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아프지 않은 거위털' 안 뽑으려다 아픈 털 뽑나...민주당 증권거래세 딜레마

중앙일보

입력

조정식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이 1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모두발언하고 있다. [뉴스1]

조정식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이 1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모두발언하고 있다. [뉴스1]

증권거래세가 존폐의 갈림길에 섰다. 더불어민주당 조정식 정책위의장이 지난 10일 “당 정책위 내에 태스크포스(TF) 팀을 설치해 증권거래세 개선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히면서다. 주식 투자자뿐 아니라 다수의 여당 의원도 증권거래세 폐지를 반기는 상황인 터라 폐지나 최소한 세율 인하 쪽으로 기운 모습이다. 하지만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논의가 본격화되면 정부ㆍ여당의 골치를 아프게 할 ‘증권거래세 딜레마’가 기다리고 있다.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불공정 과세 논란

증권거래세는 주식을 팔 때 부과되는 세금으로 1963년 도입됐다. 1971년 자본시장 육성을 위해 폐지됐다가 8년 뒤 부활했다. 일종의 수수료 성격의 세금으로 투기성 단기 투자를 막겠다는 취지였다. 세율은 변동을 거듭하다가 1996년부터 매도 대금의 0.3%(농어촌특별세 포함)로 고정됐다.

사실 증권거래세는 불만이 크지 않은 세목이었다. 세율이 높지 않거니와 주식 매도 시 자동으로 떼이는 ‘아프지 않게 뽑히는 거위 털’ 세금이어서다. 그런데 지난해 볼멘소리가 잇따라 나왔다. 정부가 지난해 1월 세법개정 후속 시행령 개정안을 발표하며 주식양도소득세 과세 대상을 늘린다고 발표했기 때문이다.

2017년까지 주식양도세 과세 대상은 종목당 보유액 25억원 이상이었다. 정부는 이 기준을 2018년 15억원 이상, 2020년 10억원 이상, 2021년 3억원 이상으로 단계적으로 확대하겠다고 발표했다. 결과적으로 증권거래세를 내면서 동시에 양도소득세를 내는 이들이 많이 늘어난다. 증권거래세는 사실상 양도세 성격을 갖고 있는 탓에 "이중과세 아니냐"는 불만이 나올 수밖에 없다. 더구나 증권거래세는 투자 손실과 무관하게 내야 한다. ‘소득이 있는 곳에 세금이 있다’는 조세 원칙과도 어긋나는 셈이다.

[중앙포토]

[중앙포토]

세수 감소라는 딜레마

이런 분위기 속에서 민주당 최운열ㆍ김병욱 의원이 지난해 증권거래세 폐지ㆍ인하 법안을 발의했다. 최 의원은 단계적으로 세율을 인하하다가 2024년에 폐지하는 법안을, 김 의원은 세율을 0.15%로 절반으로 낮추는 법안을 제출했다. 최 의원은 “난 증권연구원 원장 할 때(1995~2002년)부터 공정 과세 측면에서 증권거래세 폐지를 주장해왔다”고 설명했다.

정부ㆍ여당도 증권거래세 폐지 가능성을 시사하며 보조를 맞췄다. 민주당 정책위 관계자는 “증권거래세 개선 논의가 나온 것은 공정과세 측면도 있지만, 자본시장을 활성화해 주식 시장을 통한 기업 투자를 늘리기 위한 측면도 있다”고 설명했다. 케이프 투자증권은 증권거래세가 폐지되면 국내 증시의 하루 평균 거래대금이 1조원 이상 증가할 것으로 분석했다.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하지만 재정 당국으로서는 마뜩잖은 상황이다. 세수 때문이다. 2017년 증권거래세는 6조2800억원 걷혔다. 국세(265조4000억원)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가 넘는다. 조세 저항도 크지 않아 증권거래세는 정부 입장에선 쏠쏠했다. 증권거래세가 폐지되면 재정 운용에 부담이 생길 수밖에 없다. 국회예산정책처 분석 결과, 최 의원의 증권거래세 인하ㆍ폐지 법안이 시행될 경우 향후 5년간 세수 감소 규모가 24조1965억원(농어촌특별세 포함)에 달했다. 문재인 정부의 복지 정책을 추진하기 위해 재정 안정이 필수적인 상황에서 세입 기반이 약해질 수 있다는 의미다.

부족한 세수를 충당하기 위해 주식양도세 과세 범위가 더 늘어날 가능성도 있다. 최 의원도 증권거래세 폐지 내용을 담은 증권거래세법 개정안과 동시에 모든 투자자에게 주식양도세를 부과하는 내용의 소득세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기획재정부도 주식양도세 과세 대상을 조기에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2017년 기준 주식양도세는 2조3000억원이었다.

지난 3월 한국거래소는 증권시장 개장 62주년을 맞아 부산 남구 부산국제금융센터 본사에서 부산금융중심의 위상제고 및 지역발전의 발판을 마련하기 위하여 황소상 설치 및 제막식 행사를 개최하였다. 황소상 제막 직후 정지원 한국거래소 이사장(맨 앞)과 참석인사들이 박수를 치며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중앙포토]

지난 3월 한국거래소는 증권시장 개장 62주년을 맞아 부산 남구 부산국제금융센터 본사에서 부산금융중심의 위상제고 및 지역발전의 발판을 마련하기 위하여 황소상 설치 및 제막식 행사를 개최하였다. 황소상 제막 직후 정지원 한국거래소 이사장(맨 앞)과 참석인사들이 박수를 치며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중앙포토]

주식시장 도리어 위축될 수도

주식양도세 과세 범위를 늘려도 또 복병이 있다. 우선 조세 저항이 커질 수 있다. 주식양도세는 양도차익에 대한 기본 세율이 20%(양도차익이 3억원 초과분은 25%)로 증권거래세보다 월등히 높다. ‘아프지 않은 거위 털’(증권거래세) 뽑지 않으려다가 ‘아픈 거위 털’(주식양도소득세)을 더 뽑는 상황으로 역전돼 개미 투자자들의 원성을 살 수 있다.

세수 예측의 불확실성도 높아진다. 주식양도세는 수익이 났을 경우에만 내는 세금이다. 시장 상황에 따라 세수가 요동친다는 의미다. 세수 예측이 어려워지면 재정 집행 효율성도 떨어진다.

무엇보다 자본 시장이 위축될 수 있다. 대만은 1989년 주식양도세를 부활시켰다가 주가가 폭락하자 이듬해 바로 폐지했다. 한국에선 2011년 정부의 주식양도세 확대 방침에 대한상공회의소는 “주식시장 위축을 초래할 가능성이 높고, 기업이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며 반대 의사를 보였다.

관련기사

윤성민 기자 yoon.sungmin@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