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인싸]"성인이 성인물 보는게 죄?"···정부에 들끓는 2030

중앙일보

입력 2019.02.18 05:00

업데이트 2019.02.18 08:45

‘여의도 인싸’는 국회 안(inside)에서 발생한 각종 이슈와 쏟아지는 법안들을 중앙일보 정치팀 2030 기자들의 시각으로 정리합니다. ‘여의도 인싸’와 함께 ‘정치 아싸’에서 탈출하세요.

“성인이 성인물 보는 게 죄입니까?”

“무슨 권리로 개개인 인터넷을 뒤지고 야동(야한 동영상)을 막아요?”  

“이것은 민주주의인가 공산주의인가…지금까지 이런 정부는 없었다”

최근 청와대 청원 게시판을 가득 메우는 게시글 중 일부 제목들입니다. 속어인 ‘야동’이 포함된 게시글만 해도 최근 1주일 새 330건 이상이 검색될 정도입니다. 대체 청와대 청원 게시판이 왜 ‘성인물’로 뒤덮이고 있는 걸까요.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https 차단 반대 청원 글. 등록(11일)한 지 1주일도 안된 17일 오후 5시 기준 서명인이 22만명을 넘었다. [청와대 청원 게시판 캡처]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https 차단 반대 청원 글. 등록(11일)한 지 1주일도 안된 17일 오후 5시 기준 서명인이 22만명을 넘었다. [청와대 청원 게시판 캡처]

‘https 차단 정책에 대한 반대 의견’이라는 제목의 청원이 이런 현상을 잘 설명해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청원인은 글에서 “해외 사이트에 퍼져있는 리벤지 포르노의 유포 저지, 저작권이 있는 웹툰 등의 보호 목적 등 취지에는 동의한다. 그렇다고 https를 차단하는 것은 초가삼간을 다 태워버리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지적했죠. 이 글은 등록(11일)한 지 1주일도 안 된 17일 오전 서명 인원 20만명을 넘어서며 대통령 답변 요구 조건을 채웠습니다.

https 차단의 다른 말은 ‘SNI(Server Name Indication) 차단’으로 지난 11일 정부가 “해외 성인ㆍ도박 사이트 접속을 차단하겠다”며 도입한 규제입니다. 기존의 DNS(Domain Name System) 차단 방식보다 강화된 조치로, 사이트가 암호화된 정보를 주고받기 전에 암호키를 교환하는 패킷(SNI)을 정부가 보고 이에 따라 접속 허용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젊은 층을 중심으로 정부에 대한 불만이 폭발해 이 문제가 정치쟁점으로까지 떠올랐습니다.

국내 인터넷서비스사업자(ISP)는 당국의 요청에 따라 11일부터 ‘서버네임인디케이션(SNI) 필드차단 방식’을 이용한 웹사이트 차단을 시작했다. 사진은 차단된 사이트 첫 화면. [연합뉴스]

국내 인터넷서비스사업자(ISP)는 당국의 요청에 따라 11일부터 ‘서버네임인디케이션(SNI) 필드차단 방식’을 이용한 웹사이트 차단을 시작했다. 사진은 차단된 사이트 첫 화면. [연합뉴스]

①야동 볼 권리=일차적으로 나오는 거센 비판은 바로 국가가 성인의 본능을 죄악시하고, 개인의 자유를 제약하려 한다는 겁니다. 16일 서울역 광장에 남성 100여명이 참석해 항의 시위를 한 것도 이 때문입니다. 이들은 “야동차단 내걸고 내 접속기록 보겠다고?” “바바리맨 잡겠다고 바바리 못 입게 하는 건 부당하다” 등이 적힌 피켓을 들고 ‘야동 볼 권리’를 주장했죠.

이들의 주장대로 우리 헌법에는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는 내용이 많습니다. “모든 국민은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받지 아니한다”(제17조), “모든 국민은 통신의 비밀을 침해받지 아니한다”(제18조), “언론ㆍ출판에 대한 허가나 검열과 집회ㆍ결사에 대한 허가는 인정되지 아니한다”(제21조 제2항) 등입니다.

때문에 정치권에서도 이를 우려하는 발언이 나왔었죠. 하태경 바른미래당 의원은 지난 13일 최고위원회의에서 “19금(禁) 사이트는 19세 이하에게만 금지하면 된다. 단순 성인사이트까지 막는 것은 성인의 자유 제약”이라고 말했습니다.

②빅 브러더화=여기에서 전문가들은 나아가 국가 주도의 검열을 우려합니다. 야동 차단은 명분이며, 실제 의도는 국민을 감시하려는 거라는 의심입니다. 인터넷 관련 시민단체인 오픈넷의 손지원 변호사는 17일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이번 조치는 일종의 빅 브러더 정책이다. 국가가 국민이 봐도 되는 정보, 봐서는 안 되는 정보를 정하고 정보를 차단하는 것이니 명백한 검열”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임종인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 역시 통화에서 “과거 밤 12시만 되면 무조건 밖에 못 나가게 한 통행금지 정책과 똑같다. 현 정부도 근원적으로 국민의 통행을 차단하려 한다. 문제가 있는 사이트만 사후 규제 또는 처벌하면 되는데, 길목을 지켜서 일일이 감시하겠다는 것은 전근대적 사상”이라고 꼬집었습니다.

김병준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도 이날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https 차단은 국민을 불안하게 하는 또 하나의 오만과 착각이며 아마추어리즘”이라고 비판했습니다. 김 위원장은 “정부가 마음만 먹으면 개인의 인터넷 접속기록을 다 들여다볼 수 있는 상황에 어느 네티즌들이 인터넷을 마음 놓고 쓸 수 있으며, 어느 기술자나 정보과학자가 그 기술을 발전시켜 나가겠습니까. https 사이트를 차단하는 나라가 중국과 일부 중동 국가뿐이라는 사실이 무엇을 말하겠습니까”라고 덧붙였죠.

검열 논란이 일자 방통위는 “서버 네임을 확인하고 통신사업자가 차단하는 거라 내용은 전혀 볼 수 없다”(김재영 이용자정책국장), “SNI 차단하는 건 패킷을 열어볼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 접속 경로를 막는 것에 불과하다”(허욱 상임위원) 등의 해명을 내놨습니다.

그러나 정부 기관이 사이트 접속 시도를 감시하는 자체가 검열이라는 비판이 거세 방통위의 해명이 얼마나 먹힐지는 두고봐야 합니다.

③또 등장한 내로남불?=네티즌들이 열을 내는 데에는 과거 인터넷 검열을 비판하던 문재인 대통령이 정권을 잡은 뒤 등을 돌렸다는 배신감도 한 몫하고 있습니다. 이명박ㆍ박근혜 정부의 불법사찰 의혹이 터질 때마다 문 대통령 등 현 여권 인사들은 이를 ‘불법적 일탈 행위’로 규정하고 “국민의 사이버상 자유를 억압했다”며 거세게 비판해왔습니다.

이 때문에 각종 커뮤니티에선 “전 국민의 인터넷 활동을 감시하겠다는 문재인 정부와 일부 정적들을 불법 감찰해 온 과거 정부 중 무엇이 더 나쁜 건지 모르겠다”는 얘기까지 나도는 실정입니다.

2012년 10월 15일 판교 테크노밸리센터에서 열린 한국인터넷포럼에서 발언 중인 문재인 당시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 [뉴시스]

2012년 10월 15일 판교 테크노밸리센터에서 열린 한국인터넷포럼에서 발언 중인 문재인 당시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 [뉴시스]

이외에도 많은 글이 올라오고 있지만, 그중에 가장 많이 거론되는 건 다음과 같은 문재인 대통령의 과거 발언입니다.

“이명박 정부 동안 우리나라는 ‘인터넷 검열국가’라는 오명을 썼다. 5년 전만 해도 중국의 인터넷 검열을 비판하던 한국이 지금은 동급이 됐다. 인터넷 세상에서만 보면 이명박 정부는 독재정권이다. (중략) 네트워크 세상은 기본적으로 자율적이어야 하며 이를 공권력으로 통제해선 안 된다. 반드시 대한민국을 인터넷 자유국가로 만들겠다.” - 2012년 10월 15일, 판교 테크노밸리센터에서 당시 민주통합당 대선후보 문재인.

문재인 정부는 젊은 층의 압도적 지지를 발판으로 정권을 잡았지만, 집권후의 정책을 보면 어쩐 일인지 젊은 층의 정서와 계속 엇박자를 낸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습니다. 이번에도 청와대는 ‘https 차단 반대’ 청원에 대한 답변을 놓고 고심이 깊을 것 같습니다.
김준영ㆍ백희연 기자 kim.jun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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