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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남정호의 시시각각

하노이 정상회담 성패 감별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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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남정호
남정호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남정호 논설위원

남정호 논설위원

8일 뒤 열릴 2차 북·미 정상회담은 성공적으로 끝날까. 정확한 판단을 내리려면 어떤 기준으로 볼지 미리 규정해 둘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무슨 결과가 나오든, 대단한 업적인 양 과장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혹할 수 있는 까닭이다. 국제정치학계의 거두 조지프 나이 하버드대 교수는 “트럼프가 아름답게 치장할 회담 결과가 한국·일본과의 전통적 동맹관계를 악화시킬 것”이라고 단언한다.

철저한 검증, 로드맵 약속이 기준선 #북핵리스크 무시한 대형사업은 곤란

어쨌거나 이번 회담에 대한 전문가들의 전망은 다양하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이 의미 있는 비핵화 조치와 이에 상응하는 보상을 주고받을 거란 낙관론도 존재한다. 김정은이 영변 핵 단지는 물론, 숨겨놨던 우라늄 농축시설까지 폐기하겠다는 통 큰 양보를 하고, 미국은 대북제재를 늦출 거란 ‘빅딜’설(說)이다. 문재인 정부의 희망 사항이다.

반면 북한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폐기 정도만 약속하고 미국도 종전선언이나 연락사무소개설 등 생색내는 수준에 그칠 거란 전망도 있다. ‘스몰딜’ 시나리오다. 우리는 빅딜을 바라지만 상황은 스몰딜로 가는 분위기다. 최근 미 의회 내에선 북한의 제한적 핵 보유 허용 주장까지 나오는 판이니 빅딜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 이렇듯 전망은 엇갈리지만, 성패의 기준에 대한 이견은 거의 없다. 북한이 시한까지 명시한, 진정성 있는 비핵화 조치를 약속하느냐가 모든 문제를 풀어 줄 열쇠라는 시각이다.

그럼 뭐가 진정성 있는 조치인가. 아산정책연구원은 “폐기하겠다고 한 영변 핵시설 등에 대한 철저한 검증 약속”을 최소한의 기준으로 잡았다. 문정인 대통령 특보 등은 “핵탄두와 미사일을 언제, 어떻게 폐기할지 구체적 로드맵이 나와야 한다”며 이를 척도로 봤다. 결국 검증 약속이든, 로드맵이든, 실질적인 비핵화 조치의 첫 단추를 채우겠다고 북한이 약속해야 회담이 성공한 것이란 얘기다.

중요한 건 시한이 명시돼야 한다는 점이다. 돈 떼먹는 사람치고 대놓고 “안 갚겠다”고 하는 이는 거의 없다. “갚는다, 갚는다”면서 시간을 끄는 게 상투적 수법이다. 북한도 그래 왔다. 이번 회담에서 김정은이 “비핵화를 하겠다”는 원론 수준의 약속만 되풀이한다면 결코 믿어선 안 된다. ‘합리적 의심’은 논리와 경험의 산물이다. 2008년 영변 원자로 냉각탑을 폭파하는 쇼까지 하고도 비핵화 약속을 지키지 않은 게 북한이다. 구체적 행동이 뒤따르지 않으면 끝없이 의심하는 게 마땅하다.

그런데도 문재인 대통령은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 프로세스에 대한 의구심이 적지 않은 게 현실”이라고 밝힌 뒤 곧바로 “심지어 적대와 분쟁의 시대가 계속되기를 바라는 듯한 세력도 적지 않다”고 했다.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의심하면 적대·분쟁 세력이라고 몰아가는 것처럼으로도 들린다.

그간 우리는 북한 비핵화와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천문학적 돈을 썼다. 햇볕정책이 추진됐던 1998~2008년간 정부는 경수로 사업에 1조4300여억 원, 남북한 철도 연결에 7500여억 원을 쏟아부었다. 하지만 당초의 뜻은 이루지 못했다. 헛돈을 쓴 셈이다. 좀 더 신중하게 생각하고, 제대로 의심했다면 아낄 수 있던 피 같은 돈이었다. 이런 쓰라린 경험이 생생한데도 정부와 지자체들은 다투어 위태로운 남북 교류사업에 뛰어들려 하고 있다.

정부가 남북교류 기반·관광 활성화를 위해 13조 원을 퍼붓겠다는 접경지역 개발도 마찬가지다. 이번 정상회담이 빈 껍데기로 판명되면 이를 어찌할 건가. 여전히 긴장 감돌 접경지역에 그 돈을 쏟아부을 건가. 북핵이라는 엄연한 리스크를 싹 무시하고 초대형 사업을 펼치는 건 섣부른 일이 아닐 수없다.

남정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