 한 장면. 한물 간 스타가수 최곤(박중훈, 오른쪽)과 매니저 박민수(안성기)가 라디오부스에서 독자사연을 읽고 있다. [중앙포토]

'라디오 스타' '신과함께'도 드라마화, 시대에 맞는 재해석이 성공의 관건   

드라마 '라디오 스타'는 원작영화의 시나리오를 쓴 최석환 작가가 기획 단계부터 참가했고, 영화 '중독'(2002, 박영훈 감독)의 변원미 작가가 가세했다. 제작사 PF컴퍼니의 김종원 이사는 "주인공인 최곤과 매니저 민수 뿐 아니라, 강PD와 그들 가족의 삶과 이면을 촘촘하게 그려낼 계획"이라며 "꿈과 현실 사이에서 아파하는 루저들을 위한 힐링드라마라는 원작의 장점을 살려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웹툰 원작 '신과함께'를 영화에 이어 드라마로도 만드는 원동연 대표는 "올해 안에 대본을 완성한 뒤 내년 하반기 촬영에 들어갈 계획"이라며 "영화에서는 볼 수 없었던 원작의 인기 캐릭터 진기한(염라국 국선변호사)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펼쳐나간다"고 말했다. 그는 또 "저승·이승·신화 편으로 나눠진 웹툰 원작처럼 시즌제로 가는 걸 염두에 두고 있다"며 "각색된 영화에 충분히 만족하지 못했던 팬들이 좋아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영화 '신과함께-인과 연'의 한 장면 [중앙포토]

영화 '신과함께-인과 연'의 한 장면 [중앙포토]

윤석진 드라마평론가(충남대 국문과 교수)는 "흥행한 영화 원작을 드라마로 만들 때 '지금 이걸 왜 드라마로 만드는가'를 시청자에게 납득시킬 수 있어야 한다"며 "그 점에 대한 치열한 고민없이 성공한 원작의 유명세를 보험 삼아 가져가려 하면 실패할 수 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재창조에 가까운 변용으로 상상의 지평을 넓히면서도 올바른 리더십이란 원작의 메시지를 담아낸 '왕이 된 남자'처럼, 원작의 재해석과 새로운 의미 부여로 드라마 자체의 독창성을 확보하지 않고선, 아무리 흥행한 영화를 리메이크한다고 해도 대중의 외면을 받게 된다는 얘기다.
정현목 기자 gojh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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