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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팰리세이드 대란…5만 대 주문 밀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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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문희철 산업1팀 기자

문희철 산업1팀 기자

현대자동차가 출시한 대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팰리세이드의 인기가 식을 줄 모른다. 18일 기준 계약대수가 5만대를 돌파했다(5만900대).

2만5000대 수요 예측 빗나가 #노조와 협의 필요, 증산 못 들어가 #소비자 최대 10개월 기다려야 #“개소세 인하 6월 끝나는데” 발동동

지금 현대차 대리점을 방문해 차량을 계약하면 가을쯤에나 차량을 인도받을 수 있다고 한다. 선택사양·색깔 등에 따라 출고일이 달라지는데, 최상위트림(프레스티지)에서 특이한 선택사양을 고르거나 독특한 색깔을 택하면 출고일은 최대 10개월까지 늦춰질 수 있다.

팰리세이드가 출시되기 전인 2017년 국내 대형 SUV 시장 총판매대수는 5만4498대였다. 지금 추세라면 팰리세이드는 공식 출시 3개월 만에 계약대수가 2017년 연간 시장 규모를 넘어설 수 있다.

덕분에 지난해 12월 11일 공식 출시한 팰리세이드는 나오자마자 동급 판매 1위로 올라섰다. 기아차 모하비(391대)는 물론, 시장을 꽉 잡고 있던 쌍용차 렉스턴스포츠(2517대)와 G4렉스턴(1351대)을 모두 합쳐도 지난달 팰리세이드 판매량(5903대)에 못 미친다.

현대자동차가 지난해 12월 출시한 대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팰리세이드. [사진 현대차]

현대자동차가 지난해 12월 출시한 대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팰리세이드. [사진 현대차]

일명 ‘팰리세이드 대란(大亂)’으로 특수를 누리고 있지만, 이면에는 고질적인 현대차의 구조적 문제도 고스란히 노출된다. 일단 현대차 경영진이 수요 예측을 얼마나 못하는지 증명했다. 당초 현대차는 팰리세이드가 내수에서 2만5000대 정도 팔린다고 봤다. 하지만 사전계약 첫날 3468건의 계약이 몰리자 판매목표를 3만대로 올렸다. 주문이 밀려들자 다시 목표치를 4만대로 상향했지만, 이미 5만명이 차량을 원한다.

수요 예측은 공장가동, 물량배정, 판매량과 직접 관련이 있다. 현대차가 팰리세이드 인기를 예상했다면 지난달 팰리세이드 판매실적은 몇 배로 뛸 수 있었다. 실적 부진을 만회할 기회를 스스로 차버린 셈이다.

지나치게 느린 의사결정 구조도 재차 드러났다. 구자용 현대자동차 글로벌홍보·기업설명담당(상무)가 “고객의 대기 시간을 줄이기 위해 팰리세이드 생산 증대를 적극 검토하고 있다”고 발표한 시점이 1월 24일이다. 이후 27일이 지났지만 함흥차사다.

의사결정 구조상 당장 생산라인을 추가 배정하기 어렵다면, 일단 동일 생산라인에서 생산비율부터 조정하면 된다. 현대차는 울산4공장에서 스타렉스와 팰리세이드를 혼류생산 중이다. 예컨대 매월 팰리세이드 4000대와 스타렉스 4000대를 만든다면, 이를 6000대와 2000대로 조정하는 방법도 있다. 하지만 현대차는 아직 생산비율조차 조절하지 못하고 있다. 수요에 따른 생산의 유연성이 거의 없다는 뜻이다.

노사가 합의에 도달하지 못하는 동안 손해 보는 건 소비자다. 정부는 오는 6월까지 개별소비세를 인하한다(5%→3.5%). 늑장 출고가 계속되면서 연초 계약했더라도 하반기 차를 받는 소비자는 세금 인하 혜택을 누릴 수 없다.

케케묵은 단체협상 제도도 해묵은 숙제다. 현대차 노조는 사측의 팰리세이드 증산에 적극적인 입장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사측은 울산4공장의 생산량을 확대하는 방안을 제안조차 못했다. 생산 라인을 확장하려면 노동 강도가 세질 수 있어서다. 현대자동차 단체협약 41조는 ‘작업공정 개선이나 인력전환배치 계획을 수립할 때는 노사공동위원회가 심의·의결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현대차는 팰리세이드 사전광고에서 모델로 공룡을 선택했다. 어린 시절 꿈꾸던 ‘자신만의 영역’을 상징하면서, 팰리세이드의 공간성까지 보여줄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요즘 추세대로 팔리면 팰리세이드는 대형 SUV의 공룡으로 자리매김할 분위기다. 현대차가 공룡처럼 멸종하지 않으려면, 팰리세이드 사태 이면의 고질적인 치부를 치료해야 한다.

문희철 산업1팀 기자 report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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