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축전」과 수험거부―그것이 민족주의에의 접근인가

중앙일보

입력 1989.06.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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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가지 않는 것이 좋겠다는게 사회의 여론인줄 뻔히 알면서도 꽹과리를 쳐서 학생들을 불러 모으고 평양축전 발대식을 가지며 모의 축전을 벌이고 출정식을 펼친다.
개인이든, 집단이든 누구나 원한다고 해서 넘나들 수 없는게 군사분계선이고 휴전선임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그냥 가고싶다고 해서 아무나 갈수 없는 곳이 우리의 남과 북의 현실임을 잘 알고있으면서도 그들은 젊음이라는 특권, 대학생이라는 특별한 신분을 빌려 무턱대고 『평양으로 가자!』를 외친다.
애당초 정부의 주도아래 참가하자는 제의를 전대협이 일축했을 때부터 학생들은 참가하지 않음을 전제로한 참가투쟁을 벌였다고 볼수있다. 그렇다면 갈 수도 없고 갈 생각도 없는 평양축전 참가여부를 둘러싸고 학생들이 그토록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정부의 예정된 참가 불허방침에 학기말시험 거부투쟁을 확산시키면서 맞서는 운동권 학생들의 투쟁목표와 방향은 과연 무엇인가. 거기에 몇가지 추측을 가능케 한다.
그 첫번째 목표는 통일염원이라는 민족적 공동선을 내걸고 나옴으로써 이를 막는 체제 또는 세력을 공동악으로 몰아 붙이자는데 그 뜻이있다고 볼 수 있다. 민족통일이라는 지순한 도덕적 실천행위를 강행하는 학생단체는 도덕성을 획득하고, 이를 막고 탄압하는 세력은 통일을 부정하는 부도덕한 집단으로 유도하려는데 그 첫번째 의도가 있다.
두번째 목표는 반미의 감정과 평양바람을 동시에 쳐들어 강조함으로써 평양을 도덕적 우위에 두고 미국을 부도덕의 하위개념으로 대비시킨다. 최근 대학가에 일었던 성조기 모독행위와 평양시가 모방, 평양바람을 유도하는 평양식 패션·언어와 평양월츠·축전의 노래 보급활동은 그 좋은 예가 된다.
반미를 통해 친북한의 평양식 바람을 불러 일으키자는데 축전참가시위의 숨은 의도가 담겨져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같은 추측이 잘못된 짐작이었으면 좋으련만 오늘의 대학가 현실을 보면 그보다 더한 추측도 나올만하다.
평양축전을 어떻게 평가하길래 학업과 연결지어 강의와 기말시험까지 거부하겠다는 것인가. 시험을 치르겠다는 학생을 막기위해 강의실입구에 바리케이드까지 쳐야만하는 것인가. 자기네 의사와 다른 생각을 가진 학생들을 힘으로 자기편에 끌어들이기 위해 학업을 파괴하는 행동은 학생답지 않은 반지성적 행동이다.
평양축전이 공산주의청년들의 열기를 북돋워 보려는 정치행사라는 것을 생각할때 강의거부·시험거부라는 발상은 너무나 어이가 없다.
수천명의 목숨을 앗아간 천안문의 탱크대열이 고령화된 1당 독재의 중국공산당 최후의 추악한 모습임을 목격하고 있으면서도, 일당독재의 공산주의 사회를 거부하는 자유의 물결이 폴란드에서, 동구에서 그토록 확산되고 있는 지구촌의 하루하루를 몸으로 느끼면서도 우리의 대학생들은 그보다 더한 독재와 억압의 북쪽 질서에서 무엇을 기대하려는 것인가.
그것이 민족주의에의 접근이라고 생각한다면 그보다 터 큰 착각은 없을 것이다.
남쪽의 민주화에는 그토록 부정적이면서도 북의 장기적 1인독재에는 눈을 감고 세습적 부자권력이양마저 미화하려고 덤비는 주사파가 있는한 대학생들의 통일논의는 균형감각과 설득력을 잃을 수밖에 없고, 그들의 주장또한 청순한 젊은 목소리가 아닌 정치적으로 오염된 낡은 목소리로 치부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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