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의 판단은 끝났다. 1일 기금운용위원회를 열어 한진칼에 대한 경영 참여 주주권을 행사하기로 결정했다. ‘제한적’ 경영 참여라고 단서를 달았지만 조양호 회장 중심의 한진그룹 경영에 제동을 걸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국민연금 기금운용위, 한진칼 경영 참여 주주권 행사키로 #두 달 뒤인 3월 23일 주총 조양호 회장 측과 표 대결 #'강성부 펀드' KCGI와 국민연금 조 회장 반대 쪽에 #조 회장 측 우호 지분 고려하면 결과 예단 어려워
조 회장 일가의 ‘운명’을 가를 날이 두 달 앞으로 다가왔다. 3월 23일 열릴 예정인 한진칼 주주총회다. 여기서 강성부 펀드, 국민연금 대 조 회장 일가의 표 대결이 펼쳐질 예정이다.
강성부 대표가 이끌어 강성부 펀드라고도 불리는 KCGI는 지난해 말 한진칼과 한진 주식을 사들여 2대 주주 자리에 올랐다. KCGI는 ‘땅콩 회항’ ‘물컵 갑질’과 배임ㆍ횡령 혐의로 물의를 일으킨 조양호 회장 일가가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한진칼은 직원 29명에 연 매출 1조원 남짓의 크지 않은 회사다. 하지만 한진그룹 지주회사로 막강한 영향력을 갖고 있다. 자회사는 8개다. 핵심은 대한항공이다. 한진칼은 자산 규모가 23조원에 이르는 국적 항공사인 대한항공 지분 29.96%를 보유하고 있는 지배주주다. 한진, 진에어, 칼호텔네트워크, 정석기업, 한진관광 등 나머지 핵심 계열사도 한진칼 산하다.
현재 한진칼 대표이사는 조양호 회장이다. 조 회장의 아들인 조원태 사장도 사내이사직을 맡고 있다. 임기는 2020년 3월까지다. 아직 1년이 남았다. 지난 2017년 3월 주주총회에서 국민연금은 조양호 회장, 조원태 사장의 한진칼 이사 선임에 대해 ‘과도한 겸임, 장기 연임’이란 이유를 들어 반대표를 던졌지만 표 대결에서 졌고,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하지만 국민연금의 경영 참여 주주권 행사 결정으로 이런 판도에 변화가 생기게 됐다.
이날 국민연금은 한진칼 주총에서 ‘임원이 횡령ㆍ배임을 저질러 금고 이상의 형이 확정되는 경우 임원직에서 자동 해임된다’는 내용을 정관에 포함하는 방향으로 안건을 제출하기로 결정했다.
이런 정관 변경만으로는 당장 조 회장을 한진칼 대표이사직에서 물러나게 할 순 없다. 대신 현재 횡령ㆍ배임 혐의로 기소된 조 회장이 재판 결과에 따라 형을 확정받으면 한진칼 이사에서 자동으로 해임되는 결과가 난다.
한진그룹의 핵심 계열사라 할 수 있는 대한항공이 아닌 한진칼에 대한 경영 참여 주주권 행사로도 조 회장 일가에 대한 견제가 충분히 가능하다는 판단이 국민연금 기금운용위 내부에서 선 배경이다.
‘10%룰’도 국민연금이 대한항공이 아닌 한진칼에 대해서만 경영 참여 주주권 행사를 하게 한 이유다. 10%룰이란 한 기업의 지분을 10% 이상 보유하게 되면 투자 사실과 목적을 의무적으로 공시하도록 한 규정이다. 투자 목적이 단순 투자라면 상관없지만 경영 참여로 명시한다면 얘기가 복잡해진다. 경영 참여 목적으로 주주권을 행사했다면 전후에 발생한 주식 매매 차익을 반환해야 한다. 경영권을 행사하고 기업 내부 정보를 공유하는 과정에서 투자자가 부당하게 이익을 챙기지 못 하게 한 장치다.
국민연금은 한진칼 투자 목적을 단순 투자로 규정하고 있다. 투자 목적을 단순 투자에서 경영 참여로 바꾸면 주식 매매 차익을 국민연금이 부담해야 하는데, 국민연금이 보유한 한진칼 지분은 7.34%다. 대한항공(국민연금 보유 지분 11.56%)과 달리 한진칼에 대해선 10%룰을 피해갈 수 있다.
KCGI 역시 국민연금 기금운용위 개최 하루 전인 지난달 31일 주주 제안서를 한진칼 측에 발송했다. KCGI는 “회사가 위기 상황에 놓인 것은 현 경영진 중 대부분이 최대주주 및 그 특수관계인이거나 이들과 관계된 자로서, 주주들 전체의 이익보다는 지배주주의 이익을 위해서 중요한 재무적 결정을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판단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KCGI는 ▶임기가 3월에 만료되는 석태수 대표이사(사내이사)의 연임 반대, 새로운 사내이사 선임 ▶조재호 서울대 경영대 교수, 김영민 변호사 2명의 사외이사 선임 ▶김칠규 회계사 감사 선임 등을 한진칼 측에 공식적으로 제안했다. 이 안에 국민연금이 표를 던질지는 미지수다. 이날 기금운용위에서도 이 부분에 대한 결정은 하지 않았다.
이제 공은 두 달 뒤 개최되는 한진칼 주총으로 넘어갔다. 한진그룹의 ‘키’를 누가 쥐느냐를 두고 조 회장 측과 국민연금, KCGI가 주총에서 맞붙는다. KCGI는 이번 기금운용위 결정으로 강력한 우군을 얻게 됐다. 국민연금이 지분 투자 기업에 대해 경영 참여를 결정한 건 이번 한진칼 사례가 처음이다. 그만큼 조 회장 일가 중심의 경영과 인사권 행사에 ‘브레이크’를 걸겠다는 국민연금의 의지가 강하다는 뜻도 된다.
물론 국민연금과 KCGI가 손을 잡는 모양새가 됐지만 표 대결 결과를 예단하기엔 아직 이르다. 한진칼 주식을 가장 많이 가진 1대 주주는 조 회장(보유 지분 17.7%)이다. 친족ㆍ재단 소유 주식까지 합친 조 회장 일가 지분은 28.7%에 이른다.
국민연금과 KCGI의 지분은 합쳐도 18.15%다. 조 회장 측과 10%포인트 넘게 차이가 난다. 지난달 23일 “정부는 대기업 대주주의 중대한 탈법과 위법에 대해선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를 적극 행사해 국민이 맡긴 주주의 소임을 충실히 이행하겠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으로 국민연금 외 연기금 등 기관투자가가 KCGI 쪽으로 규합할 가능성이 커지긴 했지만 그 효과는 여전히 미지수다.
다른 우호 지분까지 더하면 조 회장 일가 쪽에 기운 표가 40%에 이를 것이란 전망도 있다. 정권 변경에 3분의 2 주주 찬성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국민연금의 승리는 붙루명하다. 3월 23일 뚜껑을 열어보기 전까진 누구의 승리도 쉽게 예단할 수 없는 상황이다.
조현숙 기자 newear@joongang.co.kr