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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정아 "실제남편 정형외과 의사···두 아이 교육 재설계 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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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SKY캐슬’에서 한서진을 연기한 배우 염정아. 그는 ’입시 코디 김주영(김서형, 아래 사진 왼쪽)만큼 한서진도 외로운 인물“이라며 김서형을 가장 기억에 남는 배우로 꼽았다. 그리고 ’두 초등생 아이의 엄마로서 느낀 게 많았다“며 의사 남편과 함께 자식 교육을 재설계 중이라고 했다 . [아티스트컴퍼니]

‘SKY캐슬’에서 한서진을 연기한 배우 염정아. 그는 ’입시 코디 김주영(김서형, 아래 사진 왼쪽)만큼 한서진도 외로운 인물“이라며 김서형을 가장 기억에 남는 배우로 꼽았다. 그리고 ’두 초등생 아이의 엄마로서 느낀 게 많았다“며 의사 남편과 함께 자식 교육을 재설계 중이라고 했다 . [아티스트컴퍼니]

“너랑 엄마랑 우리 둘이 함께 이뤄온 거. 예서야. 너 이거 포기할 수 있어? 우리가 이걸 어떻게 만들어왔는데….” 딸 예서(김혜윤)를 서울대 의대에 합격시킬 수만 있다면, 광화문 한가운데서 조리돌림 당해도 상관없다는 엄마 한서진.

예서 서울의대 입학 강렬한 욕망 #손과 입술 떨림까지 세밀한 표현 #“28년 연기인생에서 가장 큰 관심 #자식 포기 못하는 모성 이해된다”

이달 초 막 내린 JTBC 드라마 ‘SKY캐슬’에서 배우 염정아(47)는 한서진의 처절하고 절실한 욕망을 안면근육의 미세한 떨림까지 동원해가며, 정교하게 재단해냈다. 걸리적거리는 상대의 ‘아갈머리를 찢어버리고 싶은’ 분노, 터져 나오는 울음을 목젖 아래로 억눌러야 하는 서러움 등을 표현할 때 미세한 손의 떨림이나 입술 경련을 자신도 인식 못 했다니, 그의 연기는 본능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핏줄까지 연기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혼신을 다한 연기 덕에 많은 이들이 한서진에게 감정 이입할 수 있었다.

7일 만난 염정아는 “28년 연기 인생에 이토록 관심받은 적은 처음”이라며 말문을 열었다. “최근 화보촬영차 찾은 발리에서 10대 현지인들이 한국말로 ‘SKY캐슬 재밌어요’라고 하는 걸 보고 깜짝 놀랐어요. 이토록 많은 이들이 내 작품을 봐준 적이 없거든요. 신기한 경험이에요.”

그는 한서진이 MBC 드라마 ‘로열패밀리’(2011)의 김인숙처럼 선악이 분명하게 구분되지 않는 캐릭터이다 보니 중심 잡기가 힘들었다고 했다. “저와 한서진은 성격도 다르고 가치관도 다르지만, 무슨 일이 있어도 자식 인생은 포기할 수 없다는 ‘모성’만큼은 이해할 수 있었어요. 저 또한 엄마이기 때문이죠. 무서울 정도로 질주하는 서진의 모성을 어떻게 공감되게 표현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가장 많이 했어요.”

‘SKY캐슬’에서 한서진을 연기한 배우 염정아. [사진 JTBC]

‘SKY캐슬’에서 한서진을 연기한 배우 염정아. [사진 JTBC]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으로는 혜나(김보라)가 남편의 혼외자식인 걸 알고 소리 없이 절규하는 장면을 꼽았다. “조현탁 감독과 논의하며 함께 만들어간 장면이에요. 대본에는 ‘한서진이 눈물 흘리며 괴로워한다’고만 나와 있었어요. 집안에 속을 터놓을 사람이 아무도 없는 한서진이 혼자 감당하기 힘든 비밀을 끌어안고 있는 상황에서 끓어오르는 분노와 슬픔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고민을 거듭했어요. 결국 ‘소리 없이 소리 지르는’ 것으로 표현했죠.”

극의 중심인물 한서진은 입시 코디 김주영(김서형), 남편의 혼외자식 혜나, 숨기고 싶은 자신의 과거를 아는 이수임(이태란) 등 여러 인물과 충돌하며 적이 되기도 한다. 그런 관계의 역동성 때문에 한시도 대본을 손에서 놓지 못했다고 했다. “처음에 잡아놓은 캐릭터로 밀어붙였지만, 혜나가 죽으면서부터 힘들어지더군요. 많은 인물들과 부딪히고 그때마다 관계가 계속 변하니까. 감정적인 부분에서 조금만 실수하면 드라마의 방향이 달라져 버리기 때문에 감독과 늘 소통할 수밖에 없었어요.”

가장 기억에 남는 상대 배우로는 김주영 역할의 김서형을 꼽았다. “서형이와는 김주영의 사무실에서 많이 만났는데, 거긴 정말 이상한 기운이 있는 곳이에요. 깜깜하기도 하고. 까만 배경에 서형이가 까만 옷을 입고 앉아있으면 서형이 얼굴밖에 안 보여요. 주영의 말을 경청해서 듣다 보면 어딘가로 빨려 들어가는 것 같았어요. 현실과 동떨어진 장소에 둘만 있는 느낌이었죠. 드라마 ‘환상특급’ 같았어요.”

그는 “사실 한서진도 김주영과 마찬가지로 외로운 사람”이라고 했다. “가족이 있지만 속을 나눌 사람 하나 없고, 적대하는 사람들도 너무 많으니까요. 저도 개인적으로 한서진에 대해 재수 없다기보다 안타까운 마음이 더 컸어요. 자식도 제대로 가르치고, 세상을 넓게 보며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죠.”

염정아는 올해 초등학교 5학년, 4학년이 되는 딸과 아들을 두고 있다. 자녀 교육에 대해선 “한서진과는 매우 다르다”며 선을 그었다. “유치원 때까지 애들을 일일이 따라다니고, 학원 마칠 때까지 대기실에 앉아있고 그랬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 아이들이 스스로 해내는 모습을 보면서 그런 엄마에서 벗어났죠. 방향만 제시해주면 할 아이들은 하는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는 아이들을 이렇게 키우는 게 맞는지 늘 고민하는 진진희(오나라) 같은 엄마예요. 남들 다 보내는 학원 보내고 학습지 시키고 있지만, 드라마를 찍으면서 아이들을 더 닦달하지 못하겠더군요. 남편은 강준상(정준호)처럼 정형외과 의사지만 캐릭터가 완전히 달라요. 마마보이도 아니고 우유부단하지도 않죠. 야망 있는 스타일도 아니고요(웃음).”

그는 드라마를 계기로 “아이들 교육에 대해 남편과 진지하게 다시 설계하고 있다”며 “유현미 작가의 ‘한 가정만이라도 지킬 수 있으면 좋겠다’는 메시지가 많은 이들에게 전달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자신의 연기에 쏟아진 찬사는 작가와 감독, 촬영 스태프의 공으로 돌렸다. “작가님이 대본을 빨리 주셔서 배우들이 연구하고 공부할 시간이 충분했죠. 저를 ‘예술적 동반자’라고 해주신 감독님의 연출력에 다시 한번 놀랐고, 얼굴 근육의 움직임과 손 떨림까지 잡아준 카메라 감독님도 너무나 훌륭했어요.”

폭주 기관차 같던 인물들이 모두 욕망을 내려놓고 각성하는 결말에 대해선 “최선이었다고 생각하지만 시청자들의 불만도 충분히 이해한다”고 밝혔다. “비극적인 결말로 가면 어땠을까 라는 생각을 했지만, 결과적으로 최선의 엔딩이었다고 봐요. 그래서 마지막 회 대본이 가장 어려웠어요. 한서진으로 살았던 시간이 있는데 갑자기 용서받기 위해 연기 방향을 틀어야 하니까. 속으로 갈등을 많이 했고, 그걸 받아들이기까지 대본을 많이 봤어요.”

감정신을 앞두고 극도로 예민해지는 점을 자신의 한계라고 밝힌 그는 “지금까지 여러 장르의 작품을 했지만, 한서진처럼 도도한 느낌으로 나왔던 작품들이 사랑받는 것 같다”며 “앞으로 상상도 못 한 역할, ‘맘마미아’ 같은 뮤지컬 영화에 도전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정현목 기자 gojh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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