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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어지고 싶다" 말하자 "맘대로 해" 답한 남편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반려도서(59)

『55세부터 헬로라이프』
무라카미 류 지음·윤성원 옮김 / 북로드 / 1만2800원

쉰네 살의 나카고메 시즈코는 예순 살에 정년퇴직한 남편이 퇴직 후 재취업에 실패한 뒤 온종일 텔레비전만 붙잡고 있는 모습이 눈에 거슬리기 시작한다. 퇴직 후 남편은 완전히 딴사람이 됐고, 끝도 없이 혼자 웅얼웅얼 불만만 늘어놓는다. 함께 있는 게 숨이 막혀 파트타임 일자리를 구해 나가서 일을 시작했지만 일을 끝나고도 집 밖을 머물다 늦게 집에 들어갔다. 어느 날 문득 "헤어지고 싶다"는 그의 말에 남편은 "맘대로 해"라고 답했다. 그걸로 30년 세월이 끝났다.

"이혼하고 혼자 살게 되자 적막감과 해방감이 동시에 찾아왔다. 하지만 점차 해방감 쪽이 커지더니 자신도 놀랄 만큼 빠른 속도로 적막감이 옅어져 갔다."(11쪽)

이혼 후에 경제적인 이유와 다른 남자를 사귀어보고 싶다는 생각에 재혼을 결심한다. 변화가 필요했다. 결혼상담소에서 남자를 소개받아 보지만 하나같이 가관이다. 노골적으로 몸에만 관심이 있거나, 일꾼 취급을 하기도 한다. 일방적으로 떠들거나, 아무 말도 없거나, 자신이 생각을 밀어붙이거나, 자기 자랑만 쉴 새 없이 늘어놓는 남자도 있다. 자신이 한심하기 짝이 없다. 이혼한 뒤로 시식 판매원 일을 하면서 재혼하기 위해 결혼상담소를 통해 선이나 보고 있는 현실이라니.

그러나 마음의 소리는 명확하다. "슬프고 괴로울지 모르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따분한 인생보다 훨씬 풍요로운 시간을 사는 것이다."(66쪽) "돈이나 건강 등에 대한 불안감은 있다. 불안투성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하지만 인생에서 가장 끔찍한 건 후회하면서 사는 것이다. 고독은 아니다."(76쪽)

퇴직 후 부부끼리 떠나는 캠핑카 여행을 꿈꾸지만, 현실은 재취업 시장에서 처절히 부딪히기도 한다. 고용지원센터에서는 별안간 발가벗겨진 기분이 든다. '무엇을 하고 싶은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어떤 꿈을 갖고 있는가?'를 주축으로 '자기소개서'를 써야 했다.

"자기소개서를 다시 쓰라는 말을 들었을 때는 분한 나머지 눈물이 글썽거릴 지경이더라고.", "이 나이에 꿈을 얘기하라고 한들 말이야.", "시간을 투자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 하고 싶은 일을 안간힘을 다해 정리한 끝에 돌아온 업무가 빌딩 경비나 청소라는 건 슬프지 않아? (208쪽)

무라카미류의 『55세부터 헬로라이프』는 중장년세대의 황혼이혼, 재혼, 재취업, 반려동물에 대한 사랑 등을 5편의 중편소설로 풀어냈다. 설마 저렇게까지 처절할까 싶을 만큼 생생하고 사실적이다. 퇴직 후에 찾아오는 어려움은 다르지만, 개인을 지배하는 불안과 허무, 절망은 모두 눈물겹다. 애써 희망을 말하진 않지만, 자신을 돌아보는 것, 새로운 시도를 해보는 것,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절절히 호소한다. 길을 잃은 중장년에게 작은 방향 등이 될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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