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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전기술 해킹, 태양광 관세폭탄…총성 없는 에너지 전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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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미·중 경제 패권 뜨거운 전장③

국영 석유기업인 시노펙 터미널에서 액화천연가스(LNG)를 실은 트럭들이 대기하고 있다. 에너지 패권을 차지하기 위한 미국과 중국의 경쟁은 천연가스 분야에서 가장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국영 석유기업인 시노펙 터미널에서 액화천연가스(LNG)를 실은 트럭들이 대기하고 있다. 에너지 패권을 차지하기 위한 미국과 중국의 경쟁은 천연가스 분야에서 가장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지난해 3월 특별한 보고서를 발표했다. 중국 인민해방군 산하의 한 부대가 미국의 에너지 관련 기업을 해킹했다는 내용이 담겼다. 해당 미국 기업은 태양광 업체인 솔라월드와 원자력발전 업체인 웨스팅하우스였다. 보고서는 해킹 부대가 입수한 정보를 중국 국영기업에 제공했다고 명시했다.

중국군이 원전기업 해킹하자 #미국은 상대국 기업 기소 #중국, 미국산 LNG 관세 공격 #미국은 중국 태양광 기술 견제

2017년에는 미국이 중국의 원자력발전 기업을 기소하면서 두 나라의 갈등이 위험 수위까지 치솟기도 했다. 중국 국영기업인 광허그룹이 중국계 미국인과 공모해 미국 정부의 승인 없이 핵 기술을 빼돌리려고 했다는 게 미국의 판단이다. 당시 미국은 광허그룹과 관련한 모든 거래를 불허하는 방안까지 검토했다.

중국의 부상에 대한 미국의 견제는 전방위적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노골적으로 ‘중국제조2025’에 대한 경계심을 드러내고 있다. ‘중국제조2025’는 중국이 집중적으로 육성하겠다고 밝힌 산업구조 개편 계획이다.

그 중엔 액화천연가스(LNG)와 신재생에너지·원전 기술 등 미래 에너지 패권을 쥐기 위해 필수적인 품목도 포함됐다. 에너지 패권을 유지하려는 미국과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가려는 중국의 총성 없는 에너지 전쟁이 치열하게 전개되는 양상이다.

특히 천연가스 분야에서 두 나라의 경쟁이 가장 치열하다. 중국이 지난해 8월 미국산 LNG와 원유·액화석유가스(LPG) 등에 총 760억 달러 규모의 보복 관세를 부과하면서 갈등이 커졌다. 지난해 9월에는 미국산 LNG에 대한 10%의 추가 관세도 부과했다. 그 결과 미국산 LNG의 대중 수출이 지난해 9월 일시 중단됐다가 다음 달 재개되는 일도 벌어졌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에 따르면 이 기간 미국산 LNG의 월간 수출량은 지난해 4월보다 60%가량 감소했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국내 업계도 이런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미국산 LNG의 대중 수출이 줄어든 만큼 한국이 대신 사달라고 미국이 압력을 행사할 가능성이 있어서다.

이렇게 되면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신북방정책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현재 정부는 러시아와 가스 공급 관련 협의를 진행 중이다. 한국이 미국산 LNG의 수입 물량을 늘리면 러시아와 전략적 관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반면 세계 최대 천연가스 수입국으로 부상한 중국은 러시아산 가스 수입을 늘리며 러시아와 관계를 강화할 태세다.

미·중 에너지 패권 다툼은 LNG 분야에만 국한하지 않는다. 핵 기술과 신재생에너지 분야도 경쟁의 무대가 되고 있다. 미국은 2025~2035년을 기점으로 원전 수요를 감축한다는 계획이다. 반면 중국은 범국가적 차원에서 핵 기술 기업의 몸집 불리기에 나섰다.

중국은 2015년 국가핵전기술(SNPTC)과 중국전력투자그룹(SPIC)을 합병해 국가전력투자그룹(CPIC)을 출범시켰다. 2017년에는 중국핵공업그룹(CNNC)과 중국핵공업건설그룹(CNEC)의 합병을 추진하기도 했다.

미국의 원전 기업이 수출 시장으로 눈을 돌리는 상황에서 중국의 핵 기술 기업도 밖으로 팽창하는 양상이다. 세계 곳곳에서 원전과 핵 기술을 둘러싼 두 나라의 경쟁이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무역갈등의 전선은 신재생에너지와 태양광 기술 분야까지 확대되고 있다. 미국은 신재생에너지 관련 생산 규모나 기술격차에서 여전히 중국을 압도하고 있다. 하지만 중국은 빠른 속도로 미국과 거리를 좁혀가고 있다. 미국이 지난해 1월 중국산 태양광 제품에 대한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조치)를 발동하고 추가 관세를 부과한 배경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전 세계 태양광 설비용량 규모는 2025년 이전에 풍력 발전 용량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양철 성균관대 연구교수(성균중국연구소)는 “미국과 중국의 에너지 경쟁은 한국을 선택의 갈림길에 서게 할 수 있다”며 “2017년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 배치 문제로 중국과 갈등이 커졌던 사례가 재발하지 않도록 전략적인 대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번 위기를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허은녕 한국자원경제학회장(서울대 교수)은 “에너지의 95% 이상을 수입하는 한국의 특성상 장기적으로 수입 다변화를 추구해야 한다”며 “미·중 무역갈등 속에서 중동산 에너지 의존도를 낮추는 수입선 다변화의 기회를 엿볼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오원석 기자 oh.wonseok@joongang.co.kr

공동기획: 여시재·성균중국연구소·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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