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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대통령의 자영업자 면담, 정치적 요식행위 되지 말아야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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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문재인 대통령이 어제 청와대에서 자영업·소상공인 대표 160여 명을 만나 “최저임금 인상을 결정하는 과정에 자영업자와 소상공인들의 의견도 충분히 대변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자영업자들의 부담을 고려해 최저임금 인상에서 ‘속도조절’ 쪽에 힘을 싣겠다는 의미로 분석된다. 문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중층과 하층 자영업자의 소득은 고용 노동자보다 못한 실정”이라며 “올해는 자영업의 형편이 나아지는 원년이 됐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최저임금 ‘속도 조절’ 암시했지만 #‘소득주도’ 포기 없인 공치사일 뿐

대통령의 말처럼 자영업자는 벼랑 끝에 몰려 있다. 한국의 자영업자는 본인과 가족을 합쳐 전 인구의 25%에 이를 만큼 큰 비중을 차지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한 선진국 평균(16%)보다 한참 높아 경쟁이 극심할 수밖에 없다. 여기에 높은 임대료와 젠트리피케이션, 고령화로 인한 시장 축소라는 구조적 요인으로 고통받고 있다. 게다가 최근 몇 년간 급속히 오른 최저임금의 한파는 이들을 한계까지 내몰았다. 지난달 일자리 통계를 보면 ‘고용원 있는 자영업자’가 4만9000명이나 감소했다. 이들이 고용하던 임시·일용직 등 저임금 근로자도 피해를 공유한다. 지난해 주당 36시간 미만 일하는 근로자 수가 42만 명이나 증가했다. 최저임금 때문에 업주들이 주 15시간 미만의 ‘쪼개기 알바’를 늘린 탓이다.

대통령이 이런 자영업자들의 사기를 북돋우고 기를 살려주려는 건 환영할 일이다. 하지만 최저임금 속도 조절만으로 올해 자영업의 형편이 나아지길 기대하는 건 무망하다. 어제 대표적인 경제학자들의 모임인 한국경제학회가 개최한 공동학술대회에서 나온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 정책 효과에 대한 실증 분석이 이를 증명한다. 서강대 경제학부 최인·이윤수 교수가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1년과 그 전 3년간을 비교분석한 결과 국내총생산(GDP, -0.13%)과 투자(-5.14%)·고용(-0.16%) 같은 주요 지표가 일제히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소비는 1.14% 늘어났지만 주로 국내가 아닌 해외 소비의 증가일 것으로 추정됐다. 임시·일용직 근로자의 감소 추세로 볼 때 ‘소득주도 성장이 소비를 늘릴 것’이라는 주장도 회의적인 것으로 평가됐다. 단순히 최저임금 속도 조절이 아니라 소득주도 성장론의 전면적인 폐기나 수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었다.

백번 양보해도, 소득주도 성장은 꾸준한 혁신 성장이라는 배경이 있어야 지속될 수 있다. 쌓이는 게 있어야 나눌 것도 생기게 마련이다. 소득주도 성장은 이 대신에 먼저 나누고, 다시 모아 쌓겠다고 한다. 하지만 최근의 경기와 고용 상황은 이런 주장이 현실에 근거하지 않은 공상이라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더 이상 막연한 소득주도 성장을 고집할 때가 아니다. 한국 경제가 아직 도약할 힘이 남아 있을 때 혁신의 채찍을 높이 들어야 한다. 대통령과 참모, 관료들이 이를 뚜렷이 인식하기 전까진 ‘최저임금 속도조절론’같은 말들도 여전히 정치적 공치사로 들릴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