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이 한진칼 경영에 참여한다. ‘제한적’이란 단서를 달았지만 투자 기업을 대상으로 한 첫 경영 참여 선언이다.
경영 참여 주주권 행사 하기로 #‘10%룰’ 때문에 대한항공은 제외 #293개 상장사 국민연금 영향권에 #“조양호 회장 일가 경영 일선 퇴진” #KCGI 제안에 찬성표 던질지 주목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는 1일 “한진칼에 대해 제한적 경영 참여 주주권 행사를 의결했다”고 밝혔다. 기금위는 국민연금 정책을 결정하는 최고 의사결정기구다. 박능후(사진) 보건복지부 장관이 위원장을 맡고 있다. 그동안 ‘단순 투자’ 목적으로만 기업 지분을 보유했던 국민연금이 경영 참여를 결정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기금위의 경영 참여 선언으로 국민연금이 5% 이상 지분을 보유한 상장사 293곳이 영향권에 들었다. 기업의 갑질, 오너 리스크 등 탈법이나 비도덕적인 사태가 났을 때 국민연금 개입이 가능한 길이 열렸다.
기금위는 이날 4시간20분에 걸쳐 대한항공·한진칼에 대한 경영 참여 주주권 행사 안건을 논의했다. 박 장관은 기금위를 마친 뒤 “대한항공에는 적극적 주주권, 경영 참여적인 주주권을 행사하지 않고 한진칼에만 행사키로 했다”며 “구체적으로 정관 변경을 하는데 그 내용은 ‘모회사나 자회사에 대해 횡령이나 배임으로 회사에 손해를 끼치고 금고 이상의 형이 확정됐을 때 이사회가 결원된 것으로 본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런 정관 변경만으로는 당장 조 회장을 한진칼 대표이사직에서 물러나게 할 순 없다. 대신 현재 횡령·배임 혐의로 기소된 조 회장이 재판 결과에 따라 형을 확정받으면 한진칼 이사에서 자동으로 해임되는 결과가 난다.
한진칼은 직원 29명에 연 매출 1조원 남짓의 크지 않은 회사다. 하지만 한진그룹 지주회사로 막강한 영향력을 갖고 있다. 한진칼은 자산 규모가 23조원에 이르는 국적 항공사인 대한항공 지분 29.96%를 보유하고 있는 지배주주다. 기금위가 대한항공이 아닌 한진칼에 대한 경영 참여 주주권 행사로도 조 회장 일가에 대한 견제가 충분히 가능하다고 판단한 배경이다.
‘10%룰’도 대한항공이 아닌 한진칼에 대해서만 경영 참여 주주권 행사를 하게 한 이유다. 10%룰이란 한 기업의 지분을 10% 이상 보유하게 되면 투자 사실과 목적을 의무적으로 공시하도록 한 규정이다. 단순 투자라면 상관없지만 경영 참여 목적으로 주주권을 행사했다면 전후에 발생한 주식 매매 차익을 반환해야 한다. 국민연금이 보유한 한진칼 지분은 7.34%다. 대한항공(국민연금 보유 지분 11.56%)과는 달리 이 룰을 피해갈 수 있다. 박 장관은 대한항공에 경영 참여를 하지 않기로 결정한 이유에 대해 “스튜어드십 코드를 운영하는 목적이 국민연금 기금의 수익성이기 때문에 10%룰을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다”고 설명했다.
이제 공은 두 달 뒤 열리는 한진칼 주주총회로 넘어갔다. 3월 열리는 주총에서 조 회장 일가 대 국민연금, KCGI의 표 대결이 펼쳐질 예정이다. 강성부 대표가 이끌어 강성부 펀드라고도 불리는 KCGI는 지난해 말 한진칼과 한진 주식을 사들여 2대 주주 자리에 올랐다. KCGI는 ‘땅콩 회항’ ‘물컵 갑질’과 배임·횡령 혐의로 물의를 일으킨 조 회장 일가가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지난달 31일 KCGI는 3월에 임기가 만료되는 석태수 대표의 연임 반대와 2명 사외이사, 1명 감사 선임 등을 담은 주주제안서를 한진칼에 보냈다. 이 안에 국민연금이 찬성표를 던질지에 대해 박 장관은 “기금위는 독자적인 행동을 할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물론 국민연금과 KCGI가 ‘반(反) 조양호 일가’ 연합 전선을 구축한다는 점은 변함이 없다. 하지만 표 대결 결과를 예단하기엔 아직 이르다. 한진칼 1대 주주는 조 회장(보유 지분 17.7%)이고 친족·재단 소유 주식까지 합친 조 회장 일가의 지분은 28.7%에 이른다. 국민연금과 KCGI의 지분은 합쳐도 18.15%다. 3월 주총 뚜껑을 열어보기 전까진 누구의 승리도 쉽게 예단할 수 없는 상황이다.
조현숙·이에스더 기자 newear@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