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마포구 홍익대 근처에서 호프집을 운영하던 이모(55)씨는 지난해 말 가게 문을 닫았다. 영업한 지 6개월도 안 돼서다. 개업 첫 달에는 손님이 북적이더니 연말로 갈수록 빈 테이블이 많아졌다. 기대와 달리 단체 손님도 드물었다.
이씨는 애간장이 탔다. 은행에서 대출을 받고 친척에게도 손을 벌려 4억원을 쏟아부은 가게였다. 하지만 한 달 매출에서 임대료(1300만원)와 인건비(1000만원) 등 고정비를 빼고 나면 손에 쥐는 게 없었다. 대출 원금을 갚아 나가기는커녕 이자를 낼 돈도 부족했다.
이씨는 “30년 넘게 찜닭·해장국 등 여러 식당을 해봤는데 요즘처럼 장사하기 힘든 적은 처음”이라며 “더 버텼다간 빚만 눈덩이처럼 쌓일 거 같아 포기했다”고 말했다.
이씨처럼 장사는 안되는 상황에서 빚더미에 허덕이며 고민하는 자영업자들이 늘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금융권의 자영업자 대출 잔액은 609조2000억원(지난해 9월 말 기준)에 이른다. 2017년 말보다 60조원가량 불어났다.
상대적으로 신용도가 낮은 자영업자들은 저축은행이나 신용협동조합 같은 제2금융권을 찾는다. 하지만 지난해 하반기 금융 당국의 대출 규제로 제2금융권도 대출 문턱이 높아졌다.
제2금융권에서도 외면당한 자영업자들이 찾을 수 있는 합법 대출의 마지노선은 대부업체다. 최고 연 24%의 고금리가 적용되지만 제도권 금융회사보다는 대출 문턱이 낮아서다.
하지만 대부업체의 대출 심사도 갈수록 깐깐해 지고 있다. 신용등급 7등급 이하 자영업자는 대부업체에서도 돈을 빌리기 어려운 게 냉정한 현실이다. 지난해 법정 최고금리 인하(연 27.9→24%)로 대부업체도 ‘고객 고르기’에 나섰기 때문이다.
지난해 말 기준 대부업체 이용자 중 중간 정도의 신용등급(4~6등급)을 가진 사람들은 40만5000명이었다. 6개월 동안 4000명가량 늘었다. 반면 저신용자(7~10등급)는 같은 기간 2만8000명 줄었다.
서민금융연구원의 분석에 따르면 대부업체의 대출 거절 비율이 가장 높은 직업군은 자영업이었다. 최근 3년간 대부업이나 불법 사금융을 이용한 3800여 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다. 이 조사에서 자영업자의 대출 거절 비율은 64%를 넘었다. 자영업자 세 명 중 두 명꼴로 대부업체에서도 문전박대를 당했다는 얘기다.
대부업체에서 밀려난 자영업자들은 우선 가족과 친척에게 손을 벌렸다. 그래도 안 되면 초고금리가 적용되는 불법 사금융으로 향했다. 설문조사에서 전체 응답자의 15%는 “(불법)사금융을 이용했다”고 답했다. “부모나 형제 등 가족에게 돈을 빌린다”는 답변(43.9%)에 이어 두 번째로 많았다.
조성목 서민금융연구원장은 “대부업체도 수익이 줄고 부실 우려가 커지면서 대출 심사를 강화하고 있다”며 "약 45만 명이 대부업체에서도 밀려나 불법 사금융 시장으로 이동한 것으로 추정한다”고 말했다.
3년 전 건축 설계업에 도전했던 청년 창업가 이모(30)씨는 지난해 회사 문을 닫았다. 그는 “건설 경기 침체로 일감이 급격히 줄어 신용카드와 저축은행 대출을 돌려가며 생활비를 충당했다"며 "신용등급이 7등급으로 떨어지면서 더 이상의 대출은 어려웠다”고 토로했다. 이어 “대부업체를 찾아갈까 수없이 고민하다가 빚 독촉이 두려워 회사를 정리했다”고 말했다.
신성환 홍익대 경영학부 교수(전 한국금융연구원장)는 "최저임금 인상과 경기둔화가 겹치면서 자영업 대출이 가계대출보다 더 위험할 수 있다"며 "돈줄이 메마른 한계 영세 사업자들이 가장 큰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상완 현대경제연구원 총괄연구본부장은 “경기 둔화로 빚에 허덕이다 문 닫는 자영업자가 늘면 결국 내수경제가 한층 더 위축되는 악순환을 겪을 수 있다”며 “영세사업체가 잇따라 폐업하기 전에 이자 부담을 낮춰 주거나 상환 기간을 미뤄주는 구체적인 채무조정안이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염지현·정용환 기자 yjh@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