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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나 섹스에 정상이라는 것은 없다”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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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3호 20면

섹스 그 후

섹스 그 후

섹스 그 후
아이리스 크래스노 지음
정지현 옮김, 문학수첩

20~90대 여성 150명 은밀 인터뷰 #열정보다 친밀감 있어야 결혼 지속 #‘폐경 이후 섹스 관심 없다’는 신화

‘섹스 그 후’에는 무엇이 올까. 섹스가 아닌 그 무엇? 예컨대 친밀감 같은? 아니면 섹스 그 후에도 섹스가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여성의 성생활이 인생의 단계별로 어떻게 바뀌는지 살펴본 이 책의 원제는 『··· 이후의 섹스(Sex After···)』다. ‘···’에 들어가는 것은 결혼·출산·이혼·폐경·불륜, 배우자 사별, 암 발병, 자궁절제 수술, 50세·60세·70세와 같은 것들이다.

이 책은 자기계발서 부문 중에서도 러브·섹스라는 하위 부문에 속하는 책이다. 상상만으로 자기계발서를 쓸 수는 없다. 심리학이나 인류학, 뇌과학 같은 학문 분야의 최신 성과를 적용하거나 인터뷰 방법론을 동원해야 한다. 『섹스 그 후』의 원천 자료는 인터뷰다. “그 누구한테도 말한 적이 없는 건데요···”라며 20대에서 90대에 이르는 150명의 여성이 망설임 속에 말문을 열었다. 그들은 대부분 섹스가 감정적인 헌신으로 발전하길 바랐으며, 성병을 두려워했다.

여성들의 고백은 특히 폐경기 이후의 여성이 섹스나 사랑에 관심이 없다는 신화를 다시 한번 깼다. 섹스와 무관한 할머니는 소수였다. 물론 다시는 결혼도 동거도 섹스도 안 하겠다는 여성도 있었다.

『섹스 그 후』의 저자는 “섹스는 우리가 죽을 때까지 중요하다”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인생의 굴곡과 변화가 낳는 상실감·박탈감·우울감·좌절감 속에서도 여성들은 성생활이라는 도전에 나름의 방식으로 응답했다. 저자의 또 다른 중요한 결론은 “50세까지 행복한 성생활을 한 여성은 50세 이후에도 성생활이 즐겁다는 것”이었다.

노년의 사랑과 친밀함을 과시하듯 한 쌍의 남녀가 스위스 취리히의 거리를 걸어가고 있다. [사진 토머스 8047]

노년의 사랑과 친밀함을 과시하듯 한 쌍의 남녀가 스위스 취리히의 거리를 걸어가고 있다. [사진 토머스 8047]

말문을 연 여성들의 섹스 체험은 다양했다.

남편 사별 후 마치 10대로 되돌아간 것 같이 80대 남성과 활발한 성생활을 개시한 80대 여성.

문자만 보내면 한 시간 내에 ‘다시는 안 볼 남성’과 섹스를 할 수 있다는 20대 여성.

남편의 불륜을 알고 모멸감을 느꼈지만, 철인 3종 경기로 몸을 단련하고 지금은 다시 돌아온 남편과 행복하게 지낸다는 여성.

남자와 하는 섹스에는 관심이 없어서 오페라·테니스·골프에 몰두하지만, 바이브레이터를 애용하는 여성.

삽입성교(intercourse)는 피하고 키스나 포옹 같은 비삽입성교(outercourse)로 만족하는 여성.

손가락과 입을 제외한 온몸이 마비됐지만 한 남성을 유혹해 결혼하고 출산한 행복한 여성.

저자는 사랑이나 섹스에서 ‘정상적(normal)’이라는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남편과 아들 넷(아들 쌍둥이를 39세에 출산했다)을 둔 저자의 사랑과 결혼에 대한 권고는 상대적으로 보수적이다. 소위 ‘워라밸(work-life balance)’을 중시하는 작품 활동을 해온 그는 만족스러운 결혼생활에 섹스가 필요하며, 섹스는 결혼이나 동거 같은 안정적인 관계에서 가장 잘 구현된다고 주장한다.

저자에 따르면, ‘섹스 그 후’에 오는 것은, 친밀감(intimacy)이다. (흥미롭게도 영어에서 ‘intimacy’는 성교를 의미하기도 한다) 그 사람 아니면 미칠 것 같은 사랑의 열병은 2, 3년이면 끝나기 때문이다. 섹스가 친밀감으로 가는 다리라고 주장하는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성적인 끌림에서 관계가 시작하지만, 그 사랑의 불꽃을 보다 깊은 친밀감으로 발전시키는 능력이 결혼생활을 살리는 진정한 승차권이다.”

‘노년의 이성애자 백인 여성’에 편중됐다는 비판도 받은 『섹스 그 후』는, 1982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1927~2014)의 소설 『콜레라 시대의 사랑』(1985)을 연상시키는 논픽션이다. 『콜레라 시대의 사랑』에서 남녀 주인공은 10대, 20대부터 사랑·섹스·결혼이라는 인생 난제를 한 단계 한 단계 헤쳐나가다 결국 70대에 새로운 사랑의 여정을 시작한다.

기자 출신 베스트셀러 작가로 현재 아메리칸대 저널리즘·여성학 교수이기도 한 저자 아이리스 크래스노(65)는 스탠퍼드대에서 포토저널리즘을 전공했다. 1946년에서 65년 사이에 태어난 베이비붐 세대 여성들이 신뢰하는 저자다. 그는 40여년 동안 사랑·섹스·결혼의 문제를 다뤄왔다. 우리말로 번역된 다른 책으로는 『엄마 미안해: 너무 늦기 전에 엄마와 화해하기』 『결혼에 항복하라』가 있다.

김환영 대기자/중앙 콘텐트랩 whanyung@joo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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