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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마지막 북핵의 제거까지 긴장의 끈 늦춰선 안 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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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2차 북·미 회담을 앞두고 한국 정부의 성급한 대북제재 완화를 걱정하는 경계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미 상원 내 거물인 테드 크루즈(공화), 로버트 메넨데스(민주) 의원은 지난 11일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에게 보낸 편지를 통해 “섣불리 대북제재를 늦출 경우 한국의 은행과 기업이 제재 대상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미 외교정책에 영향력이 큰 두 상원의원이 이런 주의를 줬다는 건 흘려들을 일이 아니다.

‘성급한 제재완화’ 분위기에 우려 커져 #의미있는 비핵화 합의 없을 수도 있어 #결과 미진하면 미 의회 개입 가능성도

이뿐이 아니다. 같은 날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특별대표는 워싱턴에 온 국회 방미단에 “남북관계의 급속한 발전에 반대하진 않지만 (대북제재는) 국제 제재의 틀 안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 의회는 물론이고 국무부 내에서도 한국 정부의 과속을 걱정하고 있다는 얘기다. 그런데도 정부와 지자체들은 곧 대북제재가 풀리는 것처럼 온갖 교류 사업 계획을 세우느라 야단법석이다.

물론 회담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될 것 같은 징조는 여기저기에서 감지된다. 우선 성패의 열쇠를 쥔 미국의 태도가 유연해졌다. 폼페이오 장관은 지난 13일 “제재 완화의 대가로 좋은 결과를 얻는 게 우리의 의도”라고 밝혔다. ‘완전한 비핵화’만을 강조해 온 그의 입에서 처음으로 ‘제재 완화’와 ‘대가’ 이야기가 나온 건 긍정적인 변화라고 할 수 있겠다. 성급한 제재 완화를 경고한 비건조차 보다 유연한 이야기를 했다. 지난달 말 스탠퍼드대에서 열린 세미나에서 그는 “북한이 모든 조치를 끝낼 때까지는 아무것도 안 하겠다는 게 아니다”고 밝혔다. 북한이 주장해 온 단계적 비핵화를 사실상 미국 정부도 수용하겠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 대목에서 잊지 말아야 할 점이 있다. 이번 회담을 낙관적으로만 볼 수 없는 이유도 숱하다는 사실이다. 비건부터 이달 초 이뤄진 평양 방문에 대해 “북한의 입장을 확인하고 듣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썼다”며 “이번 방북은 협상 아닌 협의였다”고 실토했었다. 그의 말대로라면 정상회담이 열흘도 안 남은 현재, 비핵화와 관련해 합의된 거라곤 거의 없다는 얘기다. 이번 주 2차 실무협상이 열리지만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의미 있는 비핵화 조치가 합의되는 건 불가능 할 수밖에 없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외교적 치적에 목마른 트럼프로서는 이번 회담에서 어떤 결과가 나오든 굉장한 성과처럼 선전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 정부가 명심해야 할 건 미국 외교는 대통령만이 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이다. 얼마든지 의회가 개입할 수 있다. 지난 13일 미 상원의 코리 가드너 아태소위 위원장은 한국 의원들에게 “CVID(완전한 비핵화)가 이뤄지지 않으면 제재 완화와 종전선언은 안 된다”고 못 박았다. 의원들의 눈으로 볼 때 회담 결과가 미진하다면 대북제재의 벽은 낮춰질 수 없다.

그러니 정부는 지나친 낙관론에 기대거나 혹은 그걸 부추겨 성급하게 남북교류에 속도를 낼 게 아니다. 마지막 북한 핵이 없어지는 순간까지 긴장의 끈을 늦춰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