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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 시도 여성 늘고 있지만 투자 심사단은 남성 중심 구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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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두 선배가 말하는 여성 창업 생태계

지난 달 31일 경기도 성남 판교밸리 청소연구소 사무실에서 만난 제현주 옐로우독 대표(왼쪽)와 옐로우독에서 투자받은 연현주 청소연구소 대표. [박민제 기자]

지난 달 31일 경기도 성남 판교밸리 청소연구소 사무실에서 만난 제현주 옐로우독 대표(왼쪽)와 옐로우독에서 투자받은 연현주 청소연구소 대표. [박민제 기자]

지난해 변호사시험 합격자 중 여성 비율은 43.34%였다. 5급 행정직 공채에선 40.5%, 외교관 후보자 중에선 60%가 여성 합격자였다. 하지만 벤처기업 3만6820개 중 여성이 대표로 있는 기업 비율은 9.5%(지난해 말 기준)에 불과하다. 2016년(8.8%) 이후 조금씩 늘고 있다 해도 여전히 다른 분야에 비해 여성이 적은 것만은 분명하다.

대체 창업 생태계의 어떤 점이 여성들의 생존을 어렵게 하는 것일까.

중앙일보는 제현주(44) 옐로우독 대표와 연현주(41) 청소연구소 대표를 지난달 31일 경기 성남 판교밸리 청소연구소 사무실에서 만났다. 제 대표는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스타트업에 주로 투자해온 벤처캐피털리스트다. 연 대표는 제 대표의 옐로우독 등의 투자를 받아 가사도우미(매니저)를 연결해주는 모바일 플랫폼 스타트업인 청소연구소를 2017년 창업했다. 현재 매니저 수는 6000여명이며 가입자 수는 15만명이다.

제 대표는 “창업을 시도하는 여성은 많이 늘고 있지만, 그다음 투자를 받는 단계에서는 아직 여성 비율이 많이 낮다”고 말했다. 제 대표는 벤처캐피탈(VC)의 인적구성이 다양하지 못한 점이 일차적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심사역 중 여성이 한명도 없는 VC도 많다”며 “의도하지는 않았더라도 너무 균질한 집단이 돼 버리면 편향된 결과가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여러 VC로부터 투자를 받아온 연 대표도 여성을 상대로 한 서비스나 소비재를 공급하는 스타트업의 경우 남성 중심으로 구성된 투자자를 설득하기가 상대적으로 어려운 점이 있다고 말했다. 연 대표는 “내 아이템은 가사도우미와 청소가 필요한 집을 연결해 주는 플랫폼인데, 확실히 여성 심사역과 30대 기혼 남성은 관심을 크게 보였다. 반면 미혼 남성 또는 결혼은 했지만 집안일에 관여하지 않는 남성들은 설득하는데 어려움을 겪었다”고 말했다.

한국IBM, 엔씨소프트, 카카오 등을 거친 뒤 2017년 창업 전선에 나선 연 대표는 초등학생 아들 셋을 키우고 있는 ‘워킹맘’이다. 창업 이후 투자를 받는 과정에서 가장 많이 받은 질문 중 하나는 “아이 셋 엄마가 창업하는 건 힘들지 않겠냐”였다고 한다. 연 대표는 “그런 질문을 받을 때면 난 ‘아들 셋 둔 엄마가 도대체 얼마나 창업이 하고 싶길래 여기까지 왔겠냐’고 답했다. 오히려 직장 생활이 유연성이 떨어져 아이 키우기 더 어렵다. 또 창업하고 대표가 되면 근무 형태를 유연하게 가져가는 등 조직 문화를 자기가 만들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고 설명했다.

옐로우독이 청소연구소에 투자한 이유 중 하나도 연 대표의 ‘결심의 무게’를 보고서다. 제 대표는 “과거 다른 VC 심사역들 중에 젊은 여성 창업자한테 대놓고 ‘임신이 가장 큰 CEO 리스크’라는 얘길 하는 사람도 있었다. 투자를 받은 뒤 임신한 사실을 이사회에 어떻게 알려야 할지 걱정하는 여성 창업가도 봤다. 결과적으로 이런 요인들이 알게 모르게 여성들이 창업하는데 허들을 높여왔다. 그래서 나는 반대로 생각했다. 애 3명 키우기도 벅찰 텐데, 그런 여성이 창업한다고 나섰다면 도대체 얼마나 의지가 강한 건가”라고 말했다.

옐로우독이 최근 여성 창업자와 기업에 투자하는 전용 펀드를 결성한 것도 같은 맥락의 일이다. 이 펀드는 현재 1차 투자심사를 진행하고 있다.

제 대표의 말이다. “우리 회사 메인 펀드는 성별에 대한 고려가 없다. 그래도 투자한 여성창업자 스타트업 비율이 30% 정도다. 업계 평균(8~9%)보다 높다. 미국도 여성 파트너가 있는 VC는 여성 창업자에 투자하는 비율이 평균 30%로 다른 VC보다 약 3배 높다고 한다. 성별에 대한 편향을 인식하며 투자하는 것을 해외에선 ‘젠더 렌즈’ 투자라 하는데, 새로운 투자전략의 일환으로 서서히 영향력을 넓혀가고 있다.”

연 대표는 경력이 있는 여성 창업을 지원해주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연 대표는 “후배들은 유리천장 같은 한계를 토로하면서도 창업을 망설인다. 복잡한 현실적 제약 때문이다. 이런 직장 경험이 있는 여성 창업자들을 위한 타깃형 지원제도가 더 잘 갖춰지면 좋을 거 같다”고 말했다.

판교=박민제 기자 letme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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