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단독]통계청, 개인정보 공개 동의없이 금융정보 수집 추진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0면

통계청이 통계 조사 대상자로부터 개인정보 공개 동의를 받지 않고도 소득ㆍ지출 등 금융 정보를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금융실명법 개정을 추진한다. 개인의 동의 없이 정보를 수집해 통계 조사에 활용한 다음 당사자에게 사후 고지하는 식이다. 국익을 위한 정보 수집이냐, ‘빅 브라더(정보를 독점한 정부가 개인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냐를 두고 논란이 일 전망이다.

“통계 공익 위해 금융실명법 개정” #금융위는 “사생활 정보” 부정적 #“오남용 우려” “빅데이터에 필요” #전문가들도 찬반 의견 엇갈려

17일 주요 경제부처에 따르면 통계청이 손보려고 하는 건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법률(금융실명법) 4조 1항이다. 해당 조항은 금융거래 정보를 얻으려면 개인 서면 동의를 받도록 규정하고 있다. 다만 탈세 등 범죄 혐의를 받는 개인에 대해 법원ㆍ국세청ㆍ금융위원회 등이 금융정보를 요구할 경우엔 예외다. 통계청은 ‘통계 작성을 위해 필요한 경우’에도 개인 동의를 구하지 않고 정보를 활용할 수 있도록 법 개정을 추진 중이다.

통계청이 개인정보 유출 논란에도 불구하고 법 개정을 추진하는 건 가계동향조사의 어려움 때문이다. 이 조사는 가구당 소득ㆍ지출을 파악해 각종 경제ㆍ사회정책을 만드는 데 쓰는 국가 핵심 통계 중 하나다. 그러나 개인정보 동의 문제 때문에 금융자산 정보를 수집하기가 어려운 데다,  조사 응답률마저 낮아 조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러다 보니 1인 가구가 늘면서 2017년에만 소득 낮은 1분위 가구에 새로운 표본이 65%나 들어올 정도로 통계 신뢰도가 떨어졌다.

이 때문에 최근 통계청은 가계동향조사에 응하지 않는 가구에 과태료를 부과하기로 했다가 계획을 철회하기도 했다. 통계청 관계자는  “개인정보 동의율이 10%도 안 되는 데다 대부분 고소득층에서 불응한다”며 “법을 개정하더라도 순수 공익(통계) 목적의 금융 정보 활용인 데다 임의로 추출한 개인의 정보를 익명 처리하기 때문에 문제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정확한 통계 조사를 위해서라도 (법 개정이) 꼭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금융 정보를 관리하는 권한을 가진 금융위원회는 부정적이다. 전요섭 금융위 은행과장은 “금융거래 내용은 극히 내밀한 사생활 정보”라며 “탈세 등 범죄 수사에 극히 예외적으로 허용한 데는 이유가 있어 통계 목적에까지 허용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통계청은 금융위 의견에도 불구하고 다른 부처와 전문가 의견을 모으는 등 법 개정을 강행할 계획이다.

전문가 의견은 엇갈린다. 정상호 개인정보보호협회 부장은 “동의 없이 정보를 가져가서 처리하고 알려준다면 데이터 오남용 의혹에서 벗어날 수 없다”며 “특히 한국처럼 개인정보 보호에 대해 무감각하고 사고가 연일 터지는 상황에서 위험한 발상”이라고 지적했다. 통계청의 편의를 위한 ‘무리수’일 수 있다는 얘기다. 강안구 한양대 응용수학과 교수는 “정보를 익명 처리한다 해도 언제든 재식별 가능해 신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더 큰 걱정은 통계 샘플을 선별해 입맛대로 조작하는 일명 ‘통계 마사지’ 우려다. 이에 대해 통계청 관계자는 “통계 조작을 통해 얻는 이권이나 이익이 없다”며 “통계청은 통계 조작 의혹에서 자유로울 만큼 충분히 성숙했다”고 설명했다.

반면 통계 정확성을 높이기 위해선 법 개정이 불가피하다는 반론도 만만찮다. 김낙년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현재 기술로 충분히 금융정보를 익명 처리할 수 있고, (그렇게 하면) 통계 조사에 활용해 국익에 기여하는 바가 크다”며 “금융위ㆍ국세청같이 정보를 가진 부처에서 단지 문제가 발생할 수 있거나 고유 권한이란 이유를 들어 정보를 틀어쥐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교통사고가 일어날 확률이 있다고 차를 타지 말아야 하느냐”고 반문했다. 개인 정보 활용에 따른 부작용보다는 정확한 통계 조사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사회적 편익이 더 크다는 의미다.

개인의 인권을 강조하는 유럽은 주로 개인정보 보호, 빅 데이터 산업이 발달한 미국은 정보의 적극적 활용에 무게를 두는 편이다. 그런데 정보 활용의 산업적 측면이 부상하면서 유럽에서도 지난해 5월 개인 정보를 활용할 경우 관련 규제를 풀어주되 법을 위반한 경우 대규모 벌금을 부과하는 내용의 GDPR(일반개인정보보호법)이 통과됐다. 이 법의 핵심은 처벌은 무겁게 하되, 책임(비실명ㆍ익명화 조치)도 명확히 규정한 점이다.

전문지식 공유 플랫폼 ㈜로데이터 대표인 정관영 변호사는 “법 개정을 추진하려면 비식별ㆍ익명 처리에 대한 정의부터 명확히 하고, 개인정보 보호를 위한 기술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전제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세종=김기환 기자 khkim@joongang.co.kr

관련기사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