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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층도 등돌린 한국당 '5.18 망언'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북한군 개입설 등 이른바 '5·18 망언'이 지지율 반등을 꾀하던 자유한국당에 암초로 등장했다.

당초 ‘5ㆍ18 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의 조사위원 선정을 둘러싼 갈등으로 시작됐던 이 사안은 이제 정치권은 물론 보수진영에서도 성토가 이어지고 있다.

8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5.18 진상규명 대국민공청회에서 지만원씨가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8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5.18 진상규명 대국민공청회에서 지만원씨가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논란은 한국당이 지난해 말 ‘5ㆍ18 진상규명위'의 조사위원에 ‘북한군 개입설’을 주장해 온 보수 논객 지만원 씨를 추천 후보로 올리며 불거졌다. 5ㆍ18 관련 단체 등이 비판했지만 한국당 지도부는 지 씨에 대해 입장을 명확히 하지 않은 채 차일피일 미뤘다.

이런 와중에 8일 김진태ㆍ이종명ㆍ김순례 한국당 의원들이 ‘5ㆍ18 진상규명 대국민 공청회’를 주최하며 지 씨를 내세웠다. 그는 “5ㆍ18 당시 북한군 600명이 광주에 침투해 폭동을 일으켰다”는 기존 주장을 되풀이했다. 이종명 의원마저 “5ㆍ18사태가 발생하고 나서 5ㆍ18폭동이라고 했는데 20년 후 민주화운동으로 변질됐다”고 거들었다.

11일 오후 광주 동구 5?18민주광장에서 5월 단체 및 시민단체들이 '5?18 공청회'에서 자유한국당 의원의 망언 발언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연합뉴스]

11일 오후 광주 동구 5?18민주광장에서 5월 단체 및 시민단체들이 '5?18 공청회'에서 자유한국당 의원의 망언 발언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연합뉴스]

하지만 1980년 5월 계엄사 발표를 시작으로  2007년 국방부 과거사위원회 조사까지 6차례 진행된 국가 차원 조사에서는 북한군 개입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명시했다. 또 지난해 10월 광주지법은 “ 5ㆍ18민주화운동의 성격을 왜곡하고, 5ㆍ18 관련 단체나 참가자를 비하하며 편견을 조장했다”며 지 씨 등이 배포한 5ㆍ18 영상 고발과 미니 화보에 대한 배포금지를 결정했다.

더불어민주당 의원총회가 11일 오후 국회에서 열렸다. 홍영표 원내대표가 자유한국당의 5.18 공청회 관련해 발언하고 있다. [변선구 기자]

더불어민주당 의원총회가 11일 오후 국회에서 열렸다. 홍영표 원내대표가 자유한국당의 5.18 공청회 관련해 발언하고 있다. [변선구 기자]

이 때문에 보수진영에서도 지 씨와 이에 동조한 한국당 의원에 대한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보수단체 국민행동본부의 서정갑 본부장은 이날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5·18 문제는 이미 국가에서 정리를 다 했는데 재론한다는 것은 대통령 선거를 다시 하자는 셈”이라며 “모처럼 지지도가 올라가는 한국당에 찬물을 끼얹고, 우파를 조롱거리로 만들었다. 세 의원은 한국당에서 퇴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 본부장은  5ㆍ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계엄사령부 인사참모부에서 근무했다.

5·18 희생자·부상자 가족들이 지난달 14일 국회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실 앞에서 극우 논객 지만원씨가 배포한 소책자를 들어 보이며 항의하고 있다. [연합뉴스]

5·18 희생자·부상자 가족들이 지난달 14일 국회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실 앞에서 극우 논객 지만원씨가 배포한 소책자를 들어 보이며 항의하고 있다. [연합뉴스]

과거 5ㆍ18 특별법을 주도했던 ‘YS(김영삼)계’ 야권 중진 의원들도 비판에 가세했다. 김무성 의원은 이날 입장문에서 “역사는 사실이지 소설이 아니다”라며 “북한군 침투설을 계속 제기하는 것은 이 땅의 민주화 세력과 보수 애국세력을 조롱거리고 만들고 안보를 책임지고 있는 우리 국군을 크게 모독하는 일이다. 한국당이 지향하는 자유민주주의 가치에도 전혀 부합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서청원 무소속 의원도 “(5·18 당시) 조선일보 특파원으로 9박 10일간 생생하게 현장 취재했다. 당시 600명의 북한군이 와서 광주시민을 부추겼다는 것은 찾아볼 수 없었고, 있을 수도 없는 일”이라고 했다.

지유한국당 김진태 의원과 김무성 의원. [연합뉴스]

지유한국당 김진태 의원과 김무성 의원. [연합뉴스]

당 지도부도 진화에 나섰다. 김병준 비대위원장은 이날 회의에서 “국민 정서에 반하는 언행이 고개 들기 시작해 국민 사이에서 다시 옛날로 돌아가는 거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며 “당 전체에 대한 국민의 정서와 이미지를 먼저 생각해서 처리해주셨으면 좋았겠다”고 말했다.

김순례 의원도 이날 입장문을 내고 “제 발언으로 인해 상처받으신 국민 여러분과 5ㆍ18 유공자 및 유족 여러분께 사과 말씀을 올린다”고 밝혔다.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회 회의가 11일 오전 국회에서 열렸다. 김병준 위원장(오른쪽 두 번째)이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변선구 기자]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회 회의가 11일 오전 국회에서 열렸다. 김병준 위원장(오른쪽 두 번째)이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변선구 기자]

그럼에도 당내에선 현 지도부의 안일한 대응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작지 않다. 한 초선 의원은 “‘5ㆍ18 진상규명위'에서 확실하게 싹을 잘랐어야 했는데 수수방관하다가 이런 상황까지 온 것"이라며 "지난해 지방선거를 앞두고 '이부망천' 발언에 즉각 출당을 결정한 정태옥 의원보다 더 심각하지 않은가"라고 전했다.

당 일각에선 최근 전당대회 국면과 맞물려 당심에 영향을 끼치는 '태극기 부대'의 눈치를 보는 등 당이 전반적으로 우클릭하는 와중에 '5·18 망언'까지 돌출했다는 지적이다.

자유한국당 김순례 의원. [연합뉴스]

자유한국당 김순례 의원. [연합뉴스]

한편 김병준 비대위원장은 이날 오후 논란이 된 8일 공청회에 대한 진상파악을 지시했다. 한국당은 보도자료를 내고 “김 위원장이 김용태 사무총장에게 최근 문제가 된 ‘5ㆍ18 진상규명 공청회’와 관련해 진상파악을 하라는 지시를 했다“고 밝혔다. 또, 김 위원장은 “비상대책위원장으로서 다시 한번 광주 시민들과 국민께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유성운·윤상언 기자 pirat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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