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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 뜯는 ‘진격의 혐오’…돈벌이·표 구걸에 악용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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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3호 04면

[SPECIAL REPORT] 혐오 시대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혐오’가 대한민국을 가르고 있다. 남녀·노소·인종·종교·민족을 가리지 않고 전방위로 침투하고 있다. 과거 한국 사회에서 낮은 포복 중이던 혐오는 외국인 노동자가 늘고 ‘일간베스트저장소’가 기지개를 편 2010년 이후 돌격하는 추세다.

남녀는 김치녀·한남충 서로 비하 #일베·워마드 등 인터넷은 전쟁터 #유튜버, 혐오 영상 올려 수익 올려 #정치인은 표 얻으려 혐오 발언 #포털에 시정 요구한 혐오 표현 급증 #“희망 없는 사회가 약자 때리기 불러”

#혐오는 남녀노소편을 가른다

일베는 ‘××녀’ 시리즈로 여성을 비하하며 눈요깃거리로 삼았다. 여성주의 사이트 ‘메갈리아’와 ‘워마드’는 똑같이 갚아주겠다는 미러링(mirroring) 전략으로 대응하고 나섰다. ‘한남충’ ‘씹치남’ 등 남성 비하 발언이 잇따랐다.

김민정 한국외국어대 교수팀의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시정 요구 유형 분석에 따르면, 방심위가 포털에 시정을 요구한 혐오 표현은 2014년 280건에서 2016년 1983건으로 급증했다. 이 기간 여성 비하 표현은 6건에서 238건으로, 남성 비하 표현은 3건에서 476건으로 눈에 띄게 늘었다.

2016년 5월엔 강남역 인근 노래방 화장실에서 벌어진 살인 사건이 여성 혐오 범죄로 인식되면서 남성 혐오로 번졌다. 지난해 5월에는 남성 누드모델 사진을 워마드에 올려 성기와 신체를 비하한 ‘홍대 누드모델’ 사건도 벌어졌다. 워마드는 리비아에서 피랍된 한국인 남성에 대해 “60대면 어차피 낼 모레 죽을 XX 아니냐. 이 XX 구해주기만 해봐라”는 내용을 게재하며 남성 혐오뿐 아니라 노인 혐오까지 곁들였다. 혐오가 꼬리에 꼬리를 무는 모양새다.

지난해 7월 한 사이트에는 아버지나 할아버지로 추정되는 잠자는 남성의 목에 칼을 들이대는 사진이 올라왔다. 그러면서 “잠자는 틀딱칼X 넣기 딱 좋다. 자고 있을 때 죽여버리면 네가 뭘 어쩔 건데”라고 적었다. ‘틀딱’은 ‘틀니 딱딱’의 줄임말로 노인을 비하하는 표현이다. 일부 젊은 세대는 노인들이 연금을 축낸다며 ‘연금충(蟲)’이라고 비하한다. 과거의 ‘꼰대’ ‘노인네’라는 표현은 그야말로 양반이었다.

임홍재 아셈노인인권정책센터 원장은 “젊은 세대가 노년 세대와 직접 접촉할 기회가 줄어든 데다 방송에서도 노인층을 희화화하는 내용이 자주 나오다 보니 부정적 판단이 늘어나는 것”이라며 “세대를 아우를 수 있는 공동의 활동이 무엇인지 고민해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혐오는 인종과 민족을 가른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지난해 11월 인천에서는 따돌림을 당하던 다문화가정의 중학생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러시아인 어머니와 한국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이 학생은 아파트 옥상에서 또래들에게 폭행을 당하다 차라리 죽겠다며 뛰어내렸다. 2017년 통계청 인구 조사에 따르면 다문화 학생은 10만9000여 명에 달한다. 다문화가정은 전국 31만8000가구에 96만4000명이나 된다.

지난해 6월엔 제주도 예멘 난민 수용 여부가 이슈로 떠올랐다. 정부가 이들 난민에 대한 조기 취업 허용 방안을 검토하자 “이슬람 테러 위협에 노출된다”는 반대 의견이 거셌다.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도 “무슬림은 여자를 사람으로 보지 않고 애 낳는 도구로만 생각하는데 성범죄는 불 보듯 뻔한 일”이라는 등 근거 없는 글들이 올라왔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해 11월 이를 근거로 ‘인종차별을 예방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제대로 마련되지 않았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유엔 인종차별철폐위원회에 제출했다. 인종차별철폐위는 “한국은 인종차별철폐협약을 심의한 지 6년이 됐지만 아무 진전이 없다”며 “이주민들이 노동력을 제공해 국가의 부를 창출하고 있음에도 그에 따른 대가를 공정하게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혐오는 소수자를 겨눈다

성소수자를 다룬 한국 영화 ‘퀴어영화 뷰티풀’은 지난해 10월 개봉 후 악성 댓글에 시달렸다. 한 누리꾼이 포털 사이트 영화 명대사란에 신체 특정 부위를 언급하는 대사가 나온다는 댓글을 달면서다. 이 누리꾼이 올린 대사는 실제 영화엔 등장하지 않는다. 하지만 다른 누리꾼들은 ‘역시 퀴어영화는 더럽다’는 등 악플을 잇달아 달았다.

이 영화를 만든 백인규 감독은 이들을 경찰에 고소했다. 백 감독은 페이스북에서 “사회적 약자에 대한 혐오성 발언을 간과하지 않는 것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며 “대다수의 선량하고 합리적인 사람들이 동의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혐오 세력을 위축되게 하고, 소수자에게도 혐오를 내재화하지 않고 건강한 자아상을 갖도록 도움을 주고 싶었다”고 밝혔다.

#혐오는 확대 재생산되고 있다

김모(25)씨는 최근 유튜브에서 ‘김치녀 엿 먹이기’ ‘한남충 저격’ ‘6.9㎝의 진실’ 등의 영상을 봤다. 그는 “재미있기 때문”이라고만 했다. 이런 종류의 혐오 영상 조회 수는 수십만 건에 이른다. 이들 영상에 광고가 붙으면서 유튜버에게 돈이 지급된다. 관련 업계에서는 구독자 30만 명을 기준으로 한 달 조회 수가 800만 건이 넘으면 월 1000만원이 넘는 수익을 올릴 수 있다는 말이 오간다.

정치인들도 혐오를 활용한다. 지난해 8월 인권위가 ‘선거 과정에서 혐오 표현 대응 방안’을 주제로 마련한 토론회에서는 지난해 6월 지방선거 때 후보들이 일부 지지층의 표를 얻기 위해 혐오 발언을 쏟아낸 사례가 소개됐다. “동성애는 흡연보다 해롭다” “세월호는 죽음의 굿판” “어떻게 장애를 가진 사람이 (구민을) 이끌 수 있겠느냐” 등이 대표적이다.

하재근 문화평론가는 “노력해도 좋은 대학이나 괜찮은 직장에 갈 수도 없고 승진도 어렵다는 좌절감의 팽배와 희망의 부재가 단순한 분노를 넘어 약자를 집중 공격하는 혐오로 확대 재생산되는 양상”이라며 “삶의 질 향상을 위한 보다 근본적인 대책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청소년 성소수자 위기지원센터 ‘띵동’의 정민석 대표도 “선관위와 인권위가 보다 강력한 규제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익재·김홍준 기자, 김나윤 인턴기자 rimr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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