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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어·약과·산적 빼고 불고기와 바나나 올린 차례상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민국홍의 삼식이 레시피(16)

지난주 설을 치르면서 머리에 확실하게 새겨진 것이 있다. 명절에는 떡국을 맛있게 끓여야 차례를 잘 지낸 것 같고 가족들의 표정이 밝아진다는 사실이다. 지난해 이상한(?) 떡국을 선보였다가 가족들의 원성을 샀는데 올해는 종전처럼 사골국물로 떡 만두 국을 해 반응이 좋았다. 십여 가지 음식의 하나에 불과한 떡국 하나가 그해 설 차례를 잘 지냈는지를 가늠하는 척도가 되는 셈이다.

어려서부터 설이나 추석은 물론 제사를 지내는 날은 즐거웠다. 못 먹고 못 살던 시절 음식이 풍성해서 그랬던 것 같다. 또 세뱃돈 때문에 명절이 다가오면 설레곤 했다. 내 기억에 남는 제사 중 하나는 초등학교 2학년인 8살 때 어느 제삿날 제주로 지냈던 제사다. 이유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집에 없는 바람에 물과 갱수만으로 제사를 지낸 것이다. 조상을 잘 모셔야 집안이 번창한다는 할머니의 믿음 때문이었는데 나도 자연히 그렇게 생각하게 되었다.

동생과 아들 가족이 모여 지내는 명절 차례는 부모님 등을 기리며 같이 어울리며 맛있는 음식을 즐기는 파티라 할 수 있다. [사진 민국홍]

동생과 아들 가족이 모여 지내는 명절 차례는 부모님 등을 기리며 같이 어울리며 맛있는 음식을 즐기는 파티라 할 수 있다. [사진 민국홍]

내가 본격적으로 제주로서 제사나 차례를 지내기 시작한 것은 아버지가 돌아가신 2011년이지만 제사의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해 자문하기 시작한 것은 최근의 일이다. 제사 방식과 제사상에 내놓는 제수에 대해 의문이 생겼기 때문이다.

사실 제사나 명절차례에 대해 반대할 생각은 없다. 그렇다고 조상신이 존재하기 때문에 모신다는 생각은 없다. 나를 낳고 길러주신 부모님과 조부모님을 기리고 그날 형제와 자식들 가족들과 만나 회포를 풀면서 맛있는 음식을 먹는 기회를 가진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받아들인다.

하지만 마음에 들지 않는 모습들도 여러 가지가 보였다. 우선 제주의 아내가 주로 음식을 준비해야 한다는 점이 눈에 거슬렸다. 아내만 제사음식 준비하느라 너무 고생한다는 점이다. 형제 가족 간 일을 배분하는 것을 고려할 수도 있었지만 내가 직접 제사음식을 하고 아내가 도와주는 선에서 이 문제를 해결했다.

차례 음식은 아내의 도움을 받으며 거의 100% 직접 만들었는데 매우 뿌듯했다. [사진 민국홍]

차례 음식은 아내의 도움을 받으며 거의 100% 직접 만들었는데 매우 뿌듯했다. [사진 민국홍]

다음으로 남는 것은 지방을 쓰는 문제. 한자로 쓰는 것도 문제지만 신위에 학생 부군이라고 모시는 것에 마음이 상했다. 공무원이면 신위에 직위를 다 올리는데 민간인은 무조건 학생이다. 사후세계마저 관존민비다. 한글 시대이자 민주시대인 요즈음 이런 지방을 쓰고 올린다는 것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해 지방을 사진으로 바꾸기로 했다. 제사상에 사진을 올리니 조부모와 부모님을 떠올리고 기릴 수 있어 좋았다.

제수 중 일부도 하지 않기로 했다. 과거 의례도 중요하지만 제사상 차림은 현실을 반영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올려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한 북어포와 칼로리가 너무 높은 약과는 빼기로 했다. 만들기도 쉽지 않고 별맛이 없는 산적도 과감히 생략하고 대신 소 불고기와 로스구이로 대체키로 했다. 과일도 할머니가 좋아했던 바나나를 비롯해 열대과일을 올리기로 했다.

지난해 설날에는 내가 의욕이 지나쳐 떡국도 새롭게 만들어 올려보았다. 이른바 해물 떡국이다. 미역을 들기름에 볶다가 홍합, 새우, 황태 등을 넣어 육수를 완성해 떡국을 끓였는데 막 장가간 아들이 비린내가 난다면서 거의 입에도 대지 않았다. 동생은 형의 성의를 생각해 먹어주었다고 한마디 덧붙였다.

굴로 만든 떡국은 별미로 시원한 맛이 특색이다. [사진 민국홍]

굴로 만든 떡국은 별미로 시원한 맛이 특색이다. [사진 민국홍]

그래서 올해는 신중하게 떡 만두 국으로 가기로 했다. 육수를 내는 3가지 방법을 놓고 아내와 고심했다. 사골국과 어묵이나 굴로 만든 육수 중 하나를 택해야 하는데 일장일단이 있었다. 아내는 사골국물은 쇠고기 누린내를 잡기가 힘들다면서 시원한 어묵으로 만드는 육수를 택하자고 했다.

어묵으로 육수를 내려면 2인분 기준으로 간장 2큰술, 다시마 1개, 무 100g, 황태포 한 움큼, 어묵 2장을 넣어 끓인 다음 가쓰오부시로 뒤처리 해 육수를 만든 뒤 여기에 떡과 만두를 넣고 끓인 것이다. 굴 떡국은 굴국 밥 끓이는 식으로 하되 밥 대신 떡을 넣으면 된다.

사골국물로 떡만두국을 하기로 했다. 집에서 사골국물을 내는 것은 노력과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에 간편하게 마트에서 사골국물을 구매해 사용하기로 했다. 마트에서 구매한 사골국물은 우선 제품에 따라 물로 2~3배 희석해야 한다. 4인분 기준으로 할 때 무 200g과 황태 50g, 통마늘 4개와 대추 2개, 가늘게 썬 청양고추 4개 정도를 면포에 넣고 청주 30g을 부어주어 1시간 이상 푹 끓여 주면 누린내가 잡히고 고소하면서도 깔끔한 육수가 나온다.

여기에 4인분용 떡과 만두 8개를 넣어 푹 끓여주다 대파로 마무리하고 목이버섯, 달걀지단, 김 가루로 고명을 하면 된다. 만두는 육원전을 만들 때 마련한 다진 고기 속에다 표고, 부추, 양파, 김치를 추가해 만들어 놓은 것을 사용했다. 부드러운 식감 대신 쫄깃한 식감을 원하면 떡을 별도로 끓이다 수면 위로 올라오면 끓고 있는 사골국물에 넣으면 된다.

사골 국물로 끓여낸 떡국은 깊은 맛이 우러나오는 정통 떡국이라 할 수 있다. [사진 민국홍]

사골 국물로 끓여낸 떡국은 깊은 맛이 우러나오는 정통 떡국이라 할 수 있다. [사진 민국홍]

올 설날에는 모두 다 음식에 만족감을 표한다. 특히 떡국이 맛있다고 한다. 아들도 집에 돌아가 카톡으로 떡국이 맛있었다면서 엄지 척 아이콘을 보내왔다. 이번 설날에도 의욕적으로 음식을 많이 준비했다. 일식으로 도미조림, 중식으로 채소볶음과 가지볶음을 해서 올렸는데 거의 입에 대지도 않는다. 대부분 떡국, 감자전, 오징어 튀김, 소고기 로스구이 순으로 좋았다고 한다. 내년에는 음식 수를 상당수 다이어트 해 내놓아야겠다.

[정리] 사골국물 떡만두국 만드는 법

[재료]
4인 기준) 사골국물, 무 200g, 황태 50g, 통마늘 4개, 대추 2개, 가늘게 썬 청양고추 4개, 청주 30g, 대파, 목이버섯, 달걀지단, 김 가루, 만두 8개

[방법]
1. 마트에서 구매한 사골국물을 2~3배 희석한다.
2. 무 200g과 황태 50g, 통마늘 4개, 대추 2개, 가늘게 썬 청양고추 4개를 면포에 넣고 청주 30g을 부어 1시간 이상 푹 끓인다.
3. 육수를 내면 4인분 용 떡과 만두 8개를 넣어 푹 끓인다.
4. 대파로 마무리하고 목이버섯과 달걀지단, 김 가루로 고명을 한다.

*부드러운 식감 대신 쫄깃한 식감을 원하면 떡을 별도로 끓이다 수면 위로 올라오면 끓고 있는 사골국물에 넣으면 된다.

민국홍 KPGA 경기위원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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